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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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부·기업·가계의 부채를 모두 합한 국가총부채 6033조원 중 가계 부채가 37%(2246조원)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선진국들의 부채 중 가계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 27%다. 한국 경제는 가계 부채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가계 부채는 정부·기업 부채보다 소득과 자산 가격의 변동에 더 취약하다.

한국의 가계 부채 총액은 2011년에 1000조원을 넘어선 이후, 우상향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작년 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0.5%다. BIS가 선진 국가·지역으로 분류한 11곳 중 스위스(127.8%), 호주(109.7%), 캐나다(102.2%)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22.1%포인트 상승했다. 10년 동안의 상승 폭이 이들 11개 선진 국가·지역 중 가장 높았다. 이 기간 동안 영국(-10.2%포인트), 미국(-8.9%포인트), 유로존(-7.9%포인트) 등은 가계 부채 비율이 오히려 줄었다. 가계들이 빚의 절대 규모를 줄였거나, 경제성장 속도가 가계 빚의 증가 속도를 앞섰기 때문이다.

장민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부채는 향후 기업 활동에 따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투자로 볼 수 있지만, 가계 부채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가계 부채 증가를 훨씬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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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부채 규모 80% 넘으면 경제성장 제약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경기가 침체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취임 초 가계 부채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며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80%까지는 떨어져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14년 처음 80%를 넘은 뒤 상승세다. 정부가 최근 GDP를 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연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모수가 되는 GDP 규모가 커져,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100% 선 아래로 내려왔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가계 빚은 쌓여 있는데 최근에는 금리까지 높아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다”며 “가계 부담이 크다 보니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가 전반적으로 부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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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보다 빚 증가 속도가 가팔라

한국 가계가 벌어들이는 돈이나 가지고 있는 자산에 비해 가계 빚 규모가 다른 선진국보다 높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인 2008년까지만 해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DTI)은 138.5% 수준이었다. 1년 4~5개월 동안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넣으면 빚을 갚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2022년 말 기준 이 비율은 203.7%로 치솟았다. 지금은 가계가 2년 동안 벌어들인 돈을 모두 부어도 다 못 갚는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북미 2국, 유럽 11국, 아시아 2국 등 선진 15국과 비교해 보니, 같은 기간 선진국 평균은 160%대로 변화가 거의 없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다른 선진국 가계는 소득이 늘어난 만큼 빚을 늘렸는데, 한국 가계는 소득에 비해 빚을 가파르게 늘렸다는 뜻이다.

금융자산과 주택의 가치를 합쳐 빚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한국 가계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2022년 말 51% 수준인데, 선진국은 28% 수준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가계 소득이 하락하거나 자산 가격이 급락하면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은행 가계 대출 5조원 넘게 늘어

최근에도 가계 대출 증가세는 지속되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6월 말 가계 대출 잔액은 708조5723억원이다. 전월보다 5조3415억원 증가했다. 증가 폭이 2021년 7월 이후 가장 컸다.

주택 거래 증가와 전셋값 상승으로 은행 창구에서 전세자금 대출과 주택담보 대출이 확연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대출액 최고 한도를 줄이는 조치를 7월에서 9월로 두 달 연기함에 따라 대출 막차를 타려는 심리도 가계 부채 증가세로 이어지고 있다고 금융권은 분석한다.

☞국가총부채

국가 경제의 3대 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의 부채를 모두 합한 금액이다. 국가 경제 규모에 따라 부채 규모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 간 비교를 할 때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총부채 비율을 사용한다.

                                            <참고문헌>

  1. 김정훈, "가계 빚, 10년 상승폭 선진국 중 1위… 자영업자 연체액 사상 최대, 조선일보, 2024.7.2일자. A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