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단석 양종현은 단단학회 회장을 역임하지 않았다. 글쓴이 localhi 날짜 2014.07.09 00:06

              단석 양종현은 단단학회 회장을 역임하지 않았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신상구(辛相龜)

  단단학회(檀檀學會)는 재야 민족사학자인 이유립(李裕?, 1907-1986) 선생이 대전시 은행동에서 1909년에 이기(李沂)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단학회(檀學會)를 모체로 하여 1966년에 조직하였다.

  단학회는 한일합방 직전인 1909년 대영절(3월 16일)에 이기·계연수 등이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단학회 조직을 서고(誓誥)하며 단학강령 3장을 선포함으로써 창립되었다.

  단학강령은 단단학회에서도 기본 강령으로 받들어지는데, ① 제천보본 이구진실(以求眞實) ② 경조흥방 이구화평(以求和平) ③ 홍도익중 이구통일(以求統一) 등 3가지이다.

  단학회 창립 무렵에는 이미 민족 고유 종교를 표방한 단군교(뒤의 대종교)가 창립되어 있었는데, 이기 등은 나철과 민족상고사 인식 및 단군관, 고유 종교 이해 등에서 의견을 달리하였다.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체의식이 필요하고 민족정신을 귀일시킬 구심체적 종교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같이했지만, 이기 등은 재야에 전해지던<태백일사>나 <단군세기> 등의 문헌에 기록된 역사인식과 고유 종교관에 토대하여 민족종교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단학회는 특히 단군신앙의 삼신설(三神說)에 대한 정의와 신시·개천·단군기원 등 핵심 문제에서 나철의 단군교와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단군교와 별도로 단학회라는 이름하에 단체를 창립하였다.

  단학회는 태백교(太白敎)라는 이름의 종교와 이명동체(異名同體)임을 표방했다. 단학회는 무포교제(無布敎制) 자아신앙(自我信仰)을 신앙원칙으로 삼고 있는 점에서는 다른 교단과 차별성이 있었지만, 종교단체에 준한 교단조직을 영위하면서 삼신하느님(삼신일체상제)을 신앙 대상으로 하여 일정한 의례를 거행하고 <삼일신고>, <천부경> 등의 단군교계 경전을 중시하는 데서는 종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학회는 초대 대종사인 이기가 한일합방이 임박한 시국에 분개하여 1909년 7월 경성여관에서 절식 자결함으로써 침체되었지만, 계연수와 최시흥·이덕수·이상룡 등 독립운동가를 지도자로 삼아 다시 활기를 찾았다. 특히 단학회(檀學會)의 회장이었던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가 1911년 만주 관전현에서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의 자금 지원을 받아 민간에 숨겨 전해 오던 사서들인 <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 등을 한데 묶어서『환단고기(桓檀古記)』 30권을 발간하여 단학회의 위상을 높였다. 그래서 1919년 삼일운동 후에는 최시흥을 중심으로 천마산대를 조직하여 항일 유격투쟁을 전개하였고, 이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민사(義民社)·벽파대(碧波隊)·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 등의 무장독립운동에 그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단학회의 주요 지도자들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옥사했는데, 계연수·최시흥·이상룡·이덕수 등이 모두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거나 옥사하였다. 그러나 단학회는 무장투쟁 과정에서도 단학회는 <단학회보>를 8호까지 발간하였으며, 1919년 3월 대영절에는 국내의 기미독립선언에 맞추어<조선인십보장 朝鮮人十寶章>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덕수의 전사와 함께 회원들이 체포되어 투옥되거나 흩어졌으며, 단학회 활동은 침체되었다.

  해방 후 단학회는 일제에 의해 수감되었던 이용담(李龍潭)이 출감하여 평양에서 단학회를 재건하고 제5대 회장으로 취임했으나 공산 치하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할 수는 없었다. 특히 기관지 ≪태극(太極)≫의 1946년 신년호에<신탁통치반대론(信託統治反對論)>을 게재한 것이 문제가 되어 ≪태극≫의 주간 이유립이 구속되고, ≪태극≫은 폐간되었다. 그러나 6·25전쟁 때 이유립이 월남에 성공하여 1954년부터 동지를 규합하였다.

  1965년에는 기관지 ≪커발한≫을 창간하였고, 1996년에는 단단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이유립이 회장에 취임하였다. 명칭을 단단학회라고 한 것은 ≪신단실기≫의 “사물의 견고한 것을 보고 이르기를 단단이라 한다[見物之堅固曰檀檀].”라고 한 것 등에 의거한 것이다.

    단단학회는 이름을 바꾸면서 태백교라는 종교적 색채에서 분리하여 민족의 종교·철학·역사를 연구-실천하는 단체로의 전환을 천명했지만, 고유 종교라고 주장하는 태백교를 중심으로 민족적 종교통일운동을 추구하는 점에서 이전의 입장은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1979년에 단단학회 회장으로 있던 이유립과 조병윤에 의해 공개된 후 자랑스러운 민족사를 열망하는 일반의 정서에 부응하여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주류 사학계에서는 위서라고 하여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다.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보면, 한국 상고사가 환인(桓因)의 환국(桓國)시대(7대 3301년)에서부터 시작하여 환웅의 신시배달시대(18대 1565년)를 거쳐 단군조선(47대 2096년)으로 이어진 것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상고시대의 한민족은 우수한 문화와 강대한 국력을 가지고 중국을 압도하는 역사를 영위했던 것으로 서술한다.

  단단학회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국사교과서의 상고사 부분 내용이 식민사학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재야학계에서 <국사찾기운동>을 전개할 때 이에 참여했으며, 특히『환단고기』를 토대로 한 역사 개편을 주장했었다.

  단단학회는 한민족사와 종교에 대한 특유의 이론을 보급하기 위해 회일강좌(回日講座)·국사바로찾기강연회 등을 개최하기도 했으며,『환단휘기(桓檀彙記)』·『광개토성릉비문역주( 廣開土聖陵碑文譯註)』·『커발한문화사상사』·『대배달민족사(大倍達民族史)』등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1986년에 중심 인물인 한암당 이유립이 79세를 일기로 사망하면서 활동이 희미하게 되었다. 이유립에 이어 양종현, 박정학, 전형배 등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활동은 미세하다. 항간에 단석(檀石) 양종현(梁宗鉉, 65세) 이 이유립 선생 사후 단단학회 대표를 역임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辛相龜, 64세) 박사가 지난 2013년 말부터 2014년 7월 8일현재까지 30여 차례 세종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양종현을 직접 찾아가 증언받은 바에 의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실제로 이유립 선생 사후 현재까지 단단학회 회장은 박정학 예비역 장군(한배달 이사장)이 맡아오고 있다. 현재 단단학회 본부는 경기도 강화군 화도면 상방리 단학동 산 52번지 일명‘커발한[居發桓]개천각’에 두고 있는데, 개천각에는 대시전(大始殿)과 정수관(靜修觀)이 위치해 있다.

                                      <참고문헌>         

  1. 단단학회,「커발한 제47호」,1975.5.1.

  2. 단단학회 편,『커발한문화사상사 1·2』, 1976.

  3. 계연수 편저,『환단고기(桓檀古記)』, 광오이해사, 1979.

  4. 이강오,「단군신앙 총론 1」,『전북대학교논문집』 10, 1968.

  5. 단단학회 편,『대배달민족사』, 고려원, 1985.

  6. 이강오,「단군신앙 실태분석」,『정신문화연구』3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7. 양종현,『백년의 여정』, 상생출판사, 2009. 11.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 57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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