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계룡산 중악단 산신제 글쓴이 localhi 날짜 2014.08.25 01:41
                                                    계룡산 중악단 산신제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신상구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정맥 끝자락에 위치한 계룡산(鷄龍山)은 해발 845m로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해 연천봉·삼불봉·관음봉·형제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계룡산이라고 불린다.
   계룡산은 풍수지리상 한국의 4대 명산으로 왕성하게 도사(道士)를 배출하는 영산(靈山)이고 신화(神化)의 산이다. 계룡산에서 배출된 도사를 계룡산 도사라고 한다. 
  『정감록(鄭鑑錄)』에는 도참사상으로 인해 계룡산을 전쟁, 질병, 기근 등 3재(三災)가 들지 않는다는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했다. 그래서 한때 신흥종교 및 유사종교가 성행했으나 종교정화운동으로 1984년 이후 모두 정리되었다. 한편『정감록(鄭鑑錄)』에는 “한양 4백년에 정씨(鄭氏)가 국권을 빼앗아 계룡산에 도읍한다. 이 새 도읍은 8백년 도읍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계룡산은 14세기 말 조선왕조 개국 직후, 계룡산 남쪽 기슭, 신도안 지구가 새서울의 적격지로 추천되었고, 이성계는 직접 현지 확인까지 한 후 계룡산 새서울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이 계획은 초기 단계에서 취소되고, 현재의 서울지역이 조선의 새왕도로 정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계룡산 주변의 신도시인 계룡시에 대한민국의 군지휘부가 들어서고, 대전에 정부종합청사가 입지하는가 하면, 세종시로 정부의 주요 행정부처가 이전하여『정감록』의 예언이 헛된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고 있다.  
   계룡산에는 좀닭의장풀·개맥문동·금관초·벌개미취·골잎원추리·산바랭이 등 6종의 한국 특산종이 자라며, 이밖에 황매화·팽나무·느티나무 등 식물 611종과 노루·너구리 등 산짐승 23종을 비롯해 총 1,16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한다. 또 갑사 철당간 및 지주(보물 256)·갑사 부도(보물 257) 등 보물 6점을 포함해 지정문화재 15점, 비지정문화재 13점이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다.
   계룡산은 아름다운 자태와 더불어 고찰과 충절을 기리는 사당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계룡산에는 동쪽의 동학사, 서북쪽의 갑사, 서남쪽의 신원사, 동남쪽의 용화사 등 4대 고찰과 아울러 고려 말 삼은을 모신 삼은각, 매월당 김시습이 사육신의 초혼을 지낸 숙모전, 신라 출신 박제상이 제사를 지낸 동학사 등이 있다.    
   계룡산은 봉우리 사이에 7개의 계곡과 3개의 폭포가 있어 운치를 더해주며, 자연경관이 빼어나 1968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계룡팔경은 대표적인 관광명소인데 제1경은 천황봉의 일출, 제2경은 삼불봉의 설화(雪花), 제3경은 연천봉의 낙조(落照), 제4경은 관음봉의 한운(閑雲), 제5경은 동학사 계곡의 숲, 제6경은 갑사 계곡의 단풍, 제7경은 은선폭포, 제8경은 오누이탑의 명월(明月)을 가리킨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중사(中祀)의 예로써 제사를 지내 중악전(中嶽殿) 또는 일명 계룡단(鷄龍壇)이라고도 한다.
  조선조 고종께서 황제로 등극하면서 신기원(新紀元)을 기원했다는 뜻에서 신혼사(神魂寺), 신정사(神正寺), 신원사(新院寺) 등을 신원사(新元寺)로 이름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계룡산 중악단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산8번지 신원사 경내 우측에 위치해 있다. 중악단은 예쁜 꽃담과 그 사이 문 뒤로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중악단 꽃담은 예쁘게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뒤로 수(壽), 복(福), 강(康), 령(寧), 길(吉), 희(喜) 등의 무병, 장수, 복록과 같은 개인의 행운을 기원하는 문자와 아름다운 무늬들이 장식되어 있다. 꽃담의 아름다운 무늬를 감상하며 걷노라면, 중악단 안에서 소원을 비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나지막하게 들을 수 있다.
