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사회는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개개인의 삶은 지난날보다 풍요로워졌지만 통한의 일제식민통치의 잔재와 쓰라린 민족분단의 구조 속에서 세계사적 어두운 근현대 모순의 불행한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은 우리민족에게 저지른 참혹한 만행에 대해 최소한의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오히려 침략과 국권강탈의 역사를 부정하며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우리 내부에서 야만적 강탈의 역사를 미화하는 일제의 망령과 구시대의 냉전논리를 획책하는 세력들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며 분열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1894년 시대개혁적이고 애국적인 동학농민전쟁이 일제의 총칼에 허무하게 실패하고, 그 다음해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일본인 무뢰배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1905년 독도를 강제로 약탈해 시마네현에 귀속시켰다. 그 해 7월 ‘태프트·가쓰라 각서’에 의해 미국의 필리핀 지배대가로 일제의 한국지배를 승인받고, 9월에 ‘포츠머스 조약’으로 통감부 설치를 위해 송병준, 이용구로 하여금 ‘일진회’라는 친일 매국단체를 조직해 보호조약의 필요성을 선전하도록 했다.

   마침내 1905년 11월 17일 어전회의가 열리자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군을 앞세워 대신들을 위협하며 을사오적으로 불리는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을 매수해 강압적 ‘을사보호조약’을 조인하게 했다. 이렇게 을사늑약이 체결됨으로써 대한 제국은 명목상 보호국이나 사실상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1910년 5월 육군대신 테라우치 마사타케가 새 통감으로 2000여 명의 헌병을 데리고 들어와 항일 언론기관과 애국단체들을 탄압한 가운데 8월 22일 총리 대신 이완용이 전권위원으로 ‘한일병합조약’이 조인됐다. 그리고 8월 29일 공포돼 우리 민족의 울분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지고 35년간 치욕의 고통과 눈물겨운 독립투쟁의 역사가 시작됐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해 헌병경찰제를 통해 우리민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 관료들에게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을 주며 일제에 더욱 협력하도록 부추겼다. 반면에 항일 민족운동의 뿌리를 뽑기 위해 가장 강력한 구국 민족운동 단체인 신민회 등 애국 인사들을 체포 및 검거해 악독한 방법으로 고문했다.

   그러한 일제의 강압적 탄압 속에서 1919년 3월 1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평화적 만세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자 일제는 기만적인 ‘문화통치’를 표방하고 지방행정기관에 의회를 설치해 친일 인사를 위원으로 임명했다. 거족적인 3·1만세 운동은 일제의 발포 및 살육으로 당장 독립은 성취하지 못했지만 1919년 11월 9일 중국 상해에서 민주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됐다.
일제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독립지사들은 절망하지 않고 자주 독립 국가를 염원하며

   피나는 독립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마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점령하면서 좌우이념의 극렬한 대립으로 자주 독립 국가의 희망은 좌절됐다. 해방 후 무엇보다 일제 식민지 잔재 청산과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지개혁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나 남한의 미군정은 우리 민족의 절실한 요망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일제에 협력한 관료와 군인 및 경찰을 그대로 등용하여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결정한 신탁통치안 반대와 반공정책의 선봉에 서게 했다.

   대한민국 수립 후에도 이승만은 친일 반민족자들을 세력기반으로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저지시켜 민족 반역자로 단죄 받아야 할 자들의 세상이 되게 했다. 친일 반민족자들의 세상은 우리 민족 역사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박정희를 비롯한 불법적 군부 독재정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동안 사리사욕과 권력욕에 빠진 부도덕한 정권의 말로는 국민들의 저항에 쫓겨났으며, 신임하는 부하에게 총 맞고, 감옥 가고, 국민들로부터 탄핵 당했다. 그럼에도 불의의 수구세력들은 그들의 권력과 부를 계속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온갖 거짓과 조작을 통해 선량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반역사적이며 반인륜적인 퇴행적 선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사자가 거짓으로 죽을병에 걸린 척하면서 병문안 온 동물들을 잡아먹었지만 여우는 굴 안으로 들어간 발자국은 보이는데 나온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사자의 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 사자에게 잡혀 먹히지 않았다'는 이솝우화의 한 토막이 떠오른다. 지난 우리의 불행한 역사를 결코 잊지 말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통해 밝은 우리의 미래를 지혜롭게 판단해야 할 때다.

                                                                                                                                                <참고문헌>

   1. 박해룡,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금강일보, 2021.12.1일자.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