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율려사상(律呂思想))의 역사적 의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신상구(辛相龜)
1. 마고의 사전적 의미
마고(麻姑)에서 마(麻)는 삼베의 뜻이고 고(姑)는 ‘장자’, ‘열자’, ‘산해경’에서 여신의 뜻을 가지고 있다. 마고(麻姑)는 ‘마고할미’, ‘마고선녀’ 또는 ‘지모신(地母神)’이라고도 부르는 할머니로 혹은 마고할망이라고도 한다. 주로 무속신앙에서 받들어지며, 전설에 나오는 신선 할머니이다. 새의 발톱같이 긴 손톱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옛말에 마고가 긴 손톱으로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뜻으로, 바라던 일이 뜻대로 잘됨을 이르는 말로 마고소양(麻姑搔?)이라 하는데 이때 한자로 마고(麻姑)라고 적듯이 예부터 전해오는 전설 속의 노파(老婆)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의 전설과 설화에는 마고에 얽힌 신화가 많다.
중국신화에서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는 `반고(盤古)'의 신화처럼 비슷한 중국의 여신 이름에서 전래된 것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한자가 다르듯 의미도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는 단순히 노파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묻혀 죽은 노파라는 뜻에서 `매고(埋姑)할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어 토착신화로 분류된다.
한국의 마고할미는 설문대할망, 갱구할멈, 안가닥할미, 노고할미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한반도 각지에 존재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주도 설문대할망이 마고할미의 이야기와 가장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다. 18세기 장한철(張漢喆)이 지은 <표해록(漂海錄)>에 사람들이 한라산을 보고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선마고(詵麻姑)이다. 마고에 빌었다는 의미로 선문대할망이 한자 선마고로 표기된 것이다. 제주도의 설문대 할망의 형상은 거인형상을 하였고, 거인, 거식, 게다가 번식능력이 강한 할미로 상징되어왔다.
그런데 마고 신화는 桓因-桓雄-檀君 이전의 창세 기록을 담고 있어 창세 신화라고 할 수 있다.
2. 마고의 역사적 전승 양상
한국의 ‘마고(麻姑)’ 전승은 주로 설화와 유적 및 지명 등에 많이 나타난다. 마고할미는 거인으로 우주나 지형물 창조를 하는데, 주로 치마에다 돌을 담아다가 성쌓기를 한다. 마고할미는 제천단이나 사당에서 신이 되어 제사를 받고 있다. 마고할미가 쌓았다는 산성, 마고할미가 가져다 놓았다는 바위·바위산 등이 있다. 마고할미로 인해 생겨난 지명도 있다. 이런 모든 전승의 주요 특징은 마고할미가 ‘할머니창세신’이라는 점, 그리고 ‘성쌓기[築城]’ 행위를 하는 점으로 나타난다.
마고할미 전승의 원형은 선도사서(仙道史書)인『부도지(符都誌)』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눌지왕대 박제상(朴堤上, 363~419)이 지은『부도지』는 한국 상고사와 삼원조화의 철학을 담고 있어 매우 의미가 깊다.『부도지』 속의 ‘마고신화’는 매우 독특한 창세 기록을 담고 있는데,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으로 표상되는 시간 이전의 기억을 보여준다. 마고는 태초의 우주만물 및 인류를 창조하는 창조신이며, 마고성은 지고지순한 天人( 人)들이 조화로운 삶을 사는 인합일(人合一)의 이상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오미의 화를 계기로 마고성을 나오게 되었다. 황궁씨(黃穹氏)가 대표로 마고 앞에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네 종족에게 ‘天符’를 신표로 나누어주고 사방으로 나누어살게 하였는데, 그것이 현생 인류사의 시작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마고성 분거 이후는 복본의 서약을 잊지 않고 천부를 전승한 황궁씨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다. 선도사서들은 단군조선시대까지를 복본의 기준이 엄격히 지켜진 천부전승기(天符傳承期)로 보고 있다.
『부도지』속 마고의 원형적 의미를 한국선도 존재론의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국선도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一(一氣)’로 보고, 존재의 세 차원으로 天·地·人 三元(三, 三氣)를 제시하는데, 이는 ‘一(三)’, ‘一氣(三氣)’로 표현한다. 한국선도의 오랜 전통에서 ‘一’은 ‘하느님( , 一)’으로, ‘三’은 ‘三’으로 표현되어 왔기에, ‘一(三)’은 ‘삼신하느님(三하느님)으로 표현한다. 곧 존재의 본질인 ‘一(三)’, ‘一氣(三氣)’는 우주의 근원적 에너지이자 약동하는 생명력 자체이며, 이를 인격화한 것이 ‘하느님(삼신하느님)’이다. 삼신하느님이 현상계의 우주만물을 창조하였는데,『부도지』에서는 창조의 주체로서 ‘마고’가 등장하고, '마고'라는 여신에 의해 창조가 이루어진다. 존재의 본질인 ‘一(三)’, ‘一氣(三氣)’가 마고 여신으로 표현된 것이다. 마고가 창조한 천인들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았던 공간이 바로 ‘마고성(麻姑城)’이다. 지고지순한 상태인 천인들은 자체가 바로 마고와 같은 존재이며 따라서 마고성은 人合一(天人合一)이 이루어진 이상향이다. 마고성 출성 이후 사람들은 늘 이상향인 마고성으로 복본하고자 하였다. 복본의 진정한 의미는 잃어버린 天性(性, 本性)을 회복하는 것으로, 한국선도의 수행은 복본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선도는 단군조선 이후 퇴조되었기에 마고에 대한 인식도 변이되었다. 삼신 하느님 마고가 창세의 파편적인 흔적을 지닌 ‘할머니창세신’으로 변이되었고, 신인합일의 이상향인 마고성은 마고할미의 ‘성쌓기’하는 행위로 변이 전승되었다.
한국선도의 마고할미는 할머니창세신으로 성쌓기를 하는데 반해 중국도교의 마고선녀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로 불로장생하는 이미지로 세속화되었다. 다시 말해 중국의 마고는 백성들의 힘든 삶을 도와주는 선녀로 또는 장수신으로 추앙받아 왔으며 지금까지 마고묘, 마고사당이 각지에 산재해 있고, 백성들의 건강과 평안을 관장하는 장수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7월15일을 마고절로 정해놓고 매년 마고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다. 존재의 본질이자 근원적 생명에너지로서의 마고가 중원에 이르러 도교화되면서 장생불사의 선녀 이미지로 변이되었다. 최근 한국선도에 대한 관심으로 마고도 점차 본모습을 회복해가고 있다.
3. 마고사상의 현대적 의미
박제상이 지은『부도지』에 의하면, 마고는 선천과 후천의 중간인 짐세(朕世)에 팔여(八呂)의 음(音)에서 나왔다고 하는 신인(神人)으로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인 마고성에 살면서 천부(天符)를 받들고 지킨다. 그리고 선천을 남자, 후천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 없이 두 딸 궁희(宮姬), 소희(巢姬)를 낳았다고 한다. 이 두 딸 역시 선후천의 정을 받아 배우자 없이 자식을 낳아 네 천인(黃宮, 白巢, 靑宮, 黑巢)과 네 천여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성중에서 나오는 지유(地乳)를 먹고 살면서 네 천인은 律을, 네 천여는 呂을 맡아보게 되었다.
마고사상에서는 온갖 사물을 율려(律呂)로 파악했다. 이는 동양의 천문학, 음성론, 수리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