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대주의자들 제거..자주권수호한 연개소문 글쓴이 younbokhye 날짜 2010.04.17 09:53
제국주의와 사대주의가 완전히 종식되고 만민이 신인합일화여 홍익인간으로 살아 가는 신인본주의가 봄처럼 찬란하게 꽃필 때 더 이상 각 나라와 민족의 군대는 불필요하게 될 것이며, 지구보호의 사명을 감당하는 지구수비군으로 족하게 될 것이다.  지구행성도 인간에게 매우 해로운 태양의 직사광선을 차단하는 오존층이라는 보호막을 가지고 있듯이, 음흉한 수단과 방법으로 수탈을 내세우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를 우리 민족이 막아 내고 자주권을 수호하고 평화를 지키는 길은 정예군대를 보유한 자주국방뿐이다.

자주국방을 보유하는 것을 전제로 어떤 나라와 어떤 세력이 진정 평화를 가로막고 방해하는 주범들인지를 낱낱히 까발려 주는 것이 정당성과 명분차원에서도 승리하는 길이다.


 
정예군대는 최첨단 무기체계와 함께 정신무장이 확실히 된 군대를 의미한다. 우리 민족사에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유라시아 강성대국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의 군대는 몽골-지나지역-만주-한반도-일본에 걸쳐 단군조선의 단군들이 다스리던 광활한 3한(진.번.마한)을 회복하겠다고 다짐한 고구려 개국시조 고추모의 다물(담로)정신을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하늘의 군대'라는 자부심과 함께 당시 최첨단 찰갑옷과 무기체계을 앞세워 다물정신을 따르겠다는 족속들과는 화해협력을, 위반하는 모든 족속들의 저항에는 단호하게 굴복시키며 한민족의 대통합을 마침내 실현했던 것이다. 그래서 군대를 비롯하여 모든 초.중.고.대학에 이르기까지 민족정신을 바로 세워 주고, 가는 곳마다 만민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을 육성하는 민족사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당전쟁에서 수군을 지휘하여 크게 공을 세운 바 있는 고구려 영양왕의 배 다른 동생 고건무(고성)는 태왕에 오르자, 당나라와 친교하면서 태자조공.고수전쟁 전승탑파괴.국가기밀인 국가지도요청 등 당나라의 요구을 다 들어 주고 당나라의 도교까지 수입하여 전국에서 당나라 도사가 고구려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당나라 침입에 대비하는 연개소문까지 시해하려하니 이에 연개소문이 분노하여 썩어빠진 고구려 친당사대주의자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고 보장왕을 세우고 고구려의 병권과 행정을 손에 쥐고 고구려을 일치단결시켜 당나라 침략에 대비하였으니 역시 당나라는 연개소문의 정당한 권력장악을 문제삼으며 고구려를 쳐 들어 왔다. 이에 연개소문은 안시성에서 당나라 이세민군대를 막고 퇴각하는 당나라 군대를 몰아 지나대륙을 휩쓸고 다니니 치우천황의 재현이였다. 



당나라 황제 이세민이 마침내 장안성에서 연개소문에게 항복을 하고 지나대륙의 서북부지역을 고구려에게 넘기니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기상을 만 천하에 떨쳤던 것이다.
 
전쟁시 마땅히 가져야 할 군작전지휘권이 없는 군대가 무슨 국가의 군대라 할 수 있겠는가! 지휘권이 남의 나라에 있다면 그 군대는 남의 나라 군대나 마찬가지다. 미국이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 군대는 미국의 군대에 불과하다. 군사지휘권이 없는 나라는 식민지나 마찬가지다. 당나라가 요구한 모든 것을 평화라는 명분으로 다 들어 주려했던 고구려 영류왕세력처럼 미국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 주면서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사대주의자들은 연개소문처럼 다 쓸어 버려야 할 나라와 민족의 버러지들이나 마찬가지다.[윤복현]
 
[한단고기]는 연개소문과 고당전쟁에 대해 아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그런데, 이러한 [한단고기]를 위서취급하는 자들은 누구이겠는가? 바로 사대주의 세력과 한반도남부에 갇혀 살려는 옹졸한 지역.집단독점주의 세력이라 할 것이다.
 
