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대전역 광장 을유해방기념비 제자리 찾기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3.16 18:11

                                                                       대전역 광장 을유해방기념비 제자리 찾기  

     오늘을 사는 사람 대부분은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를 경험해보지 않았다. 역사를 통해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어렴풋이 상상해보긴 하나 물리적 실체마저 느낄 문화유산이 없다면 사실 그마저도 현존감 있을 리 만무하다. 광복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1946년 대전역에 시민 성금으로 올려세운 을유해방기념비(乙酉解放記念碑) 이전은 퍽 씁쓸한 판단으로 남아 있다.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옛 자취대로 남아 있어야 그 역사적 향기가 더 묻어나는 법이다. 건립 75년, 을유해방기념비의 역사를 이제 본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1952년 대전역 모습. 육군이 지난 2018년 공개한 1950년대 컬러사진 239장 중 한 장. 역 앞의 을유해방기념비와 양쪽의 해태상이 대전역임을 말해준다. 이 사진은 6·25전쟁 당시 미군으로 참전한 토마스 상사(1910∼1988년)가 당시 한국의 생활상을 35mm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중 한 장이다. 
    역사의 흔적인 문화유산은 그 자체로 자긍심을 고취시킬 뿐만 아니라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문화유산의 보존과 복원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개발 논리에 밀려 50년째 대전 중구 보문산 낯선 터에 서 있는 을유해방기념비가 지역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개화기부터 광복 전후까지의 문화유산은 전통과 신문물이 뒤섞인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그대로 안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도 각종 개발에 떠밀리며 오늘에 와선 대부분 멸실되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게 현실이다. 지금 을유해방기념비의 처지가 그렇다. 을유해방기념비는 1946년 8월 15일 시민들이 광복 1년을 맞아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대전역에 비신 2m, 폭 74㎝, 비갓에서 비좌까지 합해 3.25m에 달하는 규모로 해태상 한 쌍과 더불어 세웠다.
    지난해 8월 13일 제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대전시가 공개한 '을유해방기념비'(붉은 타원 안)의 옛 모습이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사라지기 전 대전역을 배경으로 촬영된 사진 속 해방비는 대전역 광장 중앙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좌우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쌍의 석상이 배치돼 있다. 주변에는 원형 석조 경계석도 설치돼 있다. 대전시 제공
    을유해방기념비가 지닌 역사성은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광복 이후 전국 각지에는 해방기념비나 독립기념비, 대한민족해방기념비 등 다양한 형태의 비석들이 세워졌지만 현존하는 것은 많지 않다. 그 중에서도 을유해방기념비는 시민들이 성금을 보태 직접 건립 과정에 참여한 것이나 지역의 관문인 대전역에 세워진 장소성, 한문이 아닌 순한글로 쓰여진 희소성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다. 해방된 조국에 대한 정성과 염원, 미래를 향한 기대가 오롯이 담긴 상징물인 셈이다.
   문화유산에 남은 세월의 때는 보석과 같다고 했는데 을유해방기념비가 지닌 역사의 향기는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개발을 앞세운 오판 때문이다. 함께 대전역을 지키던 해태상은 1957년 국립서울현충원에 기증되며 본래 자리를 이탈했고, 을유해방기념비마저 1971년 보문산으로 밀려났다.
   문제는 정확한 이전 근거가 현재까지 오리무중이라는 데 있다. 1970년대 이뤄진 대전역 광장 정비 사업 도중 현 보문산 야외음악당 인근으로 이전했다는 게 대전시의 유일한 설명일 뿐이다.
   시 관계자는 “을유해방기념비와 관련된 당시 문서를 찾아봤으나 명확하지 않다”며 “대전역 광장 재정비 작업이 이뤄지면서 현장에서의 존치가 어려워 보문산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참고문헌>
    1. 이준섭, "을유해방기념비 제자리 찾기", 금강일보, 20201.3.16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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