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사(碧史) 한영숙(韓英淑)의 생애와 업적
벽사(碧史) 한영숙(韓英淑, 1920-1989)은 충남 천안 출신의 전통무용가로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40호 학무(1995년, '학연화대합설무'로 개칭)의 前 예능보유자이다.
할아버지 한성준(韓成俊, 1874-1941)이 정립한 근대 한국 전통 무용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이어지게 했던 20세기 한국 전통무용계의 거목(巨木)이다.
1. 생애
벽사 한연숙은 1920년 2월 2일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출생하였으며, 13세 때부터 할아버지였던 한성준의 문하에서 춤을 배웠다. 한성준은 19세기 말~20세기 초반기에 활동했던 당대의 명고수로도 유명해 명인명창의 장단을 도맡아 쳤으며, 동시에 경기·충청도 지역에 전승되어왔던 재인 계통 춤을 집대성 해 근대적 무대 예술로 탈바꿈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한영숙은 한성준의 문하에서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학춤, 검무, 선비춤, 바라춤 등을 배웠다.
18세가 되던 1937년 10월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있었던 한성준의 첫 무용발표회를 통해 처음 무대에 데뷔하였다. 이후 일본, 만주, 황해도, 평안도 등지로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김소희, 박귀희, 박초월 등이 돈암동에 개설한 한국민속예술학원을 개설하고 무용교사로 일했고, 이후 1960년 이곳이 한국국악예술학교(現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로 개편된 뒤에도 계속 무용교사로 재직하였다. 이때 길러낸 제자들 가운데 사물놀이의 김덕수와 최종실이 있다.[8] 그 외에 한영숙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서울예술대학, 세종대학교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국립무용단, 서울시립무용단에서도 단원들을 대상으로 무용을 가르쳤다.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現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이때 문하의 이애주(1947년~2021년 5월 10일)와 정재만(1948년~2014년)을 각각 여자, 남자 후계자로 지정하였다. 1971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무의 예능 보유자로 지정됨에 따라 두 종목의 예능보유자로서 활동하였다.
말년에는 15년 가까이 간경화증을 앓았으며, 또 만성심근경색으로 투병 생활을 길게 이어왔다. 그러한 와중이었던 1988년 1988 서울 올림픽 폐막식 무대에서 살풀이춤을 보여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듬해인 1989년 10월에 만성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2. 예술세계
한마디로 담백하고 깊이있는 춤 세계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한영숙은 승무와 학무로 예능보유자가 되었지만, 그 외에도 살풀이춤, 태평무에도 능했다. 특히 경기, 충청 지역에서 전승되어 왔다는 재인계통 살풀이춤의 대가로 손꼽혔다. 1988 서울 올림픽 폐막식 무대에서 선보였던 살풀이춤의 경우 당시 무용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호연으로 꼽혔으며, 사진기자 정범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그 무대를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면서 다른 공연장에서 한영숙에게 그 아쉬움을 토로하자 한영숙이 본래 태평무를 추기로 되어 있었던 것을 바꾸어 살풀이를 추어서 그것을 대신 사진에 담았다고 한다. 한영숙의 살풀이춤은 빠른 장단에서 나타나는 리드미컬한 빠른 발디딤과 화려하지는 않지만 선이 분명하면서도 단아한 팔사위가 특징이며 지은듯 만듯한 미소에 도도한 표정 연기를 통해 상대적으로 기품있어 보이는 춤태로 유명하다. 또 수건을 뿌릴 때에는 뿌리는 동작 이외의 인위적인 기교를 최대한 절제하여 상대적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절제미가 돋보인다.
한영숙의 승무는 이매방의 승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시선의 눈높이가 높으며, 북과장이 자진모리~당악 넘김채 정도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짧다. 대신 뒤이어 경기 대풍류의 당악 연주에 맞춘 춤이 다시 이어지는데, 이매방류 승무에 비해서 춤의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있다.[15] 또 비교적 차분했던 전반부의 호흡이 북과장-당악과장에서는 매우 활달하게 이어짐을 알 수 있다.
3. 여담
무용가로서 후학 양성을 제법 많이하기도 했지만, 무용가가 아니면서도 그에게 춤을 배운 사람들이 몇 있다. 앞서 기술한 김덕수가 대표적이고, 또 한영숙과 절친했던 박초월의 수양아들인 조통달 역시 국악예고 시절, 한영숙에게서 춤을 배웠는데, 한영숙이 매우 아꼈다고 한다. 일가가 모두 예술계에 관련을 두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할아버지인 한성준은 물론 아버지 한희종 역시 피리, 해금 연주자로 활동했고, 남편 황병렬은 아코디언 연주가로 활동했으며, 사돈이 임방울이다. 또 가수 김완선이 5촌 조카가 되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매니저이자 이모였던 한백희 역시 한영숙의 사촌 동생이 된다.
4. 천안의 문화유산 벽사 한영숙 벽사춤 토론회 개최
천안시의회 이상구 의원(국민의힘)은 지난 6일 천안축구센터에서 ‘벽사 한영숙 춤 계승 및 발전 방안 모색 정책토론회’를 열어 천안 지역 문화유산인 벽사 한영숙 춤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는 천안 지역 시민과 전문가들이 참여해 벽사 한영숙 춤을 계승하는 방안과 이를 통해 지역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양경모 충청남도 의원의 축사와 김송주 대한무용협회 충청남도지회 지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토론회는 천안시의회 노종관·김강진· 정도희· 유영진 ·권오중· 김영한 의원이 참석하고 박찬우 前국회의원과 천안시 문화예술과장과 관광과장 그리고 벽사춤 천안지부 회원 등 다수의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토론회를 주관한 이상구 의원과 이정우 천안문학관 관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되었으며, 임정희 세종대학교 무용학과 대우교수, 한덕택 서울예대 공연창작학부 겸임교수, 정용진 벽사정재만춤보존회 회장이 발제를 맡았다.
발제를 통해 △한영숙류 전승 실태 및 비전 △전통예술 문야 명인 관련 전승·지원 현황 △천안 기반 벽사 한영숙 춤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설명하고, 이 전통 춤을 계승하기 위한 지속적인 지원과 보존의 필요성을 입모아 강조했다.
또한, 토론자로 참여한 양경모 충청남도의회 의원과 장미옥 벽사춤 천안지부 지부장, 박서연 및 김미숙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들은 각각 벽사문화제의 당위성, 춤 전승과 지역사회의 역할에 대해 토론했다.
이상구 의원은 "벽사 한영숙 명인은 천안 출신 자랑스러운 예술인으로 오늘 나눈 의견들이 향후 천안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천안이 전통 춤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참고문헌>
1. "벽사 한영숙 벽사 춤", 나무위키, 2024.11.11일자.
2. 이정복, "천안의 문화유산, 벽사 한영숙 벽사춤 토론회 개최", 대전투데이, 2024.11.11일자.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