"'조대기'에 가로되, "연개소문은 일명 개금이라고도 한다 성은 연씨. 그의 선조는 봉성 사람으로 아버지는 태조라하고, 할아버지는 자유라하고, 증조부는 광이라 했으니, 나란히 막리지가 되었다. 홍무 14년 5월 10일 태어났다. 나이 9살에 조의선인에 뽑혔는데 의표웅위하고 의기호일하여 졸병들과 함께 장작개비를 나란히 베고 잠자며, 손수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시며, 무리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다하였으니, 혼란한 속에서도 작은 것을 다 구별해내고, 상을 베풀때는 반드시 나누어 주고, 정성과 믿음으로 두루 보호하며, 마음을 미루어 뱃속에 참아두는 아량이 있고, 땅을 위로 삼고, 하늘을 경으로 삼는 재량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여 복종해 한 사람도 딴 마음을 갖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법을 쓰는데 있어서는 엄명으로 귀천이 없이 똑같았으니 만약에 법을 어기는 자 있으면 하나같이 용서함이 없었다. 큰 난국을 만난다 해도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었으니 당나라 사신과 말을 나눔에 있어서도 역시 뜻을 굽히는 일이 없었고, 항상 자기 겨레를 히치는 자를 소인이라 하고, 능히 당나라 사람에게 적대하는 자를 영웅이라 하였다. 기쁘고 좋을 땐 낮고 천한 사람도 가까이 할 수 있으나 노하며 권세있는 자나 귀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겁냈다. 참말로 일세의 쾌걸인저!"라고 했다. 스스로 "물 가운데 살아서 능히 잠행할 수 있고 온종일 더욱 건장하게 피로할 줄 모른다"고 말하였다. 무리들 모두 놀라 땅에 엎드려 절하며 가로대 "창해의 용신이 다시 몸을 나타내심이로다"라고 했다.
 
좌장군 고성(고건무)은 은밀하게 수나라와 친할 마음이 있어 은밀하게 막리지의 북벌계획을 막았다. 이에 여러 차례 청해서 출사하여 공격함으로써 공을 세웠다. 그러나 홀로 막리지는 대중의 의견을 물리치고 남수북벌의 정책에 집착하여 여러차례 이해관계를 들어 말하므로 이 말에 따르게 되었다. 고성이 즉위하게 되자 전황제의 모든 정책은 폐기되었다. 사신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노자의 상을 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도덕경을 청강시켰다.

또 무리 수십만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게 하였으니 부여현으로부터 남해부에 이르는 10 00여리이다. 때에 서부대인 연개소문은 청하여 도교를 강하는 것과 장성쌓는 일을 중지시키고자 했으나 제는 기꺼워하지 않고 소문의 병사를 빼앗고는 장성을 쌓는 일의 감독을 시키더니, 은밀하게 뭇 대인과 더불어 의논하여 연개소문을 주살코자 하였다. 소문은 앞질러 이 말을 들을 수 있어 긴 탄식하며 말하기를, "어찌 이몸이 죽고나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랴? 일은 급하다. 때를 잃지 말지라." 하고 모든 부장을 모아 마치 열병하는 것처럼 하고는 성대하게 술상을 벌려 뭇대신을 초청하여 함께 이를 시찰하자고 하였다. 모두가 참석하자 소문이 소리를 크게 내며 격려하기를, "대문에 호랑이 여우가 다가오는데 백성구할 생각은 않고 되려 나를 죽이려 한다. 빨리 이를 제거하라"하니 제는 변고를 듣고 평복으로 몰래 도망쳐 송양으로 가서 조서를 내려 나라의 대신을 모으려 했으나 한 사람도 오는 사람 없고 보니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저절로 숨이 떨어져 붕어하였다.
 
소문은 마침내 고성제를 내어 쫓고 무리와 더불어 함께 고장을 맞아들여 이를 보장제로 삼다. 소문 드디어 뜻을 얻어 만법을 행하니, 대중을 위한 길은 정기 자유 개물 평등으로 하고, 삼홀을 전으로 하고,조의에 율이 있게 하고,힘을 국방에 쏟아 당나라에 대비함이 매우 완전하였다. 먼저 백제의 상좌평과 함께 의를 세웠다. 또 신라의 사신 김춘추에게 청하여 자기의 집에 머무리도록 하며 말하기를, "당나라 사람들은 패역하기를 짐승에 가깝습니다. 청컨대 우리나 그대들은 반드시 사사로운 원수를 잊고 지금부터
삼국은 백성들의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곧바로 당나라 서울 장안을 쳐 들어가 도륙한다면 당나라 괴수를 사로 잡을 수 있을 것이오! 전승의 뒤에 옛 영토에 따라서 연정을 실시하고 인의로써 함께 다스려 약속하여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영구준수의 계획으로 함이 어떻겠소?"라고 하며 이를 재삼 권하였으나, 김춘추는 종래 듣지 않았으니 애처롭고 가석할 일이었다.

개화 4년 당나라 이세민이 군신에게 말하기를, "요동은 본래 제하의 땅이다. 수나라가 네번 출사하였어도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제 출병하여 제하를 위해 자제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고 하다. 세민은 친히 활과 화살을 차고 이세적 정명진 동 수십만 명을 이끌고 요택에 이르다 진흙길 200여리 사람과 말이 다닐 수 없었다. 도위 마문거가 말에 채찍질하며 달려가 공격했지만 이미 싸움을 벌였던 행군총관 장군차는 대패했다. 이도종은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였고 세민은 몸소 수백기를 이끌고 이세적과 합쳐 백암성의 서남쪽을 공격했다. 성주인 손대음은 속여서 항복을 청하게 하고 실은 틈을 엿보아 반격하고자 하였다. 세민은 안시성에 이르러 먼저 당산으로부터 병사들을 진격시켜 이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북부의 욕살 고연수와 남부의 욕살 고혜진은 관병 및 말갈병 15만 이끌고 똑바로 전진하여 안시에 연결되는 진지를 쌓고, 높은 산의 험악한 곳에 의거하여 진지를 쌓고 성의 곡식을 식량으로 삼고, 병력을 종휭무진으로 풀어 놓아 당나라군마를 약탈했다. 당나라군을 감히 접근하지도 못하고 돌아 가려고 해도 진흙길이 가로 막았으니 가만히 앉아서 패하는 길밖에 없었다.
 
