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금사]금(청)의 시조는 고려에서 온 김함보 글쓴이 younbokhye 날짜 2010.03.2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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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에 이르기를


金之始祖諱函普,(금의 시조는 이름이 함보였다)
初從高麗來,(원래 그는 고려에서 왔다)
年已六十餘矣.(그가 고려를 떠날 때 60대였다)



한반도와 지나대륙은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적인 공간이다




한반도출신의 고려인 김함보(김행)후예나라 청나라 초기 순치황제 어머니(황태후)역-허청

순치황제 어머니는 몽골출신으로 담대함과 지혜로움으로 순치황제가 나이가 어려
섭정을 했던 순치황제의 숙부 도르곤과 나이어린 순치황제의 충돌을 막았다.
나라의 영부인이라면 이 정도의 단호한 기백과 포용력과 통합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녀의 매력은 웃을 때 생기는 보조개


청나라 초기를 다룬 사극

청나라 개국신화-"장백산(백두산) 동쪽에 부쿠리산이 있고
거기 불후리라는 천지(天池)가 있었다.
천녀 셋이 하강하여 목욕했는데
까치가 붉은 열매를 물어다 제일 어린 천녀 부쿠륜의 옷에 놓았다.
그녀는 그것을 먹고 잉태하여 귀천하지 못하고 부쿠리융순이라는
아기를 낳았다. 그는 성장한 뒤
어머니의 분부에 따라 삼성(三姓) 지방에
가서 선언했다. '내게 복종하라. 나는 천녀의 아들이고
성은
아이친쪼러(愛親覺羅), 이름은 부쿠리융순이다. 하늘이 나를 태어나게
한 것은 그대들을 평정하기
위해서다.' 그는 난을 평정하고 국호를
만주(滿洲)라 하였다.
누르하치는 그 후손이다."
([청조실록]의 누르하치 신화 요약) 
 

 








              

여진=고(고고려)+대(발해)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해 온 고려인 김함보후예가 규합하여

금나라와 청나라를 통하여 100년전까지 지나대륙을 통치했다

 

 

이성량(李成樑)과 누르하치


 

훗날 청나라 태조 누루하치보검을 뽑아들고 잠든 이성량 복부를 겨냥했다. 기합과 함께 세 차례 찌르는 시늉을 한 뒤에 보검을 내려 놓았다.

              

이성량은 명에 귀화한 조선인 무장으로 많은 전공을 세워 영원백공(寧遠伯公) 작위를 받았다.


자식들에게도 관직과 작위가 수여되어 일족의 영화를 누렸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명 제독 이여송이 그의 아들이었다.

              

이성량은 건주 여진 왕고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고

누루하치 아버지 타실을 좌위지휘관 삼아 건주 방위를 맡겼다.


그러나 타실도 변방에서 모반하자, 이성량은 타실을 진압하고 그의 어린 아들 누르하치와 쑤르하치를 종삼아 아들처럼 길렀다.


기합소리에 놀란 이성량이 눈을 뜨고 물었다.


이 : 왜 그랬느냐?


누 : 제가 어찌 부형의 원수를 잊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거두어 길러 주신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보검을 겨눈 것은 원수를 갚았음이요,

     보검을 거둔 것은 은혜에 보답함입니다.


이성량은 자기 아들들이 알까싶어 이들 형제에 준마를 내주며 멀리 떠나도록 배려했다.


             누르하치와 애신각라(愛薪覺羅)


그 뒤에 누르하치는 수르하치를 죽이고 그 추종자와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후금을 세웠다(1616년).


이어 명을 무너뜨리고 대륙을 통일한 다음 국명을 청이라 했다. 중국본토 역사상 제일 큰 영토였다.(1636)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는 성을 애신각라(愛薪覺羅)로 바꾸었다 신라를 사랑(愛薪)하고 신라를 생각(覺羅)한다는 의미였다.


애신각라(愛薪覺羅)의 몽골어 발음은 아이신 지료 인데 아이신은 (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곧, 애신각라는 신라 왕실 성인 김씨 겨레라는 말이다.


          아버지나라→ 형제나라→ 신하나라


누르하치 때에는 조선을 아버지 나라라 여겨 충돌이 없었다.


그러나 조선은 숭명배청(崇明背淸) 사대외교의 고집으로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이라는 동족상쟁 전란을 맞았다.


정묘호란 때 아버지나라가 형제나라가 되었고 병자호란 때는 신하나라로까지 된 것은 조선이 자초한 셈이었다.


