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도울 칼럼(1) - 왜곡된 우리의 역사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글쓴이 doul 날짜 2014.02.10 07:54

[칼럼]

 

왜곡된 우리의 역사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도울(道?) 배 준 성(裵峻晟)

                    -. 시인 겸 작사*작곡가. 

                                    -. 주간 평생교육신문 발행인, 

                                    -. (사)충효예실천운동본부 부총재.

                                    -. 도울회 회장

 

역사(歷史)란 인간사회가 가져온 변천의 모습 또는 그 기록을 말하고, 어떤 사물이나 인물, 조직 따위가 오늘에 이르기 까지의 자취를 의미한다. 그러한 역사는 반드시 사실에 입각하여 구전 되거나 기록되어진 것으로서 시간적 개념과 공간적 개념에 의해 다르게 분석되고 평가 되어진다. ,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에 따라 역사는 다르게 보여 질 수도 있고 달리 평판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역사(歷史: History)란 인류가 과거에 행하여 온 일로서 특히 인간사회가 독자의 운동법칙에 따라 발전하여 온 과정을 사실에 입각해 구전(口傳)이나 기록으로 전해 온 이야기란 점에서 소설(小說:Story)과 구분된다 하겠다. 따라서 역사는 천하의 만물을 창조하고 주관한 신의 섭리적 소산이요, 소설은 피조물인 인간의 작가적 소산이라고 볼 수 있어 사실과 다른 역사의 기록은 인간의 사고(思考)에 의해 쓰여진 문학적 소설에 불과하다 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역사는 세계사에 있어서 가장 큰 맥을 이룬다 할 만큼 유구하고 찬란한 섭리적 소산이다 할 수 있는 반면에 위대한 문화적 유산과 다양한 종교적 신앙이 풍부한 만큼 왜곡된 부분도 많았던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한국의 상고사와 고대사는 제도권의 교육용 교과서의 내용과 사학자들 간의 의견이 너무도 판이해 국사에 관한 우리 교육의 새로운 정립과 인식의 재조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문민시대를 맞이함에 있어서 범국민 의식개혁 실천운동의 일환으로 벌이고 있는 신한국 창조의 역사적 사명 속에 불붙은 한국 우리민족사 연구회(회장; 여운건)와 한국 상고사학회(회장; 이중재) 등이 숨겨진 우리의 역사를 밝혀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자 각종 세미나와 심포지엄 등을 개최해 열띤 토론과 연구를 거듭하고 있음이 그렇다 하겠다.

실로 우리의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도 왜곡된 사실들을 엄청나게 발견할 수 있다. 조선말기사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왜곡 되었고, 일제사는 해방 후 친일파들에 의해 왜곡 되었으며, 1·2공화국은 3·4공화국에 의해 왜곡되고, 3·4공화국은 5공화국에 의해 왜곡되지 않았는가 하면 5공화국의 부정과 비리가 또 6공화국의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왜곡 되어진 현상을 볼 때, 우리의 국사는 상고사로부터 고대사 및 중세, 근대사와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왜곡된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추론에 의거해 볼 때 우리의 상고사는 실로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자료가 불충분하고, 고대사는 삼국시대에, 삼국사는 통일신라시대에, 통일신라사는 고려시대에 왜곡 되었을 뿐 아니라 고려사는 몽고의 침략 세력과 조선 초기의 위정자들에 의해 왜곡돼, 변질된 우리의 역사적 참된 가치관과 정통성을 찾기란 사막에 묻혀 있는 바늘토막 하나를 찾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다.

왜곡(歪曲)이란 ????본디의 사실과 다르게 곱새긴다.???? 는 뜻으로서 원래의 사실과 그릇되게 잘 못 해석함을 의미한다. 그러한 왜곡은 일상생활 가운데 부정과 비리와 갈등을 조장하고, 불협화음을 조성할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인식의 올바른 사관(史觀)마저 혼동케 한다. 때문에 섭리의 역사를 왜곡해 사관(史觀)을 혼동케 한 자들이야말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대역죄인(大役罪人)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역사의 왜곡은 외세에 의해 조장되는 경우와 내세에 의해 조장되는 경우가 있다. 외세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어진 경우는 우리 민족이 몽고나 일본 등 다른 민족의 침략을 받은 후 식민지화 된 상태에서 역사의 사적(史籍)이 없어지거나 수난을 받음으로서 변질되거나 조장된 경우를 말하고, 내세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어진 경우는 우리 민족이 우리 민족끼리의 싸움 속에서 역사적 기록이나 문서가 소실됨으로서 변질된 경우와, 사학자들이 위정자들의 세력에 의해 날조되거나 사관(史官)이 역사를 편파적으로 기록함으로서 조장된 경우, 사가(史家)가 역사를 재편하거나 편저자가 사서(史書)를 출판하는 경우에 표기된 원작의 글자(한자나 한글)를 곡해하거나, 교정 미숙으로 오자(誤字)나 탈자(脫字) 인쇄에 의해 왜곡된 경우 등을 말한다.