고연수 등은 말갈과 병력을 합쳐 진지를 펴고 지구전을 벌이다가 어느날 저녁 표변하여 작전을 개시하여 급히 습격하여 번개처럼 치니, 이세민은 거의 포위될뻔하게 되자 비로소 두려운 빛을 보였다. 이세민은 또다시 사신을 파견하여 재물과 보화를 보내면서 연수에게 말하기를, "나는 귀국의 힘있는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였으므로 그 죄를 물으려온 것이다. 그대의 나라에 들어와서 싸움을 하게 됨에 말 먹이와 식량을 공급할 수가 없어서 얼마간 노략질을 몇 곳에서 했었을 뿐이니, 그대의 나라가 예를 갖추어 수교를 기다리면 반드시 회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고연수는 말했다. "좋다, 그대의 군사가 30리를 후퇴하면 곧 나는 우리 황제를 알현코자한다. 그렇지만 막리지는 국가의 기둥이다. 군법을 스스로 갖고 있으니 많은 말도 팔요가 없다. 그대의 임금 세민은 아비를 폐하고 형을 죽이고 동생의 아내를 음란하게도 받아 들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죄를 물을 만하다. 이 뜻을 이세민에게 전하여라." 이에 사방으로 감시관을 보내 더욱 더 방비를 굳혔다. 산에 의지하여 전지를 굳히고 허를 틈타 기습하니, 세민은 100가지 계략을 다 써도 어쩔수가 없어 요동출병의 불리를 통한히 여길 뿐 후회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막리지는 수백기를 이끌고 난파를 순시하며 상세하게 정세를 듣더니 사람을 보내 총공격하여 사방을 칠 것을 명하였다. 연수등도 말갈병과 합쳐 협공하고 양만춘은 성위에 올라가 싸움을 격려하니 사기는 더욱 떨쳐저서 일당백의 용맹이 없는 자가 없었다. 세민은 이기지 못함을 분하게 여겨서 감연히 나서서 싸우려 했다. 양만춘은 이에 크게 소리지르며 화살을 당겨 반공에 날렸다. 이세민은 진에서 나섰다가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아 떨어져 버렸다. 세민은 어쩔 줄을 모르고 군사들 틈에 끼어서 도망쳤다. 세적과 도종에게 명하여 보볍 기병 수만을 이끌고 후군이 되도록 하였으나 요택의 진흙길은 군마의 행군을 어렵게 했다. 무기에게 명하여 모든 병사들에게 풀을 베게하여 길에 깔고 메우게 하고, 물이 깊은 곳은 수레로 다리를 만들게 하니. 세민도 몸소 장작을 말고삐에 연결하여 매고 역사를 도왔다.

겨울 10월 포오거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고 길이 메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모든 군사가 발착수를 건너는데 심한 바람과 눈이 몰아쳐서 사졸들을 적시니 죽는 자가 많이 많이 나왔다. 이에 불을 길에 지피고 기다렸다. 때에 막리지 연개소문은 승승장구 이들을 심히 급하게 적들을 추격했다. 추격군은 적봉에서부터 하간현으로 이르고, 양만춘은 곧바로 신성으로 나아가니, 군세는 크게 떨쳐졌다. 당나라 군사는 갑옷과 병기를 마구 버리면서 도망가, 드디어 역수를 건넜다. 때의 막리지는 고연수에게 명하여 용도성을 개축케 하니 지금의 고려진이다. 또 제군을 나누어서 일군을 요동성을 지키게 하니 지금의 창려이다. 일군을 세민의 뒤를 바짝 쫓게 하고 또 일군을 상곡을 지키게 하니 지금의 대동부이다.
 
이세민은 궁지에 몰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침내 사람을 보내 항복을 구걸케 되니 막리지는 정국 만춘 등의 수만 기를 이끌고 성대하게 의용을 갖추어 진열한 뒤 선도하게 하여 장안에 입성하여 세민과 약속하였으니 산서성.하북성.산동성.강좌가 모조리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다.
 
강남에는 월주가 있었다. 그 속현은 산음 산월 좌월이있었다. 문자태제의 명치 11년 11월에 이르러 월주를 공격하여 취하고, 서군현을 고쳐 송강 회계 오월 좌월 산월 천주라 했다 12년 신라의 백성을 천주로 옮기고 이로써 알맹이를 삼았다."( 오늘날 '홍콩지역'에 해당하는 '천주'지역에 신라관련 지명이 많은 연유라 할 것이다. 이런 역사적 연유를 무시하고 신라가 지나대륙을 정벌했다거나 지나대륙에서 개국했다는 논리을 편다면 착각이거나 문헌기록에 대한 해석의 오류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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