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1만엔 새 지폐 주인공, 시부사와 에이이치 淸富의 삶 대해부(2)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11.25 01:46


                             1만엔 새 지폐 주인공, 시부사와 에이이치 淸富의 삶 대해부(2)

 

백수(白壽)의 그는 맑은 표정에 목소리가 단단했다. ‘에이이치가 지금껏 일본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묻자, 그는 요즘 세태부터 꺼내놨다. “최근 자본주의 구조는 예전보다 많이 날카로워지지 않았나요. 이에 사람들이 증조부(에이이치)의 따뜻했던, 친절했던 사상에 목말라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다 같이 잘 살자’며 협동했던 그 시절 말이죠.”

그래픽=김하경

그는 인터뷰 중 빛바랜 사진이 든 액자 하나를 꺼내 보였다. 사진엔 새하얀 아기 옷을 입은 자신을 조심히 안아주는 에이이치의 모습이 담겼다. 마사히데는 “(증조부가) 나를 엄청 소중하게 여겨줬다고 하더라”며 “증조부는 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는데, 증조부가 돌아가신 1931년 11월 장례식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왔던 게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고 했다. 마사히데는 자신의 아버지에 이어 증조부에 대한 공적을 기리는 활동에 전념했다. 마사히데 부친은 생전 에이이치에 대한 전기(傳記)를 4만5000쪽, 책 68권으로 집필했다. 약 30년이 걸렸다고 했다. 마사히데는 이 자료를 일일이 디지털화해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서 만난 시부사와가(家) 당주 시부사와 마사히데(99). 어린 시절 증조부인 시부사와 에이이치와 찍은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도쿄=김동현 기자

일생 동안 증조부를 연구한 그에게 ‘증조부는 어떤 기업인이었는지’ 묻자,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난 증조부가 재계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화인’에 가까웠죠. 증조부가 자손들에게 물려준 유산은 약 1000만엔(현재 환율로 약 8500만원)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미쓰이 등 다른 재벌들은 5억엔, 10억엔이 넘는 유산을 대대로 물려줬어요. 또 증조부는 500개 기업을 세우면서도 다른 재벌처럼 본인 이름을 딴 회사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기업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사히데에 따르면, 에이이치는 생전 500개 기업을 설립하고 경영하면서도 단 하나의 기업도 소유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후임도 후손이 아닌 적임자를 찾아 맡겼다. 번 돈은 그가 세운 기업보다 많은 600여 개의 사회 공헌 단체를 세우거나 돕는 데 거의 썼다. “자신보다 나라의 성장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어요. 언제나 공익을 추구했단 점에서 지금 일본이 있을 수 있는 데 기여한 문화인에 가깝단 거죠.”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파리 만국 박람회의 잔상

이날 마사히데에게 들은 설명과 그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 기념재단의 기록을 토대로 요약한 에이이치의 일생은 이렇다. 막부(幕府·무사 정권) 말기였던 1840년 3월, 에이이치는 일본 무사시국(國) 한자와군의 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시부사와 이치로에몬·1809~1872)로부터 농·상업 지식을 배우고, 다섯 살 무렵부터 중국 유교 경전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을 정도로 영특했다고 한다.

마사히데와의 일본 현지 인터뷰에 동석해 자문을 해준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 자본주의의 설계자’ 저자 신현암 팩토리8 대표는 “에이이치는 1853년 미 페리 제독의 일본 개항 요구를 계기로 일어난 존왕양이(尊王攘夷·천황을 받들고 오랑캐를 배척한다) 운동에 심취해 막부 타도를 외치기도 했다”며 “그러나 교토로 올라와선 15대 쇼군(將軍·막부 수장)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측근 히라오카 엔시로와의 만남을 계기로 오히려 막부의 신하가 된다”고 전했다.

쇼군 눈에 든 에이이치는 1867년 도쿠가와의 어린 동생 아키타케와 함께 프랑스 파리 만국 박람회 파견단 일원으로 발탁됐다. 이듬해 귀국하기까지 그는 서양 10여 국을 탐방하며 사실상 일본인 중에 최초로 은행·주식회사 제도를 비롯한 자본주의 체제를 경험하게 된다.

