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성직자인 박대성(47) 교무는 ‘명상 보부상(褓負商)’을 자처한다. 고교생 때 ‘그저 명상이 좋아’ 원불교에 첫발을 디딘 후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원불교는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오랜 수행 끝에 1916년 개교(開敎)한 종교. 선(禪), 명상이 바탕에 깔린 종교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교전(敎典·원불교 경전)’에도 수행에 관한 설명이 정리돼 있다. ‘생활 불교’를 표방하는 원불교 명상 수행의 특징은 장소와 시간을 따지지 않고 일상생활 가운데 실천하도록 권한다는 것.
박 교무는 원불교의 명상 수행법과 현대적인 다양한 수행법을 접목해 일반인들에게 명상을 보급하고 있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많을 때는 1년에 100회 가까이 명상 지도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와중인 2020년 8월 원불교 명상법을 정리한 책 ‘내 생애 첫 명상’(도서출판 동남풍)을 펴냈고,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작년과 올해 ‘미트 마인드(Meet Mind)’란 이름의 명상 콘퍼런스도 개최했다. 원불교 성직자 가운데 ‘신세대’에 속하는 그는 “제가 명상에 관심을 갖고 수행하고 보급한 2000년대 이후 시기는 한국 사회에 명상이 붐을 이루는 시기와 겹친다”며 “앞으로도 명상에 관심 있는 분들이 부르시면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 참선이 좋아 원불교 교당을 찾아갔다고요? 참선이라면 불교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TV 다큐에서 참선하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좋아 보였어요. 그런데 당시 청주의 절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참선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그때 마을 게시판에 붙은 공고를 보고 원불교 청주교당 시민선방의 무료 명상 강좌를 찾아갔어요. 매 주말 단전호흡과 선(禪) 요가를 배웠는데,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보충수업도 빼먹고 명상하러 다녔죠.”
-그 경험 때문에 진로도 원불교 교무(성직자)로 정하셨다고요?
“저희 집안은 종교가 따로 없었지만 저는 종교에 관심이 많았어요. 여러 종교를 다니며 공부도 했지요. 그중 원불교가 끌렸어요. 교무님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에 ‘교전’을 구입해서 공부하다가 3학년 5월쯤에 입교(入敎)하고 원광대 원불교학과로 진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결심 이후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원광대 입학 후에는 본격적으로 참선 명상 수행을 하셨나요?
“아닙니다. 원불교는 2년간 ‘간사’라는, 불교의 ‘행자’처럼 기본 교육 기간이 있어요. 원광대는 96학번으로 입학한 후 휴학하고 청주교당에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교당 문 열고 5시 좌선하는 것을 시작으로 청소하고 수행자로서 기본 교육을 받고 군대도 다녀온 후 2001년 복학했지요. 간사 시절과 해병대 복무할 때에도 틈날 땐 혼자 조용히 수행을 하곤 했습니다. 복학 후에는 방학 때마다 혼자 민박집 같은 것을 얻어서 집중 수행을 했습니다.”
-원불교의 명상은 다른 종교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원불교는 단전주선(丹田住禪)이라고 단전에 마음을 머물게 하는 수행을 위주로 합니다. 단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저는 ‘코어 근육’이라고 표현합니다. 코어 근육에 마음을 모으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또 불교의 화두(話頭)처럼 의두(疑頭) 스무 가지를 놓고 수행합니다. 원불교는 기본적으로 영육쌍전(靈肉雙全), 즉 마음과 몸의 조화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생활 불교이지요.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시간에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자체가 수행이어야 하지요.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요. 그런 명상 방법이 소태산 대종사(원불교 창시자)의 ‘정전’에 다 기록돼 있습니다.”