그러한 관점에 우리의 역사를 조명해 본다면 외세의 침략과 내란이 많았던 우리 민족의 역사는 왜곡의 소지가 많았다고 보여진다. 실상, 우리 민족의 역사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근거하고 있는 사학자들의 주장도 단군왕검이 탄생하심과 박혁거세, 김알지, 김수로, 왕건이 태어난 바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이 아니란 것을 인정한 셈이 되고 말았고, 상고사 학자들 간에도 우리의 역사가 단기 4,333년이 아닌 10,937- BC 8,937년 반고 환인씨(盤古桓因氏)부터 - 이다 고 주장하면서 신라, 백제, 고구려가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금의 중화민국인 지나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한국 상고사 학회 회장 - 이중재)함은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우리 민족사의 재정립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시고 대종교의 총전교와 배달학회 회장을 맡다가 타계하신 고() 안호상 박사(‘99.2.21서거)께서는 그의 저서 <겨레의 역사 6천년,(기린원·1992)> 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조상과 역사를 잊어버린 까닭에 우리의 조상과 역사를 잃어 버렸다. 6천년이 넘는 위대한 역사를 겨우 2천년인 것처럼 가르치고, 또 그것마저 왜곡된 거짓 것을 배우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교육이 높을수록, 지식이 많을수록 민족적 자존심과 주체성은 점점 약해지고, 노예 사상인 사대사상(事大思想)만 강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확 트인 국제사회 속에서 개인과 민족의 긍지와 위신을 위하여 우리의 옛 역사를 하루 빨리 깊이 연구해 알고 널리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국사학자들이 본 왜곡의 요인을

첫째, 우리나라의 옛 역사에 관한 문헌들이 너무 적다는 것과

둘째, 그토록 적은 문헌적 자료마저 신빙성이 없다는 것과

셋째, 그러한 역사책들이 거짓책(僞書)이라고 보았다.

안 박사는 그러한 세 가지 이유들을 차례로 비판하였는데, 첫째 번의 우리의 옛 역사 문헌 자료들이 너무 적은 요인은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AD ?~669)이 평양에 들어와서 전국에 있는 역사책을 불살라 버렸기 때문이요, 견훤(AD 892~935)이 많은 역사책을 모아 두었는데 그가 망하는 바람에 책들이 소실되어 버렸다고 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책이 없어진 탓과 일제침략과 한일합방(AD 1910) 후 우리의 역사책 20여만 권을 빼앗아 불살라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둘째 번의 우리 역사책에 신빙성이 적다는 주장에 대해선 우리의 역사책들이 틀린 점이 있음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역사책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피력했다. 셋째 번의 옛 역사책이 가짜책 즉, 위서(僞書)라고 한 것은 식민 사학자나 강단 사학자들이 자주 쓰는 무지와 무식인의 괴변이요 망언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려 고종 황제 때의 몽고군(원군) 침입으로 기인돼 우리 민족의 사대주의 뿌리를 내리게 한 중국해독(中國害毒)의 중독(中毒), 일제 36년 동안에 강압적으로 본받은 왜제해독(倭帝害毒)의 왜독(倭毒), 8?15해방 후 서구문명에 의해 오염된 서양해독(西洋害毒)의 양독(洋毒) 3(三毒)을 한국병의 세가지 괴물인 3(三怪)라고 말하고, 3(三怪)3(三亡)을 가져와 우리의 문화가 국제 문화의 쓰레기통이 되게 했고,우리의 사상이 국제 사상의 변소간이 되게 했으며, 우리의 종교계가 국제적 종교의 식민지로 되게 했다고 하면서 3(三亡)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주 독립적 개인과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린 먼저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위대한 역사를 바로 찾아 우리의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상고사학회 이중재 회장은 그의 저서 <상고사의 새 발견>의 서문에서 ????역사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역사가 죽어 있음은 살아 있어야 할 생명체가 죽어 있는 것이다. 역사가 죽어 있음은 국민이 죽어 있는 것이요, 역사가 죽어 있음은 조국이 죽어 있는 것이다. 국민과 조국이 죽어 있으니 민족정기가 바로 설 수 없고, 경천애인지(敬天愛人地)의 한민족의 철학사상도 간 곳이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날로 외세의 사악한 종교와 교육에 한민족의 얼과 위대한 천··지의 대자연사상은 언제인가 죽어 버렸다. 그러므로 국민과 조국을 구하려면 한민족 사관을 바르게 정립하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했다.

