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광기의 사대(事大) : 송시열의 달력과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9.09 04:03

  

                                                                      광기의 사대(事大) : 송시열의 달력과                 


   중국으로 통칭되는 역대 대륙 왕조 주변국은 그 왕조와 조공 관계를 유지하며 생존을 유지했다. 중국 왕조는 그 대가로 주변국 통치자를 그 영역 제후(諸侯)로 책봉해 큰 무력 없이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이를 사대(事大) 외교라 한다.

   전국 팔도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대부 묘비명은 ‘유명조선(有明朝鮮)’으로 시작한다. ‘명나라 속국 조선’이라는 뜻이다. 조선만이 아니었다. ‘유당신라(有唐新羅·924년 영월 흥녕사징효대사탑비)’라 기록한 통일신라 때 비석도 있다. ‘유송고려(有宋高麗·1021년 개성 현화사비명)’ ‘유원고려(有元高麗·1352년 권준묘지명: 이상 국사편찬위 한국사db)’ 같은 고려왕조 비석도 눈에 띈다. 그런데 조선은 해도 너무했다. 외교 정책이어야 할 사대가 윤리로 둔갑하고 권력 강화용 국내 정치 이데올로기로 쓰이더니 마침내 정신세계를 혼돈으로 몰고 가는 집단 광기(狂氣)로 변질됐다. 그 광기 이야기.

                                            조선이 폐기한 이름, 황제(皇帝)

   1392년 이성계가 이끄는 군부와 정도전으로 대변되는 신진사대부 연합 세력이 고려왕조를 타도했다. 그해 7월 17일 왕이 된 태조 이성계는 11월 새 나라 이름 후보로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두 개를 명 황제 주원장에게 올렸다. 이듬해 2월 주원장은 ‘조선’을 국호로 선택했다.(1392년 11월 29일, 1393년 2월 15일 ‘태조실록’)

   국호 후보를 보내기 한 달 전 이성계는 옛 왕조 역사, ‘고려사(高麗史)’ 편찬 또한 지시했다. 59년이 지난 1451년 문종 1년 고려사가 완성됐다. 그런데 이 책에는 고려왕조가 사용했던 ‘황제(皇帝)’ ‘천자(天子)’ 같은 표현이 ‘왕(王)’으로 바뀌고 고려 황제 제도 또한 제후국 제도로 바뀌어 있었다.(김영식, ‘중국과 조선, 그리고 중화’, 아카넷, 2018, p33 각주)

   1416년 태종 때 세자 담당 부서 경승부(敬承府) 윤(尹) 변계량이 “조선은 천자가 분봉한 나라가 아니라 단군을 시조로 하늘에서 내려온 나라”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고 주장했다. 실록 사관은 “동국(東國)에서 하늘에 제사하자고 하다니 분수를 모르는 억지”라고 비난했다.(1416년 6월 1일 ‘태종실록’) 1488년 성종 때 평양에 도착한 명나라 사신이 기자묘는 물론 단군 사당을 찾아 절을 하기도 했지만(1488년 3월 3일 ‘성종실록’), 조선 지도부는 황국 명에 대한 제후국 지위에 충실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정묘호란이 터지고 병자호란이 터졌다.

                                                                  임진왜란, 재조번방 그리고 인조반정

   일본군 앞에서 풍전등화 같은 나라를 천병(天兵)을 보내 구원해줬으니 명나라는 재조번방(再造藩邦·제후국을 다시 세워줌)의 황국이었다. 선조는 임진왜란 종전 후 명군 총사령관 만세덕이 귀국하게 되자, 만세덕이 볼 수 있도록 서둘러 ‘再造藩邦’ 네 글자를 써서 내려보내기도 했다.(1599년 10월 5일 ‘선조실록’) 그리고 명 황제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네 글자를 잊지 않았다.(1637년 5월 28일 ‘인조실록’, 김상헌의 상소문) 만절필동은 ‘황하가 만 번 휘어도 결국 동쪽으로 흐르듯, 황제 폐하를 향한 충성은 변치 않는다’는 뜻이다.

   광해군에 이어 인조가 등극했다. 인조 세력이 광해군을 몰아낸 명분은 명나라에 사대를 하지 않은 무법과 어머니 인목대비를 폐하고 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패륜에 대한 징벌이었다. 두 차례 호란이 터졌다. 인조 정권은 오랑캐 청나라에 항복했다. 남한산성에 갇혔던 그들은 종전협정을 주도한 최명길을 간신이라 입으로 욕하면서 두 발로는 최명길이 열어준 문으로 산성을 빠져나갔다(從完城所開之門 而出去矣·종완성소개지문 이출거의).(최창대, ‘곤륜집’20, ‘지천공유사’)

   대명 의리와 척화를 주장하던 정부가 오랑캐한테 항복을? 명분이 만신창이가 됐다. 사람들은 인조를 ‘더러운 임금(汚君·오군)’이라고 불렀고, 그 정부를 ‘하찮은 조정(小朝·소조)’이라고 불렀다.(1637년 8월 12일 ‘인조실록’, 대사헌 김영조 상소) 명분론자들은 권력을 유지할 길이 막막했다. 1644년 명나라 마지막 숨통이 끊어졌다. 이제 주인은 오랑캐 청나라였다.