에이이치가 일본에 돌아온 1868년, 일본에선 왕정복고를 주장한 쿠데타 세력과 막부 사이의 전쟁(보신전쟁)에서 쿠데타 세력이 승리해 막부가 몰락했다. 일본 근대화의 포문을 연 메이지 시대(1868~1912) 대장성(현 재무성) 차관에 발탁된 그는 서양에서 배운 자본주의 체제를 토대로 도량형 기준을 제정하고 우편·화폐·철도 등 자본주의에 필수인 제도들을 도입했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파리 만국 박람회 등 유럽을 돌아보며) 그의 머릿속에 서양 자본주의의 잔상은 너무나 짙게 남았다”며 “이에 에이이치는 관직을 그만두고 경영인으로 변신해 상업을 부흥시키려는 마음을 먹게 된다”고 했다. 1873년 돌연 대장성을 사직한 에이이치는 당시 미쓰이 가문이 세운 제일은행(현 미즈호은행) 총감역(최고직)으로 영입된다. 이때부터 500여 기업을 세우며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이자 일본 경제 기틀을 잡은 그의 업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청부(淸富)’를 강조한 에이이치의 사상은 그를 일본 지폐 최고액권(1만엔) 주인공으로 부활시킨 배경이라는 해석이다. 국중호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국제상학부 교수는 “현대인들이 기리는 에이이치의 사상은 ‘논어와 주판’ ‘도덕경제 합일설’ ‘합본주의’ 등이 있다”며 “이들 사상은 공익을 바탕으로 깨끗하게 일군 돈은 부끄럽지 않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경제 침체가 부른 에이이치 신드롬

WEEKLY BIZ는 에이이치의 장남 시부사와 도쿠지(1873~1932)의 삼남(三男)의 손자 시부사와 겐(63)과도 지난달 26일 화상으로 만났다. 마사히데의 조카인 그는 2001년 ‘시부사와 앤드 컴퍼니’를 설립해 매해 100여 곳의 국내외 기업, 경제 단체에서 고조부의 경제 사상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

‘이번에 고조부가 1만엔권의 주인공이 된 기분은 어떤지’ 묻자, 겐은 “정말 영광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현금 사용이 줄어) 새 지폐 발행은 이번이 거의 마지막일 테니 더 영광스럽다”고 했다. 겐은 일본의 에이이치 신드롬을 일본 경제 ‘잃어버린 30년’ 극복을 위한 염원으로 읽기도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일본 경제엔 일종의 ‘파괴와 번영의 리듬’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은 1990년부터 30년 동안 어려운 시기를 겪은 이후 지금은 다시 한번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시기라고 본다”며 “이런 중요한 때에 19~20세기 일본 번영을 이끈 고조부를 다시 끌어와 그때와 같은 성공을 이루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하경

에이이치가 만약 지금 살아있다면 일본 경제에 어떤 조언을 했을까. 겐은 기자가 던진 이 질문에 잠시 고민하더니, 에이이치의 ‘논어와 주판’에서 인용했다는 글 하나를 들려줬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고식적으로 기존 사업을 계승해 안주할 때가 아니다. 창업의 시대이자 모두가 큰 각오를 갖고 만난(萬難)을 무릅써 용왕매진(勇往邁進)할 때다’ 즉 과거 쇼와 시대 성공이나 헤이세이 시대 트라우마에 얽매이지 말고, 레이와란 새 시대를 맞아야 해요. (고조부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그래픽=김하경

◇후대가 기억하는 에이이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21년 10월 임기를 시작하며 장기 발전 계획 ‘새로운 자본주의’를 발표했다. ‘부자와 빈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분열을 막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에 대해 겐은 “2017년 굉지회(자민당 기시다 파벌)로부터 강연 의뢰를 받고 ‘사회 다수가 빈곤에 빠지면 행복은 계속될 수 없다’는 고조부의 사상을 소개한 적 있다”며 “은행원 출신으로 예부터 에이이치 사상에 흥미가 있었던 기시다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자본주의’ 계획을 구상한 것 같다”고 했다.

2021년 출범한 기시다 내각의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 회의’ 위원 명단엔 겐도 포함됐다. 그는 “3년간 29번의 회의가 열렸는데 총리도 매번 참석했다”면서 “돈보다 ‘인적 가치’를 중시했던 에이이치의 사상이 (회의에서) 주로 거론되는데 실제 일본에선 최근 2~3년 새 기술보다 인력을 중시하는 의식이 커졌다”고 했다.

평생 번 돈을 교육·의료·빈민 구제 등과 같은 공익·사회복지 사업으로 환원하기도 한 에이이치에 대해 ‘어떻게 그리 욕심 없이 살 수 있었느냐’고 질문하자, 겐은 답했다. “욕심이 없었다고요? 전혀 반대예요. 고조부는 엄청나게 욕심이 많았습니다. 개인, 일족의 번영이 아니라 국가의 번영을 꿈꿨잖아요. 그 동력은 일본이란 나라를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맹렬한 애국심에서 비롯됐을 겁니다.”

                                                      <참고문헌>

  1. 김동현, "청부의 삶, 자손에 물려준 유산 1000만엔, 500개 기업 하나도 소유 안해", 조선일보, 2024.7.5일자. B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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