  중앙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다. 중악단의 건물들은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1999년 3월 2일에 보물 제1293호로 지정된 계룡산 중악단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건물이다. 현존 건물은 고종 16년인 1879년에 명성황후의 명에 의해 재건한 것으로 팔작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다. 중악단 건물들의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루를 연상하게 한다.
  묘향산에 상악단과 지리산에 하악단이 있다 하여 계룡산 산사(山祠)를 중앙단(中嶽壇)이라 개칭하고, 제를 올렸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기 전에 명산을 다니며 기도해오다가 조선을 개국한 후 3년째인 1394년에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山神)이 현몽하므로 이를 알게 된 태조가 창건을 명하고 제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효종 2년인 1651년에 폐지되었다가 고종 16년인 1879년에 월주화상(月珠和尙)이 재건하여 명성황후(明成皇后)도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전한다. 1.5m 높이의 석조기단 위에 서남향으로 지은 건물로 사찰건물과 흡사하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여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놓았다.
  중악단은 궁궐양식과 비슷하여 이곳이 조선왕조의 제단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처마의 공포, 담장의 치장 등이 우아하고도 장중하다.
  중악단의 공포(?包)는 내4출목(內四出目)·외3출목(外三出目)으로 구성되었고, 밖으로 돌출된 쇠서의 끝에는 연봉(蓮峰)을 조각하였으며, 내부의 살미첨차도 복잡한 장식판으로 변형시켜 봉황머리·연봉 등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지붕은 앞뒤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세워 우물천장을 설치하였으며, 건물 측면의 기둥에서 대들보에 걸친 충량(衝樑)의 뒤끝은 용머리모양으로 조각하였다.
  중악단은 조선 후기의 우수한 건물로 내출목의 화려한 포작(包作)과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 위의 귀포가 매우 아름답다.
  계룡산산신제보존회(회장 : 구중회)가 2000년 4월 20일부터 4월 23일까지 신원사 중악단에서 계룡산 산신제를 올린 적이 있다. 그 후 해마다 음력 3월 16일 전후에 계룡산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우리 한민족은 천손(天孫)으로 예로부터 칠성신과 용왕신, 산신께 제를 올렸다. 칠성신은 하늘의 북두칠성 즉 환인 천제 7분을 상징하고, 용왕신은 칠성신인 환인천제의 명을 받들어 개천하신 18분의 환웅천제를 상징하며, 산신은 단군천제를 상징한다. 그리하여 산신제는 단군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에 나라 산신제는 매년 음력 3월 16일부터 4일간 국행(國行)으로 행해졌다.
  계룡산 산신제는 공주민속극박물관 심우성 관장께서 100년만인 1998년에 중악단의 나라 산신제를 오늘날의 시각에서 되살려냈다. 계룡산 산신제는 유가식 산신제례와 웅진단 수신제례, 불가식 산신대제, 무속식 산신굿과 설위설경 등으로 짜여져 있다.  
  조선시대 상악단과 하악단은 이미 없어져 그 유적을 볼 수가 없고, 중악단만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참고문헌>
  1. 具重會,『계룡산 굿당』, 국학자료원, 1999.12.30.
  2. 공주시지편찬위원회,『공주시지 별책 공주의 자랑』, 대문사, 2002.12.28. pp.54-55.
  3. “계룡산 중악단”,  한국콘텐츠진흥원,『문화원형백과 한국 전통의 담』, 문화콘텐츠닷컴, 2010.
  4. "계룡산“, 두산 네이버 지식백과, 2014.
  5. “鷄龍山中嶽壇”,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지식백과, 2014.
  6. 김우선, “계룡산 흡사 닭벼슬을 한 용의 자태”, 경향신문, 1997.3.13일자. 
  7. 최원석, “새 시대를 꿈꾼 민중의 갈망, 용처럼 꿈틀대다-계룡산”, 경향신문,  2014.
8.23일자. 18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등 5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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