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학 원조 충청 여성문인 세상에 알릴 것
주지하다시피 충청은 양반의 고장이다.
양반은 말 그대로 조선시대에 무반(武班)과 문반(文班)을 아울러 이르던 말이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상류 계급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요즘엔 점잖은 사람을 양반이라고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양반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양반이 양반으로서 진정한 존경을 받기 위해선, 그 안에 '선비 정신'이 들어있어야 한다.
선비 정신은 우선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出·處)'를 아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후 도덕적 수양을 바탕으로 사회적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이 선비 정신을 육성하고,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곳엔 여성이 있다.
가정 속의 교육자이자 할머니, 어머니, 아내라는 이름의 여성들이다.
대표적으로 충청의 여성 문인 김태희(金兌喜, 1632-1701)는 대제학을 지낸 옥오재 송강기의 어머니다.
김태희는 아들 송강기에게 벼슬자리를 연연해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는 "벼슬 버리기를 코를 풀고 침을 뱉듯 하라. 어찌 구차하게 목사의 자리에 있겠느냐"라고 말할 정도로 단호하고 의연했다.
아들의 관직 생활에 따른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의 선비적 처신에 어머니의 결단력과 충고가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충청 여성 문인들은 경직되고 불평등한 신분적 차별과 교육 환경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학문적 열망을 포기하지 않은 남다른 선각자들이다.
열악한 환경에 물러서지 않고 밤잠을 아끼며 고뇌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답을 찾으려 했고, 지난(至難)한 고통의 서사를 글로 써 내려갔다.
그 결과 한시집과 일기, 편지, 여행기, 제문, 상소문 등 다양한 남김으로 자신의 삶과 역사를 증명했다.
'문희순의 충청女지도'는 충청도 각 지역의 비범했던 여성 문인 문학로드로 떠나는 여행으로, 앞으로 1년간 연재될 예정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 충청의 선비 정신과 격조 높은 역사 속 여성 인물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대전일보는 창간 74주년 '로컬이 미래다' 특집 기획으로 조선시대 충청 여성 문인 25명의 발자취와 현대적 의의 등을 소개하는 '문희순의 충청女지도'를 1년간 연재한다.
문희순 박사(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고전문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30여 년간 조선시대 여성 문인에 대한 연구·콘텐츠화에 전념하며, 역사 속에 묻혀 있었던 충청 지역 여성 인물 수십 인을 새롭게 발굴해 세상에 알린 여성문학계의 대표 학자다.
문 박사는 저서 '충남 여성의 삶과 자취'(2018)와 논문 '조애중의 병자일기 배접지에 기록된 제문과 간찰'(2019) 등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김호연재의 한시집을 번역한 '법천의 하루'(2012)는 전국적인 관심을 이끌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다른 포부로 새해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문 박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지난 4일 대전일보사 5층 뉴스국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 왜 조선시대 여성 인물에 천착하는가.
"국문과 입학 후 고전문학을 전공하면서 늘 조선시대에 산 것 같다. 학부 졸업논문을 쓰면서 우리나라 역대 여성 한시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졸업논문 쓰기에 급급했지만, 연구자의 길에 접어든 이후 조선시대 여성 문인들의 문학 작품들이 '고통 속에서 피워낸 꽃'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30여 년 동안 후손들의 다락방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여성문집을 발굴했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피를 찍어 글로 써 내려간 여성 문인들의 비범함을 봤다. 그것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명이 됐다.
- 향후 1년간 많은 이야기가 다뤄질 것이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많은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충청과 여성, 문학작품, 삶의 이야기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삶은 가족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 문인들의 이야기 속에선 자연스레 남편과 자녀, 친정, 시댁 등 가족 이야기도 구성지게 등장할 것이다."
- 이번 연재는 어떤 내용으로 이뤄지는가.
"우선 그간 발표했던 논문이나 글들을 다시 섬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또 이번 연재를 계기로 여성 문인의 작품과 연대기 등을 정밀하게 고증할 계획이다. 충청 지역 구석구석 분포돼 있는 후손이나 생가, 유적지들을 다시 답사하고, 사진이나 영상도 새롭게 촬영할 예정이다. 독자들이 연재를 읽고 여성 문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사진은 문헌, 고택, 후손, 생가 마을 풍경 등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발로 뛰겠다."
- 글의 형식이나 문체(文體)가 중요하다. 아무래도 연구자들의 논문 형태는 대중들에겐 불편함이 앞선다.
"동의한다. 그 부분이 걱정이긴 하다. 논문 형태의 글쓰기는 대중들에겐 따분하고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번 연재는 대중들을 위한 글이기 때문에 부담되기도 하며, 2주에 한 번씩 글을 작성한다는 것도 만만치는 않다. 벌써부터 긴장이 되지만, 할 수 없다. 수십번 퇴고(堆敲)해야 할 것 같다. 많은 도움과 자문을 바란다."
- 지역학 또는 지역사가 왜 중요한가?
"이번 연재가 대전일보 창간 74주년 기념 '로컬이 경쟁력'이란 기획의 일환으로 추진됐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K-한류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인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 내고 있는 K-콘텐츠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즐기는 문화들이다. 최근 가수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노래 'APT.'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조회수만 1억 회를 넘겼다고 한다. 문학에서도 한강의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자, 전 세계인들이 '한강 앓이'를 하고 있다. 지역학과 지역사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충청 지역 우리 땅에서 수 백 년간 탄탄한 문학 역사를 이끌어 온 여성문인들의 삶과 작품들이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K-문학 한류의 원조는 충남 서천의 김임벽당이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충청 여성 문인들은 문학가와 가정 경영자, 교육가, 실천가 등의 모습으로 충청 선비 정신을 이끄는 데 힘쓰신 분들이다. 조선이라고 하는 어둠의 조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또 삶을 개척해 내신 소중한 분들이다. 이분들의 문학 작품을 통해 하루를 위로받고 충만해지시길 바란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 드린다. 또한 이 자리를 빌어 1년 동안 지면을 할애해 준 대전일보에 감사를 드린다."
<참고문헌>
1. 문희순/우세영/이태희, "K-문학 원조 충청 여성문인 세상에 알릴 것", 대전일보, 2024.11.11일자.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