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어야 하지 않을까?
킴벌리: “노벨상을 받기에 남편은 너무 젊었던 것 같다(웃음). 오히려 남편은 2010년부터 광자 탐지 칩과 시스템을 제공하며 긴밀히 협력해온 오스트리아의 안톤 차일링거 박사팀이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것을 무척 기뻐했다. 자신이 기여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리처드: “남 박사는 답을 찾기 위해 과학을 하지, 상을 받기 위해 과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크리스탄 코윈: “그는 과학계의 협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경쟁하는 그룹에게도 자신의 기술을 기꺼이 공유했다.”
◇ 경쟁 그룹과도 기술 공유
-국적이 다른 여러 연구 그룹과의 협업이 활발했더라.
앨런: “보통 과학자들은 자기만의 좁은 아이디어에 국한해서 연구하는데 남 박사는 단일 광자 검출부터 핵전이에 이르기까지 워낙 넓은 범위를 연구하다 보니 콘퍼런스를 하면 1만명이 모였다. 그래서 실험실에선 세우와 페이스를 맞추려 하지 말라고, 그러면 다친다고 경고했다(웃음).”
크리스탄: “세우는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뭣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과학자들이 모이면 ‘세우와 널 비교하지 마라’며 서로 위로한 뒤 일을 시작했다(웃음).”
킴벌리: “남편은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했다. 더 빨리, 더 정확히, 더 노력하라고 외쳐서 동료들이 힘들었을 것이다(웃음).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할 때도 남편은 아이들과 노인들을 위한 코로나 바이러스 검출기를 개발했다. 바이러스 노출 여부를 스스로 감지하게 해주는 장치였다.”
-일중독이었을까?
킴벌리: “남편은 자신의 일에 5가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첫째, 열심히 한다. 둘째, 너무 작아서 할 수 없는 연구란 없다(No task was too small to do). 셋째, 공유(sharing)와 다양성이 현장(field)을 더 좋게 만든다. 넷째, 다른 연구자들을 북돋고 신뢰하자. 다섯째, 재미있게 일하자.”
-한국 물리학계와도 협업했을까?
킴벌리: “초고효율 단일 광자 검출이 굉장히 특수한 분야이고 거기에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협업을 요청해온 과학자들과만 교류한 것으로 안다.”
크리스탄: “한국은 양자 과학이 초기 단계라 기회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황지성: “한국에도 훌륭한 물리학자들이 많다. 남 박사의 수상으로 양자 과학이 좀 더 조명받게 될 것이다.”
-남세우 박사가 한국에 너무 늦게 알려졌다며 아쉬워하는 분이 많더라.
킴벌리: “지금이 딱 좋은 시기다. NIST 동료들이 남편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으니 한국 과학자들이 연락해주시면 좋겠다(웃음).”
◇ 반도체 代父 김충기 교수의 조카
-남세우 박사와는 어떻게 만나 결혼했나..
킴벌리: “둘 다 NIST 연구원이었지만 남편은 콜로라도 연구소에서, 나는 워싱턴 D.C 연구소에서 일했기 때문에 15년 동안은 서로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내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자문실에 파견을 나갔는데 후임으로 온 사람이 세우였다. 인수인계를 위해 자료를 전달하고 설명하다 보니 일과 후에도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혀 다른 성격인데도 잘 맞았다.”
앨런: “둘 다 고집이 세다(웃음).”
-어떤 남편이었나?
킴벌리: “에너지가 넘쳤다. 요리하는 걸 무척 좋아했고, 산악 자전거, 스노보드를 즐기는 스포츠광이었다. 휴가지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질 않았다. 심심할 틈 없이 사는 남편의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요리를 즐겨 만들었는지.
킴벌리: “고급 요리부터 핫도그 같은 길거리 간식까지 다 만들었다. 연구소가 있는 볼더(콜로라도)는 작은 도시라 한국 식당이 없어서 남편이 직접 불고기, 갈비찜을 만들었다. 여름에 만들어준 팥빙수는 정말 맛있었다.”
-부친이 고체물리학계 권위자인 남상부 전 라이트대 교수라던데.
킴벌리: “은퇴하셨지만 지금도 연구하고 논문을 쓰신다. 한국전쟁 후 미국으로 유학 왔다가 결혼한 부모님은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살았는데 어머님이 만삭의 몸으로 잠시 귀국했다가 세우를 낳게 돼 ‘서울 출생’이 됐단다(웃음). 여동생도 MIT를 나왔다.”
-외삼촌인 김충기 전 카이스트 교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닦은 주역이다.
킴벌리: “남편이 삼촌 얘기를 많이 했다. 물리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세우가 물리학에 흥미를 느끼고 파고들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다. 그분의 자녀들과 수상 소식을 공유하며 함께 기뻐했다.”
◇ “동료들에게 수상의 功 돌렸을 것
-14개월간 뇌암과 투병하다 떠난 남 박사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나.
킴벌리: “암 진단은 받았지만 비관적인 상태는 아니어서 풀타임으로 일하며 치료를 받았는데, 작년 12월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1월에…. 너무도 급작스러운 상황이라 마지막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앨런: “지난여름 만났을 때 세우는 말했다. 나는 꼭 이겨낼 거라고. 세우의 예측은 늘 맞았기 때문에 당연히 이겨낼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장례식 때 국경을 초월해 과학자들이 와서 추모했다고 하더라.
킴벌리: “각자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남편을 만났을 텐데도 다들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유머가 넘치고, 고집이 세고, 겸손하며, 뛰어난 과학자였다고.”
앨런: “그는 자기 업적을 동료들과 나누려 지독히도 애를 썼다. 보통 상은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데 세우는 동료들 이름도 넣어달라고 주최 측과 싸웠다. 자기가 받은 상을 본떠 여러 개를 만든 뒤 동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웃음).”
킴벌리: “남편은 자신의 모든 업적을 팀의 공으로 돌렸다. 남편이 살아 있었어도 한국에 다같이 왔을 것이다(웃음).”
-남세우 박사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크리스탄: “코어(핵심) 기술을 발견한 과학자로, 창의적이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던 과학자로.”
황지성: “백범 김구가 ‘눈길을 걸어갈 때 똑바로 걸어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시를 애송하셨다. 세우는 최선을 다해 과학의 길을 걸었고 그 뒤를 수많은 한국계 과학자가 걷게 될 것이다.”
-시상식인 오늘, 남편에게 인사를 건넨다면?
킴벌리: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 당신이 이뤄낸 것이 정말 아름답다.”
☞남세우
1970년 서울 출생. 미국 MIT에서 물리학 학사,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올해 1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5년 동안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종신연구원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에서 과학기술정책분석 자문으로 일했다. 2017년 ‘존 스튜어트 벨 상’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1. 김윤덕, "세계 양자 물리학계 스타였던 한국계 과학자 남세우를 아십니까?", 조선일보, 2024.6.10일자. A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