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在佛) 화가 이성자(1918~2009)가 프랑스 남부 투레트에 세운 아틀리에(작업실)가 프랑스 정부 지정 문화유산이 됐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이성자 화백의 투레트 작업실 ‘은하수’가 28일(현지 시각) 프랑스의 ‘주목할 만한 현대건축물’로 지정됐다”고 29일 밝혔다. ‘주목할 만한 현대건축물’은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은 100년 미만의 건축적·기술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대상으로 프랑스 문화부가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다. 이성자 화백의 ‘은하수’는 프랑스 문화부와 프로방스-알프-코타주르 주 정부의 심사를 통해 지정됐다. 앞으로 각종 간행물을 통한 홍보, 주요 도로 표지판 안내, 건물 보존을 위한 기술적 협력 등을 지원받게 된다. 한국 작가가 해외에 세운 아틀리에가 그 나라 정부가 공식 관리하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처음이다.
한국에서 한 번도 회화를 전공한 적이 없던 그는 1953년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 입학한 지 3년 만에 국립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당시 파리 최고 갤러리였던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열린 ‘에콜 드 파리’전에 쟁쟁한 화가들 작품과 함께 이성자의 ‘내가 아는 어머니’가 출품됐다. 1964년엔 같은 갤러리에서 이성자 개인전이 열렸다. 작가는 “내가 붓질을 한 번 하면서, 이건 내가 우리 아이들 밥 한 술 떠먹이는 것이고, 이건 우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라 여기며 그렸다”는 말을 남겼다. 세 아들 키우던 열정과 그리움을 오롯이 그림 그리는 에너지로 승화한 것이다. 평생에 걸쳐 동양적 이미지를 담은 회화, 판화, 공예 등 1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성자가 투레트에 ‘음양’의 모티브를 형상화해 지은 아틀리에가 바로 ‘은하수’다. 작가가 직접 설계하고 지역 건축가 크리스토프 프티콜로가 지은 250여 평의 작업실로, 1993년 완공한 이후 화실과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다. ‘양’의 건물에서는 낮에 회화 작업을 하고, ‘음’의 건물에서는 밤에 판화 작업을 했다. 완전히 합일하지 않은 음양의 건물 사이로 시냇물이 흘러 ‘은하수’를 형성하는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성자는 2009년 이곳에서 91세로 생을 마감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이성자 화백이 한국 미술계에서 갖는 중요성을 고려해 지난해 프랑스 문화부 측에 문화유산 지정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오는 10월에는 투레트시, 파리 한국문화원,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이성자 기념사업회, 이성자 화실 기념협회 등 관계자들이 프랑스 현지에서 열리는 현판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프랑스 문화부의 결정은 이성자 화백의 작업실이 한국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건축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며 “양국이 함께 유산의 가치를 공유하고 보존하는 프랑스 대표 ‘K공유유산’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최재철 주프랑스 대사는 “60여 년간 프랑스에서 추상 화가로 활약한 이성자 화백의 화실이 프랑스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문화적 의미가 크다. 화실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한국과 프랑스를 무지개처럼 연결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테노바에서는 현재 작가의 개인전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가 열리고 있다. 동양의 철학인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서양 기법을 녹여내며 자신만의 세계를 일군 화가를 조명하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던 바르토메우 마리가 기획을 맡아 대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미술계 관계자들은 “베네치아 개인전에 이어, 작가의 작업실까지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유럽에서 이성자 화백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워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성자(1918~2009)
1951년 아들 셋을 두고 홀로 프랑스 파리로 떠나 예술혼을 불태웠다. 세 아들은 화가 이성자를 지탱하는 지원군으로 자랐다. 장남은 어머니의 귀국전을 열었고, 둘째는 평생 파리에서 살며 어머니 옆을 지켰고, 셋째는 어머니 작품을 구입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참고문헌>
1. 허윤희, "이성자 화백의 불 아틀리에, 프랑스 문화유산 됐다." 조선일보, 2024.5.30일자. A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