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해상왕 장보고(신라권력이 암살한 백제후예) 글쓴이 younbokhye 날짜 2010.03.20 17:39
신라사관론자들은 장보고가 지나지역에서 출생했다는 논리를 펴는데, 역사열등감에 사로잡힌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장보고 아버지는 백제영역인 지나지역에서 출생한 백제의 후예가 맞지만,장보고는 완도출생이라 할 수 있다.그래서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에 자신의 고향인 청해진(완도)을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완도에서는 장보고와 청해진과 관련한 유적유물들이 무수히 출토되고 있다.

아시아해상국가 백제후예 장보고

‘바다의 한국사’에서 발췌 - 서현우(작가, 여행가, 해양사 연구가) -

 

‘장보고의 부조父祖는 장백익張伯翼으로 백제영역이였던 지나국 절강성 소주부蘇州府 용흥리龍興里에서 출생하였으며 신라국에 여러 차례 왕래하다가 귀화하여 현재의 완도읍 장좌리에 정착하였다.

"자字는 정집正集이요, 어릴 때 이름은 궁복弓福인데 또 다른 이름은 궁파弓巴라고도 하였다. 관官은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감의군사感義軍使, 진해장군鎭海將軍이시고, 장군의 아버지는 지나국 절강성 소흥부蘇興府 용흥龍興사람이신데 당나라에서 중랑장우복야中郞將右僕射를 지냈으나 750년경(경덕왕) 신라로 귀화하였고 장군은 신라에서 태어났다. …" 〈안동장씨중앙대종회 사이트〉

백제의 성씨姓氏에서 장張씨의 존재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1960년 지나국 하남성(노산현 대왕촌)에서 발견된 백제유민 출신의 당나라 무장 난원경難元慶의 묘지석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이다. 연구의 결과로 위 난難씨를 포함한 장張씨와 왕王씨 화和씨 등이 백제의 성씨이며, 이들 성씨가 부여족 계통의 성씨임이 드러났다.

 

이로서 우리는 왕인王仁 박사의 왕씨가 백제의 일반적 성씨 중의 하나임과, 기존의 중국사서의 기록에 나타난 백제의 성씨에 더하여 백제엔 실로 다양한 성씨가 존재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732년 발해渤海 해군을 이끌고 당唐나라 등주登州(산동성 북단)를 공격한 발해 장군의 이름이 장문휴張文休이다

장보고 /장보고 표준 영정
장보고 /장도 청해진(해상무역과 군대를 관장하는 사령부)-완도는 당시 국제무역시장

본명은 궁복(弓福)·궁파(弓巴).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장보고(長寶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서남해안 지방의 토호 출신일 가능성이 크며, 장씨 성은 당나라에 있을 때 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예에 자질이 있어 당나라로 건너가 서주(徐州)의 무령군(武寧軍) 소장(小將)이 되었다. 당에서 귀국한 뒤 828년(흥덕왕 3) 왕에게 청해(淸海)를 진수(鎭守)할 것을 청했다.

당시 서남해안에서는 당의 해적들이 신라인을 노략질하여 노비로 팔거나 무역선을 약탈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는 왕의 허락을 받아 군사 1만 명을 모아 청해진(淸海鎭 : 지금의 완도)을 건설했다. 청해진은 7세기말에서 8세기초에 걸쳐 설치된 군진(軍鎭)의 하나이지만 건설 당초부터 독자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에게 내려진 대사(大使)라는 직명도 다른 군진의 진두(鎭頭)·두상(頭上) 등 신라의 정규 관직과는 다른 것이었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청해진이 건설된 뒤 그는 해적을 소탕하여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했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해상무역로를 통한 무역활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신라 지배체제의 외곽적 존재로서 해상무역을 통해 일종의 해상왕국을 형성한 그는 당나라에 견당매물사(遣唐賣物使)와 함께 교관선(交關船)이라는 무역선을 보내 교역활동을 했다. 840년(문성왕 2)에는 일본에 회역사(廻易使)를 파견하여 서신과 물건을 보냈다. 일본측은 이를 사교(私交)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무역은 허용했고, 그 사자와 이충(李忠)·양원(楊圓) 등에게 식량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의 세력은 국제적으로 극히 번성하여 중국에 유학한 일본 승려 엔닌은 그에게 정중한 편지를 써서 귀국할 때의 뱃길을 부탁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무역활동을 통해 확보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중국의 산둥 성[山東省] 원덩 현[文登縣] 츠산춘[赤山村]에 법화원(法華院)이라는 절을 세웠다. 이곳에는 500석을 수확하는 장전(莊田)이 속해 있었는데, 많은 승려가 머물며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었고, 청해진과의 연락기관 구실도 했다.

그는 경제력과 무력을 배경으로 중앙의 권력쟁탈전에도 개입하게 되었다. 836년(흥덕왕 11) 왕위계승분쟁에서 패한 김우징(金祐徵)이 청해진으로 와 그에게 의탁했다. 838년(희강왕 3) 희강왕이 피살되고 민애왕이 즉위하자 김양(金陽)은 군사를 모집하여 청해진으로 와서 먼저 와 있던 김우징을 만나 장보고에게 도움을 청했다. 장보고는 정년(鄭年)으로 하여금 군사 5,000명을 이끌고 김양과 함께 경주로 진격하게 했다. 이들은 중앙군을 물리치고 경주에 침입하여 민애왕을 살해하고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켰다. 신무왕은 장보고를 감의군사(感義軍使)로 삼고 식읍(食邑) 2,000호를 봉해주었다. 신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성왕은 즉위와 함께 그를 진해장군(鎭海將軍)으로 삼고 장복(章腹)을 내렸다. 그러나 진골귀족들은 그가 중앙정부에서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845년(문성왕 7)에 왕이 장보고의 딸을 차비(次妃)로 들이려 했으나 진골귀족들은 그가 '해도인'(海島人)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이듬해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중앙정부는 무력으로 그를 토벌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한때 장보고의 부하였던 염장(閻長)을 자객으로 보내 그를 살해하게 했다. 청해진의 세력은 그뒤에도 얼마 간 유지되었으며, 851년에야 청해진을 없애고 주민을 벽골군(碧骨郡 : 지금의 김제)으로 옮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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