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경북 칠곡군 약목면에서 이원순 할머니를 만났다. 자신의 시 ‘어무이’를 쓴 플래카드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이승규 기자

‘80이 너머도 / 어무이가 조타 / 나이가 드러도 어무이가 보고시따 / 어무이 카고 부르마 / 아이고 오이야 오이야 / 이래 방가따.’

여든이 넘은 나이에 한글을 깨친 뒤 시집 4권을 내 화제가 됐던 경북 칠곡 할머니들이 이제 국어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다.

25일 칠곡군에 따르면, 출판사 천재교과서는 내년에 발간하는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칠곡 할매’들이 쓴 시와 그림 4편을 싣기로 했다.

‘성장’의 의미를 다룬 단원에 강금연 할머니의 ‘처음 손잡던 날’, 김두선 할머니의 ‘도래꽃 마당’, 박월선 할머니의 ‘이뿌고 귀하다’, 이원순 할머니의 ‘어무이’가 실린다. ‘70여 년 동안 이름조차 쓰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며 어느덧 삶까지 시로 표현했다’는 소개 글도 달린다.

교과서에 만학도 할머니들의 시를 싣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천재교과서 측은 “보통 성장하면 어린 학생을 떠올리는데 칠곡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성장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배울 만한 좋은 성장 사례라고 생각해 교과서에 담았다”고 했다. 천재교과서의 국어 교과서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교과서 중 하나다.

그래픽=이진영

“언니들 우리 교과서 나왔데이….”

이날 칠곡군 약목면에서 만난 이원순(87) 할머니는 소감을 묻자 눈시울을 붉혔다. 함께 교과서에 등단한 언니 강금연 할머니는 작년 1월, 김두선 할머니는 올 6월 별세했고 박월선(96)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요양원에 있다. 막내인 이 할머니만 만날 수 있었다.

이 할머니 등 ‘칠곡 할매’들은 2013년 칠곡군이 연 ‘성인 문해 교육’ 강의를 수강하면서 처음 한글을 깨쳤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한글이었다. 한글을 배우며 시 여러 편을 썼다. 2015년 10월 동료 할머니들과 함께 시집 ‘시가 뭐고’를 내 ‘칠곡 할매 시인’으로 불렸다. 늦깎이 공부의 고충을 담은 ‘시가 뭐고’는 2주 만에 1000부가 완판됐고 지금까지 1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이후 시집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작대기가 꼬꼬장 꼬꼬장해’ ‘‘내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도 냈다. 할머니들의 시는 서툰 맞춤법으로 투박하게 썼지만 뭉클한 감동을 준다는 평을 받았다. 할머니들이 소소한 일상에서 느낀 감정과 살아온 인생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썼기 때문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한없이 따뜻했던 우리 할머니가 떠오른다’는 반응도 많았다.

칠곡군은 2020년 할머니들과 ‘칠곡 할매 서체’도 만들었다. 할머니들이 넉 달 동안 2000장 넘게 연습한 끝에 완성한 것이다. 칠곡 할매 서체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새해 연하장에 쓰면서 화제가 됐다. 덕분에 작년 1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기도 했다.

칠곡 할매 중 8명은 ‘수니와 칠공주’라는 랩 그룹도 결성했다. 뒤늦게 배운 한글로 가사를 써 7곡을 지었고 외신에도 나왔다.

지난 22일 칠곡군은 할머니들의 ‘교과서 등단’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할머니는 교과서에 실린 자신의 시 ‘어무이’를 낭송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재욱 군수는 “칠곡군에는 호랑이는 가죽을, 칠곡 할매들은 시를 남긴다는 말이 있다”며 “칠곡 어르신들의 열정을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칠곡군은 네 할머니가 공부한 약목면에 ‘교과서 거리’를 조성하기로 했다. 칠곡 할매들의 시와 그림을 벽화로 그린다는 계획이다. 칠곡 할매들의 시와 랩 등을 전시하는 칠곡할매문화관도 개관한다.

이 할머니는 “내 시가 온데간데 다 퍼져가꼬 학생들이 엄마아빠 중히 생각하고 사랑도 마이 받고 자랐으면 싶다”고 했다.

                                                                                                  <참고문헌>

  1. 이승규, "여든 넘어 글 배운 칠곡 할매의 시, 교과서 실린다", 조선일보, 2024.11.26일자. A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