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K-문학 세계화와 ‘번역 예산’ 역주행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11.07 09:47

                                  K-문학 세계화와 ‘번역 예산’ 역주행



‘방탄소년단 열성팬이자 K-뷰티 세럼과 ‘오징어 게임’ 결말에 대한 의견을 가진 여러분, 그런데 한국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있는가? 한국전쟁, 일본의 식민지배, 오랜 경제적 어려움 등 (역사에 대해) 알고 있나?’ 미국 LA타임스 2021년 12월 기사의 첫 문단이다. 이후로 3년, K-콘텐츠 인기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됐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다행히 소설들이 역사를 흡입력 있는 서사로 풀어내고 있다’며 당시 막 출간된 김주혜 작가의 데뷔작 ‘작은 땅의 야수들(Beasts of a Little Land)’을 소개했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의 경험에 대한 입문서라면 ‘작은 땅의 야수들’은 1917년 겨울에서 시작해 암울한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더 넓은 시공간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신인 데뷔작으로는 이례적으로 뉴욕타임스 등 40여 개 매체의 추천도서가 됐던 이 작품이 국내에서 뒤늦게 화제다. 스웨덴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10월 10일, 김 작가는 러시아에서 이 작품으로 권위 있는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은 한강의 노벨상과 맞물려 한껏 높아진 한국 문학의 위상을 보여주는 증거가 됐다. 이와 함께 한강에서 김주혜로 이어지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등단 30년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 작가와 아홉 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촉망받는 한국계 미국 작가가 같은 시기에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세계 독자를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한강 김주혜 한국사 배경 소설                                                         변방 역사를 보편적 이야기로                                                         근현대사 통과하는 인간 군상                                                         팔리는 콘텐츠 중심 정책 지원                                                         책읽기·인문·번역 등은 홀대                                                            K-컬처 걸맞은 문화정책 필요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다뤘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 피해자를 소환해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껴안았다. 좀 더 대중적 서사인 ‘작은 땅의 야수들’은 1917년부터 1960년대까지 고난의 한국 근현대를 살아낸 다양한 인간들 이야기다. 그 속에서 사냥꾼, 기생, 깡패, 독립운동가, 사업가, 혁명가들은 야수 같은 생명력으로 독립을 이루고 자기 생도 지켜낸다. 때마침 구한말부터 광복까지, 평사리에서 만주로 뻗어가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 전 20권은 최근 일본에서 완역됐다. 앞서 2017년에 출간돼 애플 TV+ 시리즈로 제작된 ‘파친코’가 있다.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선자를 중심으로 4대에 걸친 이야기다.                                             서구 중심의 세계사에서 한국사는 매우 낯선 비주류 중의 비주류다. 1990년대 전후 가요·드라마 한류로 시작해 K-콘텐츠의 인기가 영화, 클래식 등을 거쳐 푸드 같은 일상문화로 확대됐지만, 한국사를 포함한 한국학은 여전히 미진하다. 미국에서 한국학은 냉전 시대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연구됐고 유럽에서도 한국학은 여전히 중국학과 일본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물론 이전에도 사극 드라마·영화가 있었고 한국 문학의 유구한 전통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이 된 시대, 우리 역사가 문학을 통해 깊이 있게 세계와 만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한국이라는 특수 역사를 인류 보편적 이야기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를 다뤘지만 역사가 아닌 역사 속 인간, 나약하면서도 강한 인간의 운명·의지·사랑·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라는 모두의 이야기이기에 가능했다. 그것이 또 문학의 역할이며 위대함이다.                             이렇게 K-컬처는 시대와 인간을 성찰하며 점점 더 확장되고 심화하는데, 정부 관련 정책은 뒷걸음친다. 세계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최고 진리가 되면서 정책과 예산은 여기에 집중되고 있다. 콘텐츠 제작 지원은 영상 쪽에 쏟아지고 책·인문 등 ‘비인기 종목’들은 홀대받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책 관련 예산은 모두 깎였다. 2024년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은 전액(11억 원) 삭감됐고 우수도서를 보급하는 ‘문학나눔’과 ‘세종도서’ 예산은 통합돼 20억 원 줄었다.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1권도 안 읽는 현실에서 ‘국민독서문화증진’ 사업은 58억 원 전액 삭감됐다.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중요성이 더 커진 번역 부문은 더 한심하다. 최근 비판이 쏟아지자 정부가 다급히 내년 번역·출판 예산을 늘렸다지만, 한국문학번역원 사업비는 2023년에 비해 11% 이상, 번역 인력 양성 예산은 22억 원으로 올해보다 5억 원 줄었다. 세계로 가는 K-컬처를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탁상 행정 아닌가.                                                                                                                             <참고문헌>                                             1. 최현미, "K-문학 세계화와 ‘번역 예산’ 역주행", 문화일보, 2024.11.6일자.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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