금(金: 신라 김씨)을 세운 아골타가 신라인 김함보 후손이었고, 금이 망한지 382년만에 후금을 세운 누루하치 역시 그 후예였다.

더욱이 누루하치는 조선인 이성량의 손에 자랐으니 뼈아픈 자충수에 의한 자승자박 역사기록이 아닐 수 없다. 


[출처] 뼈아픈 역사의 교훈 : 누르하치와 조선 |작성자 선효후문

 


 1. <금사>에 이르기를

金之始祖諱函普,(금의 시조는 이름이 함보였다)
初從高麗來,(원래 그는 고려에서 왔다)
年已六十餘矣.(그가 고려를 떠날 때 60대였다)

兄阿古好佛,(그의 형 아고는 불교를 숭상했는 데)
留高麗不肯從,(그와 함께 고려를 떠나기를 거절하면서)
曰:「後世子孫必有能相聚者, 吾不能去也」(말하기를,
우리 후손들이 다시 돌아와서 만날 곳이 필요하다. 나는 갈 수 없다)
獨與弟保活里俱.(그래서, 동생인 보할리하고만 왔다)
始祖居完?部僕幹水之涯,(그는 완안부의 복간수 근처로 갔다)
保活里居耶懶.(동생 보할리는 야뢰로 갔다)

其後胡十門以曷蘇館歸太祖,(그후, 호십문이라는 부족이
갈소관이라는 곳을 태조께 바쳤는 데)
自言其祖兄弟三人相別而去,
(말하기를 그들은 시조와 같은 삼형제의 후손이며)
蓋自謂阿古之後.(그들은 아고의 후손이고)
石土門、 迪古乃, 保活里之裔也.
(석토문과 적고내는 보활리의 자손들이라는 것이다)

及太祖敗遼兵于境上,
(후에 태조가 요의 군대를 국경에서 격퇴했는데)
獲耶律謝十,(요의 장군 야율사십을 사로잡고)
乃使梁福, 斡答刺(태조는 두 명의 사절 양복、斡答刺을 보내서)
招諭渤海人曰(발해 사람들에게 항복을 요구하면서)
女直渤海本同一家」("여진과 발해는 원래 한 가족이다"라고 했는데)
蓋其初皆勿吉之七部也.
(이것은 원래 다같이 물길의 7부족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2. 위의 내용에서 밝혀진 대로,

금金나라 태조 '아골타阿骨打'는 고려의 후손이었습니다. 또한 그 후손이었던 청淸날 태조 '누르하치努爾哈赤' 역시 그러한 배경 즉, 고려의 후손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나라 태조 누루하치는 자신의 성을 애신각라라 했는데, 도대체 어째서 '애신각라愛新覺羅'에서 신라가 등장하는 것일까요. 그 단서 중의 하나는 금나라 태조 '아골타阿骨打'의 6대조,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努爾哈赤'의 22대조 라는 고려(신라) 사람 '김함보金函普'의 성인 '김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고려의 김씨들은 모두 신라를 거쳤다고 생각됩니다.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阿骨打'로 부터 6대조라고 한다면, 그의 즉위(서기 1115년)로 부터 대략 150여년을 앞당겨 생각할수가 있습니다. 그 자신의 나이를 최소 30세 이상으로 보고 그로부터 6대조를 20년으로 생각한다면, 대략 150여년 전의 '김함보金函普'는 실제로 신라가 고려에 합병된 시기(서기 935년)에 전후한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즉, 기록의 원래의 내용은 고려 사람 '김함보金函普'가 아닌 신라 사람 혹은 신라의 유민 '김함보金函普'였을 가능성이 더욱 높은 것입니다. 신라가 고려麗에 합병되자 고려의 화합정책을 뿌리치고 북쪽으로 이동한 신라 사람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위의 기록에서 나타난 '김함보金函普'의 형 '김아고金阿古'에게서도 찾을수 있습니다. 불교를 숭상했다는 그의 형은 숭불정책을 펼친 고려를 택한것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신라 사람 '김함보金函普'는 고려에 반대해 북쪽으로 이동해왔으며, 그의 후손 '아골타阿骨打'는 후에 주변의 여진족을 규합하여 거란족의 요나라 왕조를 무너뜨리고 금나라 왕조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금사金史>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요나라를 가리켜 발해라고 칭하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대진국(발해)을 무너뜨리고 그 지역을 차지한 요나라 세력 중에서도 대진국(발해)의 유민출신 혹은 그 지역에 근거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여진족과 같은 뿌리임을 자각케하는 표현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금나라조를 일으킨 여진족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3. 여진女眞족은 누구인가.

