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손 이태원(왼쪽) 별유사와 15대손 이동신 별유사가 농운정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소박한 건축 미학이 전통 유교 문화의 정수를 잘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농운정사와 도산서당은 최근 문화재청에서 보물로 신규 지정됐다. /김동환 기자 |
지난 7일 도산서원을 찾았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흙길을 따라 고즈넉한 풍광이 펼쳐졌다. 안동호가 바로 지척. 퇴계 선생이 이름 지었다는 낙동강변 천연대(天淵臺)도 보였다.
1. 퇴계의 학문이 태동한 곳
“퇴계의 학문과 영남 유림이 태동한 곳이 바로 여기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아입니꺼.”
퇴계 15대손(孫) 이동신(63) 별유사(別有司·서원 운영을 총괄하는 직책)가 말했다. 그는 “유림의 숙원이 마침내 이뤄졌다”며 “도산서당이 있었기에 도산서원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원 출입문을 지나 오른쪽에 도산서당이 있다. 이곳에 터 잡은 퇴계가 1561년 완성한 배움의 공간이다. 16세기를 대표하는 서당 건축이자, 이후에도 ‘선비 건축’의 모델로 평가받는 곳이다. 28.9㎡(약 9평) 아담한 크기로, 3칸짜리(방·마루·부엌) 초기 서당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퇴계 생전의 건물 모습이 거의 달라지지 않고 유지돼 있다”며 “간결한 실내 구성이 선비의 일상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북 안동 도산서원. |
도산서원이 품은 또 다른 보물인 농운정사를 향했다. 쓰임새에 따라 갖가지 모양과 크기로 소박하게 만든 창문이 눈에 띄었다. 도산서당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농운정사는 퇴계에게 배움을 청한 전국의 제자들이 오랜 기간 공부하며 머무르던 공간이다. 요즘으로 치면 학교 기숙사인 셈. ‘징비록’을 쓴 서애(西厓) 유성룡(1542~1607), 학봉(鶴峰) 김성일(1538~1593) 등 조선 중기 국난을 극복하고 유학을 부흥시킨 많은 학자가 이곳을 거쳤다.
이천우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퇴계 선생이 유학자로서의 철학을 건축물에 녹여낸 귀중한 문화재”라며 “소박한 건축 미학이 유교 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상일 안동시 문화유산과장은 “사적 문화재에서 보물로 지정되면 문화재적 가치와 위상이 함께 올라간다”고 말했다.
도산서원이 품은 보물은 이 외에도 2개가 더 있다. 1963년 전교당(典敎堂)과 상덕사(尙德祠)가 각각 보물 210호와 211호로 지정됐다. 전교당은 유생들 교육이 이뤄지던 공간으로, 조선 최고 명필 한석봉이 썼다는 현판 글씨로 유명하다. 상덕사는 퇴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2. 유림과 서원의 본고장 경북은 ‘보물 창고’
경북은 유림과 서원의 본고장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년)에 세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꼽히는 소수서원(1542년)이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다. 지난해 말 문화재청은 강릉향교 명륜당(明倫堂), 순천향교 대성전(大成殿), 충북 옥천의 이지당(二止堂) 등 전국 향교 문화재 14건과 서원과 서당 각 3건 등 총 20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이 중 8곳(40%)이 경북 지역 서원과 향교였다. 새로 보물로 지정된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 만대루(晩對樓)는 서애 유성룡을 모신 서원의 누각 건물이다. 벽체 없이 전체를 개방해 자연의 경치를 서원 내부로 끌어들이는 ‘시각적 틀’로 평가받는다. 한국적 미학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다.
김상철 경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오롯이 모인 경북 지역은 말 그대로 ‘보물 창고’”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밝힌 전국 보물 현황에 따르면 서울(716건)을 제외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경북이 가장 많은 보물(364건)을 보유하고 있다.
<참고문헌>
1. 권광순, "퇴계 숨결 살아있는 ‘도산서당’ ‘농운정사’ 보물 됐다", 조선일보, 2021.1.29일자. A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