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0주년을 삼가 추모하며 글쓴이 localhi 날짜 2012.12.18 13:10

         <특별기고>윤봉길 의사 순국 80주기를 삼가 추모하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신상구(辛相龜)

                 1. 중화민국 장개석 총통을 감동시킨 윤봉길 의사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은 상하이 홍구공원(虹口公?) 폭탄투척 사건의 영웅인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 순국 80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날이다.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50분경 일제가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천장절(天長節 : 일왕 히로히토 생일)과 상해 점령 전승기념 축하행사를 엄숙하게 진행하는 도중 갑자기 단상을 향해 물통 폭탄을 투척하여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실제로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 義則)와 상해 일본거류민단장인 가와바타 사다쓰구(河端貞次)는 사망하고,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절뚝 발이가 되었으며.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은 왼쪽 다리가 잘리었고, 제3함대 사령관인 노무라(野村吉三郞) 중장은 오른쪽 눈을 잃었다. 이밖에 무라이(村井) 상해 총영사와 토모노(友野) 거류민단 서기장은 중상을 입었다. 그러자 중국 국민당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극찬했고, 이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는 거사 직후 체포 연행되어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1932년 12월 19일 금택형무소(金澤刑務所) 교외 삼소우(三小牛) 공병작업장(工兵作業場)에서 잔혹하게 총살되어 25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실제로 일제는 윤봉길 의사의 무릎을 강제로 꿇려 굴욕적인 낮은 자세로 십자가에 붙들어 매고는 눈과 이마를 헝겊으로 가리고 전방 10미터 거리에서 딱 한 발의 총알로 이마 정중앙을 명중시켰다. 그러자 윤봉길 의사의 이마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와 헝겊을 붉게 물들이는 바람에 마치 일장기를 그려 놓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우리 한민족이면 누구나 치욕적인 그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업적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아버지 윤황(尹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호는 매헌(梅軒)이다. 10세 되던 해인 1918년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다음 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충격을 받아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했다.

  그 후 윤봉길 의사는 동생인 윤성의와 함께 한학을 공부하였고, 14세 때인 1921년부터는 오치서숙(烏峙書塾) 훈장인 매곡(梅谷) 성주록(成周錄) 선생 문하로 들어가 사서삼경을 배웠다. 문장력이 뛰어나 1923년 오치서숙의 시 대회에서 장원을 했고, 1928년에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1926년에 오치서숙을 졸업하고, 독학으로 국사와 신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민 운동에 관심을 갖고, 오치서숙 동창들과 뜻을 모아 야학을 개설했다. 그는 가난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농촌의 청소년들에게 한글, 역사, 수학, 과학, 농업 등을 가르치면서 수업의 교재로『농민독본』을 저술했다.

  한편 1929년에 부흥원(復興院)을 설립하고 인기리에 '토끼와 여우’를 공연했다. 그러자 윤봉길 의사는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농촌자활운동을 펴나갔다. 그리고 농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수암체육회(修巖體育會)를 조직했다. 일제의 감시가 점점 더 심해져 활동이 어렵게 되자 윤봉길 의사는 23세 때인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유서를 남기시고 충의대교(忠義大橋)를 건너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지도하에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조국 광복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윤봉길 의사가 항일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 중국 상해로 떠나기 직전에 써놓은 유서

그런데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가 상하이 홍구공원 의거 80주년을 맞이 하여 발간한『매헌 윤봉길 전집』에 게재된 『농민독본』, 한시(漢詩), 편지, 일기 등을 보면 윤봉길 의사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후륭한 애국지사임을 알 수 있다.

                      3. 매헌 윤봉길 의사 선양사업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에서는 1965년부터 기념관 건립, 평전과 전집 발간, 동상과 숭모비 건립 등 다양한 선양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사단법인 월진회에서는 매년 4월 29일 상해의거 기념일을 경축하기 위해 1972년에 사적 제229호로 지정된 충의사(忠義祠)에서 매헌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한편 다무라 미츠아키 일본 호쿠리쿠대 교수가 일본 이시카와현(石川縣) 가나자와시(金澤市)에서 양심 있는 일본인들과 함께 ‘윤봉길과 함께하는 모임’을 발족하고 추모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국사교과서에 윤봉길 의사가 상해로 망명하기 전에 향리인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흥원(復興院)을 설립하고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촌 계몽과 부흥 운동을 활발히 전개한 사실을 외면하고 홍구공원(虹口公?) 폭탄투척사건만 간단하게 기록하여 아직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윤봉길 의사를 단지 테러리스트(terrorist)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리하여 앞으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가 국사 교과서의 윤봉길 의사 관련 기록을 수정 보완하는 데에 사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봉길 의사 순국 80주년이 되는 2012년 12월 19일은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 국정을 책임질 최고 지도자를 뽑는 날이다. 특히 투표권을 가진 국민들은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의 숭고한 의미와 충의 정신을 다시 한 번 가슴속 깊이 되새기고 지연, 학연, 혈연, 당리당락을 초월해 훌륭한 대통령 후보자에게 투표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 소개>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향토사학자?시인?칼럼니스트)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A study of Korean inflation, 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A study of shamanic culture in Taean, 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실학자 홍양호의 생애와 업적” 등 5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 소장

태그 500

시청자 게시판

2,116개(73/106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5730 2018.04.12
675 괴테와 아인슈타인을 능가한 천재 김웅용 교수 [1] localhi 2525 2014.10.02
674 서산 읍내동 녹녀봉 단군성전 localhi 2661 2014.09.24
673 홍익인간의 출전과 참뜻 [1] localhi 3070 2014.09.23
672 [조용헌 살롱] [852] 후천개벽과 陰의 시대 [1] clcjstk111 3526 2014.09.21
671 한국의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 방법과 현황 localhi 3702 2014.09.21
670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념하며 localhi 3115 2014.10.01
669 환단고기 북콘서트 독일편 다시보기 문의 [2] gfujp3c 2279 2014.09.28
668 단재 신채호 선생을 정신병자 또는 또라이라고 폄하하는 식민사학자들 localhi 2398 2014.09.17
667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채 살아가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사람들 localhi 2638 2014.09.12
666 어천절의 기원과 제물의 유래 localhi 2756 2014.09.10
665 유관순 열사가 항일독립만세운동의 영웅으로떠오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 localhi 2724 2014.09.09
664 독일과 러시아에 보존되어 있는 한국 민속 관련 자료의 중요성 localhi 2354 2014.09.07
663 이유립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야 localhi 2246 2014.09.06
662 강씨 다음은 안씨인가? clcjstk111 2087 2014.08.30
661 상수 1200년 중수 900년 하수 700년 산다더니... clcjstk111 2823 2014.08.30
660 왜 상제님은 세월호같은 사건은 예견못하셨는지 궁금합니다. [4] clcjstk111 2429 2014.08.30
659 한국은 언제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까 [1] localhi 3005 2014.08.29
658 계룡산 중악단 산신제 localhi 2733 2014.08.25
657 한인 연해주 이주 150주년을 경축하며 localhi 2282 2014.08.21
656 프란치스코 방한의 역사적 의미 localhi 2377 201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