또 한국 우리민족사 연구회(회장 여운건) 오재성 연구원은 <동이 민족의 뿌리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1991·리 민족사연구회)>라는 그의 저서 머리글에서 ????우리는 고구려, 백제가 패망하고, 신라가 반도에서 대륙으로 진출한 것으로 배워 왔으나 역사기록은 패망 이전(AD 503)부터 두 곳에 신라가 있음을 기록하였고, 백제도 두 곳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제는 AD 668년 이후에도 신라가 둘이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하나를 감추기 위하여 신라방(新羅坊)을 만들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도 당서(唐書) 이전의 한족(漢族)의 기록에도 없는 문구를 만들어서 우리의 역사를 혼돈으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의 민족은 모두 반도민을 민족으로 배워왔다. 이것은 고구려 역사가 배제된 반도사관 때문이었다. 고구려 백제가 망한 후 그 유민의 국가를 정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뒤에 학자들이 반도사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김부식이나 뒤의 학자들이 신라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다면 이미 밝혀졌을 사실을 부정만하다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략)-------------------------------------------------------------------------- 단군 조선시대에는 자료가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정사시대(正史時代)에 우리는 기록이 있음에도 왜곡만을 해왔던 것이다???? 라고 했다. 그 모든 주장들이 우리의 역사가 왜곡 되었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그러한 부분을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는 충정의 뜻이리라.

이제 우리는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찾아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여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흩어져 있는 역사학자나 학회 등의 연구 단체를 결속하여 문화 유적지 탐방 및 발굴을 공동적으로 실행하면서 각종 세미나와 심포지엄 등을 통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정립케 해야 한다.

둘째, 사학자(史學者)들 간엔 학교 교육이나 문헌자료 등의 지식을 통하여 연구하는 지식적(知識的) 사학자(史學者)와 혜안이 열림으로서 깨달음을 얻게 된 지혜적(智慧的) 사학자(史學者)가 있다.

전자의 지식적 사학자는 강단사학자(講壇史學者)나 식민사관(植民史觀)에 의한 교과서적(敎科書的) 사학자(史學者)라고 매도하고 있고, 후자의 지혜적 사학자는 근거 없는 무당들의 잡소리라고 일축한 경우가 있으나 모두가 다 틀린 견해다. 지식이 있는 자가 지혜 있는 자를 존경하고, 지혜 있는 자가 지식 있는 자를 사랑하는 사회 그러한 조직 속에서 상대방의 지식이나 지혜를 인정해 줄만한 건 인정해 줄줄 아는 자만이 자기의 지식이나 지혜를 인정받게 되리라고 본다.

역사는 반드시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식적인 사학자나 지혜적인 사학자가 함께 어울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로 찾고 세운다는 공동체적 사명감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셋째, 범국가와 범국민적 지원이다. 한 나라의 올바른 역사가 모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올바른 세계사(世界史)가 되고, 올바른 세계사가 정립될 때만이 올바른 우주사가 정립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외침과 내란에 의해 소실되었다 하더라도 주변국인 중국사(中國史)나 일본사(日本史)를 깊이 파헤쳐 보면 잃어버린 우리 민족사를 찾아 볼 수 있는 소재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오늘을 사는 국민된 도리와 자세로 역사를 바로 찾고 세우기 위한 범국민적 운동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따라서 사학자로서의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사명자들의 가정적 생계와 사회적 활동의 연구, 토론, 발표 등등의 비용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고, 범국민적인 사명의 성금을 모아주어야 한다고 본다.

넷째로 민족종교(民族宗敎)와 민족사학(民族史學)의 연구와 교육을 통한 홍보가 적극적으로 지원되고 조직적으로 장려되어야 한다. 민족종교가 민족정신의 맥을 이어주기 때문에 민족사학의 연구에 절대적인 요소가 된 까닭이요, 민족사학의 정립은 민족 주체성의 확립에 절대적 요소인 까닭이다. 나와 우리를 모르고 남을 안다고 하거나 알려 한다면 그로부터 얻어진 지식은 결코 나의 것이나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나와 우리를 불신하고, 부정한 자가 남의 것만을 신봉하고 긍정한다면, 결코 나와 우리가 머문 곳에 함께 존재할 가치가 없다. 따라서 우리 민족종교와 우리 민족사학 내지 우리 민족의 뿌리 의식을 외면한 자는 결코 우리 국민으로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끝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국사학자나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들의 보다 적극적인 양심운동이 필요하다. 윌리엄 럿셀 로웰은 ????악한 것을 보고서 말하지 않는 자는 악한 것의 노예이며 부정한 것을 보고 말하지 않는 자는 부정한 것의 노예이다????고 했다. 우리의 역사가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점을 알면서도 그대로 전수한 식민사학자나 강단사학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킨 사람의 노예요 식민주의자의 노예이다. 우리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그러한 거짓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묵인한 국가와 사회에서는 결코 도덕과 윤리의 바탕이 존재한 건전한 민족사회 내지 국가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斷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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