만주족은 금 왕조를 건국했던 여진족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후금(청)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만주족이 계승한 여진족은 애초에 고구려의 '려麗'와 대진大辰의 '진辰'을 합쳐 원래 려진(麗辰)이었던 것이 후에 음양오행을 따져서 여진女眞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대진(발해)에 속했던 말갈족의 후신이라 전해졌습니다. 또한, 말갈족은 발해에 속해있던 말갈족과 당나라에 복속했던 흑수말갈로 구분됩니다.

말갈족은 일반적으로 만주의 북동부에서 한반도 북부에 근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나라 왕조 때는 숙신, 한나라 왕조 때는 읍루(邑婁)라 불렸다고 합니다. 송화강 유역을 지배하던 물길(勿吉)의 세력이 약화되자 각 부족들이 자립하였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말갈(靺鞨)이라 한다고 합니다.

이 말갈에는 예맥(濊貊)계로서 농업을 위주로 한 속말(粟末), 백산(白産), 퉁구스계로서 수렵을 위주로 한 백돌(伯 ), 불녈(拂涅), 호실(號室), 안차골(安車骨), 흑수(黑水) 등의 7개 부족이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중 속말말갈과 백산말갈은 굳이 말갈족으로 규정할 이유가 없는 예맥족으로서 애초부터 고구려에 속해있었던 고구려인입니다.

또한, 나머지 부족 역시, 그 근거지가 고구려의 관경내에 위치하며, 주나라 왕조 때에 불리었다는 숙신(肅愼)이라는 말은 조선이라는 말과 중국식 발음에서 차이가 없는 '쥬신'으로 통한다는 점을 보면, 애초에 말갈족이라는 종족이 존재한것이 아니라 단군조선에서 부여로, 다시 고구려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우리의 역사와 함께해온 고구려인들을
당시 또는 후대에 비하한 속칭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위와 같이 말갈로 비칭된 고구려인들은 대진(발해)에서 다시 대진인(대진인)으로 그 정체성이 유지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갈 비칭된 고구려인중 유독, 흑수말갈만은 대진에 저항하며 오히려 당나라에 복속합니다. 흑수말갈은 멀리 연해주인근에 근거했다고 알려져있는데 대진국 발해의 패망후에는 거란족의 요나라 왕조에 복속했다고 합니다.

그 거란족의 요나라에 복속했던 흑수말갈이 여진(女眞)이라 불리게 되며, 후일 다시 생여진(生女眞)과 숙여진(熟女眞)으로 나뉩니다. 바로 여기서의 생여진이 요나라를 무너트리고 금나라를 건국한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금나라를 건국한 주체세력인 여진족이 고구려를 말하던 속말말갈인가, 혹은 발해에 대항하고 당나라에 복속하다 후에 다시 요나라에 복속한 흑수말갈인가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생길수 있습니다.

금나라를 건국한 주체세력들이 속말말갈이었든지 흑수말갈이 되었든지 간에
금사와 고려사가 전하고 있는 금나라의 시조는 고려(신라)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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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의 기원에 관한 것 언급은 고려사를 보면 나와 있는데 [마의태자 후손이 여진(女眞)에 들어가 금나라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도
 산견(散見)된다. ‘고려사’ 세가(世家) 권13 예종 10년(1115) 3월조에 보면 이런 기사가 나온다.

“이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김씨나라라는 명칭으로 금(金)이라 했다. ..
아골타는 김행의 후손이다.”, ”여진 사신이 고려에 와서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 우리 조종이 대방(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 사 오아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

다른 기록으로는 부안김씨 즉 마의태자의 자손들의 족보와 비교해서 설명한 글인데 야후 백과사전에
 정리되어 있는 내용을 올립니다.

금나라 시조인 김준(金俊)이란 인물 또한 외자이다. 과연 경순왕과 어떤 관계인가. 아들인지 손자인
지 분명치 않으나 그가 마의태자와 같은 외자 이름이라는 사실, 그리고 중 행세를 하며 피해 다녔다는 사실은 바로 망국의 한을 달래며 신라천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마의태자 본인이거나 혹은 그 일족임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역사가인 순암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김준의 형제가 삼형제였다고 하면서,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현재 마의태자 후손은 부안 김씨이다. 부안 김씨는 경주 김씨를 조상으로 하고 고려 때 갈라
져 나온 성씨이다. 현재 마의태자의 후손이라 주장하고 있는 부안 김씨 족보에 따르면 금나라 시조  김행 즉 김준이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고,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나머지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김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야후 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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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대무신 태왕 다룬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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