제목 죽음 단상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2.01.30 03:33


                                                                               죽음 단상

   세상살이가 그다지 바쁘지 않은데도 친구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몇 년 동안 못 보다가 경조사 때나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경조사의 내용도 달라지는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모의 상가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부모가 아닌 친구의 상가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어디 친구뿐이랴. 후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가끔 접한다. 세상에는 순서대로 왔지만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는 모양이다.

   몇 년 전에 아주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어렸을 때 한동네에 살았던 그 친구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내밀한 이야기, 부끄러운 비밀까지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살아서 잘 만나지는 못했지만 전화로는 자주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하루아침에 저세상으로 가 버렸다. 그때 처음 든 생각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였다. 평소에 인간이란 온갖 불확실성 속에 대책 없이 방치된 존재라고 믿어 왔지만, 이런 비보는 애초에 내 사전에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카톡에 답장이라도 해 줄걸….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가족의 상실감이 무엇보다 크겠지만, 나 역시 한동안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는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사람의 앞일은 모른다지만, 그 친구가 그렇게 황망히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친구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13년 여름이었다. 오랜만이었지만 별로 중요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수다만 떨었던 것 같다. 세상에. 수다만 떨다니. 어떻게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을 수다로 허비할 수 있지? 억장이 무너진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인 친구의 ‘실체적 죽음’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아직 죽음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는지 곧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친구, 후배, 선배의 죽음이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 죽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이제 너도 죽음을 생각할 나이야”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다지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누군가의 부고를 접했다. 이제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곁에 죽음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하여 나는 참으로 성가신 일이기는 하지만,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일종의 죽음에 대한 입장문이라고나 할까.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죽음을 ‘영원한 잠’에 비유한 ‘잠자리에 들 때’라는 시를 썼다. 아내가 정신병에 걸린 데다가 그 자신도 병이 든 상태에서 쓴 시이다. 여기에서 그는 낮 동안 너무 힘들게 일했으니 이제는 별밤을 맞은 어린아이처럼 영원한 잠 속으로 침잠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헤세가 말년에 쓴 이 아름다운 시에, 역시 말년을 맞은 작곡가 리하르트 게오르크 슈트라우스(1864∼1949)가 곡을 붙였다. 그 작품이 ‘네 개의 마지막 노래’의 세 번째 곡인 ‘잠자리에 들 때’이다.

   헤세나 슈트라우스나 모두 죽음을 이승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슈트라우스는 ‘속박에서 벗어난 내 영혼은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오르리’라는 가사에다 정말로 하늘을 훨훨 나는 것 같은 분위기의 선율을 붙였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죽음은 영원한 잠, 영원한 휴식이니까. 그냥 존재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일랜드 민요 ‘오! 대니 보이’는 ‘나는 당신이 나에게 올 때까지 그저 평화롭게 잠자고 있을게요(I simply sleep in peace, until you come to me)’라는 가사로 끝난다. 죽음을 맞았을 때, 내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문장 중에 ‘심플리(simply)’라는 단어가 특히 마음에 든다. 나는 그렇게 아무 걱정 없이 ‘그저’ 편안하게 잠들어 있을 것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내 친구도 아마 편안하게 잠자고 있을 것이다. 육체는 스러지고,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의 조각들을 끄집어내 친구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을 열심히 추억하고 있다. 나는 내세를 믿지 않기에 친구에게 ‘다시 만날 때까지’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설사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친구와 같은 상태 즉, 존재의 무(無)로 돌아갈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무한한 친근감, 동료 의식을 느낀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단 일 분 일 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충분히 ‘살아 있음’을 누릴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하지만 사실 ‘홀연히’ 사라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시점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기를, 너무 고통스러워 ‘살아 있음’ 자체를 저주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참고문헌>

   1. 진회숙, "살며 생각하며", 문화일보, 2022.1.28일자. 33면.

시청자 게시판

2,359개(19/118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66725 2018.04.12
1998 <특별기고>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업적과 순국 113주년 기념 사진 신상구 393 2023.03.28
1997 <특별기고> 서해수호의 날 8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식과 안 사진 신상구 396 2023.03.27
1996 ​거북등딱지부터 챗GPT까지, 점괘의 발달 사진 신상구 539 2023.03.18
1995 짧고 불꽃 같은 생을 살았던 조영래 천재 인권변호사 사진 신상구 591 2023.03.17
1994 무원칙과 편의의 원칙 사이에 광화문 월대의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고. 사진 신상구 1100 2023.03.16
1993 ‘戰後 일본의 양심’ 오에 겐자부 타계 사진 신상구 648 2023.03.14
1992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 남은 충남의 독립운동가 사진 신상구 370 2023.03.13
1991 대전 문화자본 신상구 362 2023.03.13
1990 악비, 천고에 길이 남을 忠의 화신 사진 신상구 817 2023.03.12
1989 도심융합특구 조성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대전을 기대하며 사진 신상구 728 2023.03.10
1988 초하(初河) 유성종 박사의 모범적인 삶 사진 신상구 618 2023.03.10
1987 3·1 독립정신 사진 신상구 457 2023.03.10
1986 <특별기고> 3.8민주의거 63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경과와 사진 신상구 759 2023.03.09
1985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 백서 발간 사진 신상구 500 2023.03.08
1984 <특별기고> 3.1독립만세운동의 발생 배경과 경과와 영향 사진 신상구 679 2023.03.03
1983 쌀 종주국 한국의 긍지 신상구 839 2023.03.02
1982 윤석열 대통령 3.1운동 104주년 기념사 전문 신상구 400 2023.03.02
1981 천안·아산 3.1운동 공적 미서훈 독립운동가 250여 명 발굴 사진 신상구 757 2023.03.01
1980 해방 78년,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 군상 신상구 843 2023.02.28
1979 사르후 전투에서 조선·명나라 연합군 10만명이 후금 3만 병력에 大敗 사진 신상구 504 2023.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