-혼자 집중 수행을 하면서 특별한 체험도 하셨나요? “잠자고, 밥 먹는 시간 빼곤 하루 12시간 이상 수행했어요. 열정이 넘쳤지요. 수시로 지도 교무님께 여쭈면서 수행했어요. 한번은 좌선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팠어요. 이러다 장애가 생기는 것 아닌가 공포심이 밀려올 정도였지요. 그때 교무님은 ‘역대 도인 중에 좌선하다가 다리 불구 된 사람이 없는데, 네가 처음이 된다면 얼마나 영광이냐’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들으니 통증이 싹 사라졌어요. 또 몇 가지 체험을 하고 교무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한참 설명을 드렸는데 교무님이 ‘네가?’라고 물으셨어요. 그 순간 아직도 ‘나’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 이후로는 신비 체험에 관한 집착을 버렸어요. 사실 체험에 집착할 때에는 제가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도 깨달았죠. 왜 소태산 대종사님이 신비 체험에 집착하거나 극한의 고행을 하지 말라고 하신지도 알게 됐지요.”
-단전주 수행에 대해 ‘궁수가 과녁에 지속적으로 활 쏘기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비유하셨어요.
“무수히 연습을 하다 보면 움직이는 과녁에나 말을 타고 활 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행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이것은 원불교에서는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이라고 합니다. 무시선·무처선이 가능해지려면 평소의 수행 즉 정시선, 정처선이 우선 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종사는 명상의 이로움 10가지 중 첫 단계로 ‘경거망동하지 않게 된다’를 꼽으셨어요.
“‘좌선의 공덕’을 단계별로 설명하신 거예요. 명상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경거망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경거망동만 하지 않아도 얼마나 생활이 나아집니까. 계속 명상 수행을 하면 차츰 병고(病苦)가 줄어들고, 기억력과 인내력이 좋아지고, 착심(着心)과 사심(邪心)이 줄어들고 결국에 생사에 자유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하시지요.”
-스스로 ‘명상 보부상’이라고 하시지요?
“저는 차비만 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갑니다. 2010년부터 원불교 대학 선방(禪房)에서 명상 지도를 했고, 2014년부터는 외부 강연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보험설계사, 회사원 가리지 않고 불러만 주시면 가지요. 많을 때는 1년에 100번가량 명상 강연을 한 적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지도하는 ‘실전 팁’ 같은 것이 있나요?
“스트레스 받을 땐 ‘줌아웃(Zoom-Out)’ 기법을 활용하시라고 권합니다. 스트레스 받는 일, 부정적인 감정 등을 시각화해서 눈앞에 그려보는 겁니다. 그리고 화면을 차츰 나에게서 멀리 보내는 연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한 점이 돼 사라질 때까지요. 이런 훈련을 하면 감정의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지요. 또한 감정을 ‘나’와 동일시하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감정 상태에 따라 지도하는 명상법도 다른가요?
“분노가 많은 분께는 자애 명상, 정서적으로 민감한 분에게는 숫자를 세는 수식관(數息觀), 지적인 분께는 의두(화두) 명상을 권합니다. 또 감정에 따라 각기 다른 호흡법도 권합니다. 흥분이나 긴장이 심할 때에는 내쉬는 호흡을 길게 하면 이완과 평정에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우울이나 무기력한 상태일 때에는 들이쉬는 호흡을 길게 하면 활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되고요.”
-’번아웃’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어떤 명상을 권하시나요?
“밥을 사줍니다(웃음). 너무 지친 분들은 우선 쉬어야 합니다. 밥이나 차를 함께하면서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 한국인들은 명상조차도 열심히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몸의 상태를 관찰하는 ‘보디스캔’을 할 때 잠을 자는 경우에도 그냥 자라고 내버려 둡니다. 명상도 ‘쉬었다 해도 된다’고 말씀드리죠.”
-선 공부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오래오래 계속’이라고요? 역설적인데요.
“원불교 정전에도 ‘오래오래 계속하면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없는 심락을 누리게 되리라’라고 하셨어요. 저도 청년 시절에는 조급한 마음에 열정적으로 수행했지만 오히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과도하지도 태만하지도 않게 꾸준히 오래오래 계속 수행하는 것이 제일 빠른 지름길입니다. 하루 1시간이라도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불교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을 강조하지요? 명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원불교는 용(用) 즉 ‘쓰는 것’을 강조합니다. 무아도 그냥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것이 없으니 잘 쓰고 가자’는 것입니다. 100년이 갓 지난 원불교가 현재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명상 보부상’으로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참고문헌>
1. 김한수, "명상조차도 열심히 하려는 한국인...쉴 땐 쉬어도 됩니다", 조선일보, 2024.11.13일자. A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