조선일보

충북 괴산 화양동계곡에 새겨져 있는 선조 친필 ‘萬折必東(만절필동)’, ‘온갖 고난이 있어도 명에 대한 충성은 영원함’. /박종인


                                                                       사대의 변질, 정치투쟁 그리고 송시열
   오랑캐에 의해 명이 멸망했다. 사대와 충성의 대상이 사라졌다. 그러자 명분론자들은 복수를 위한 북벌론과 조선이 명을 계승했다는 조선중화론을 새로운 사대 이데올로기로 완성했다. 겉으로 내세운 북벌론은 비현실적이었다. 함께 북벌을 준비하자는 효종의 말에 재야의 권력자 송시열은 “마음 수양부터 하시라”라고 응답했다.(송시열, ‘송서습유’7, ‘악대설화’)

   명나라는 망했지만 명나라의 찬란한 중화(中華) 문명이 조선으로 건너왔다는 논리가 ‘조선중화론’이다. 조선은 명의 정신적 후계자요 명은 조선에서 부활했으니 복수를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전쟁에서는 참패했지만 정신적으로 승리를 거뒀으니 명나라에 제사를 잘 지내고 정치를 잘하면 그만이었다.

   이후 조선 국내 정치를 농단한 잣대는 대명 사대였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명에 대한 충성, 그리고 명이 소유했던 성리학적 세계관이 정파를 나눠 가졌다. 1689년 남인과 정쟁 끝에 사약을 받은 송시열은 “내가 살던 충청도 화양계곡에 명황제를 기리는 사당을 만들라”고 유언했다. 명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죽고 60년이 되던 1704년 정월 7일 송시열 제자들은 화양동 계곡에 만동묘(萬東廟)를 세웠다. ‘만절필동’의 그 만동이다.

   사흘 뒤인 정월 10일 이 사실을 알게 된 숙종은 두 달 뒤 창덕궁 후원에서 직접 숭정제에게 제사를 올렸다.(1704년 3월 19일 ‘숙종실록’) 그해 11월 숙종은 제사를 지낸 터에 단을 쌓고 이름을 ‘대보단(大報壇)’이라 지었다. 큰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이후 국왕과 노론 사대부 세력은 사대 순혈주의를 경쟁하며 권력을 나눠가졌다. 오랑캐 황제로부터 제후로 책봉을 받고, 오랑캐 달력을 쓰며, 오랑캐 황실에 조공을 하면서 뒤로는 명나라 마지막 연호인 숭정(崇禎)을 사용하는 기이한 정치 체제가 멸망 때까지 이어졌다. 이제 그 만동묘와 대보단에서 벌어진 막장 풍경들을 본다.

                                                                             명나라 달력에 감격한 송시열
   ‘삼가 생각건대 우리 태조 고황제(명태조 주원장)께서 오랑캐를 물리치고 위로 제통(帝統)을 이어받으셨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숭정을사년(1665년)’ 9월 배신(陪臣·황제의 신하) 송시열이 ‘백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百拜稽首·백배계수)’ 쓴 글이다.

   ‘호남 안찰사 유중이 1630년도 명나라 달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손을 씻고 절을 하고서 받은 다음 눈물을 닦으며 이리 말했다. “오랑캐 역법은 별을 가르고 하늘을 나눠 곳곳마다 절기가 다르다. 하늘에 두 태양이 없고 천하에 두 임금이 없다는 말이 사라졌으니 슬픈 회포가 더욱 간절해진다.”’(송시열, ‘송자대전’ 146, ‘경오 대통력 발·庚午大統曆跋’)

   화양동 계곡 절벽에는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라는 송시열 친필이 새겨져 있다. ‘천지는 대명나라 것이요, 세월은 명 숭정제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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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이 새겨 넣은 ‘大明天地 崇禎日月(대명천지 숭정일월)’. 뜻은 ‘천지는 명나라 것, 세월은 숭정황제 것’./박종인


                                                                                명나라 허리띠를 맨 정조
   1787년 2월 11일 청나라에서 귀국한 사신 황인점이 정조에게 이리 보고했다. “어떤 자가 옥으로 만든 허리띠(옥대·玉帶)를 사라 해서 은자 60냥을 주고 샀다. 탐문을 해본즉 태조 고황제께서 내린 물건이었다. 귀한 물건을 싼값에 판 이유가 있으니 왕실에 바친다.”(1787년 2월 11일 ‘정조실록’) 3월 7일 정조는 대보단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제사에 참가한 유생과 무사들을 상대로 문무 과거시험을 치렀다. 무과는 활쏘기였고 문과는 시작(詩作)이었다. 정조가 내린 시제는 ‘조선관에 옥대(玉帶)를 팔았다(賣帶朝鮮館·매대조선관)’였다.(1787년 3월 7일 ‘일성록’) 규장각 출신인 성대중에 따르면 이날 정조는 바로 그 옥대를 차고 대보단에 제사를 올렸다.(성대중, ‘청성잡기’3, ‘잡언’)

                                                                              위정척사파의 척사론과 독립문
   1876년 개화를 결사 반대한 척사파 거두 김평묵은 척사의 명분을 이렇게 밝혔다. ‘조약을 맺으면 남인 무리들이 대궐을 침범할 것이고 필히 조정 권력이 바뀌어 서인은 일망타진될 것이다. 나라의 존망은 오히려 작은 일이다.’(김평묵, ‘중암선생문집’38, ‘척양대의·斥洋大意’)

   1884년 사대를 가장한 저 권력욕과 광기에 넌더리 난 젊은 지사(志士)들이 반청(反淸) 독립과 개혁을 기치로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실패했다.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돌아온 혁명가 서재필은 1897년 조선 왕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서울 서대문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독립문을 지었다. 조선 26대 왕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가 되었다. 지금 영은문 돌기둥은 굳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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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갑신정변 주역 서재필이 미국 망명 후 돌아와 건립을 주도했다./박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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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을 세운 서재필 동상이 서 있다. 독립문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상징한다./박종인

                                                                    <참고문헌>

    1. 박종인, "명나라 옛 달력 앞에서 송시열은 큰절을 하고 눈물을 닦았다", 조선일보, 2021.9.8일자. A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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