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일제강점기 '여공'들 조명한 다큐 '조선인 여공의 노래' 7일 개봉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08.02 06:27

 일제강점기 '여공'들 조명한 다큐 '조선인 여공의 노래' 7일 개봉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재일 교포 4세 배우들을 캐스팅해 오사카 방적 공장에서의 생활상을 재연했다. 해설자이자 배우로 출연한 강하나는 “차별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1세대나 4세대나 똑같다고 느껴졌다. 100년 전 일이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시네마달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재일 교포 4세 배우들을 캐스팅해 오사카 방적 공장에서의 생활상을 재연했다. 해설자이자 배우로 출연한 강하나는 “차별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1세대나 4세대나 똑같다고 느껴졌다. 100년 전 일이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시네마달

올해 98세인 김상남 할머니는 어린 시절 자그만 체구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밥통”이라고 불렸다. 나이를 속이고 열한 살 때부터 일본 오사카 지역의 방적 공장에서 일했다. 치매로 대부분의 기억이 사라졌지만, 공장에서의 일만큼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나한테 쪼메 띡띡거려 보이소. 내가 가만있는가. 절대로 안 졌지.”

일제강점기 오사카 방적 공장에서 일했던 조선 여공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조선인 여공의 노래’가 7일 개봉한다. 1910년대 조선의 경제는 일제에 편입됐고, 10대 소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조선인 여공이 가장 많았던 기시와다 방적 공장에는 1919년부터 1941년까지 3만여 명이 일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시사회에서 이원식 감독은 “강제 노역이나 위안부에 관한 영화는 많지만, 여공들의 이야기는 관련 연구조차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어린 여공들의 고단했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되살려냈다. 10대에 조선을 떠나 지금은 할머니가 된 여공들 22명의 생생한 증언이 담겼다. 이들은 매일 12시간씩 주야 2교대로 일했고, 졸다가 실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욕설과 매질이 돌아왔다. 고향에 돈을 송금하고 나면 끼니를 때우기도 어려웠다. 먹을 게 없어서 일본인이 버린 소·돼지 내장(호루몬)을 구워 먹었던 이들은 ‘조선의 돼지들’이라 불리며 멸시를 받았다.

어둡고 슬픈 역사임에도 이 영화는 여공들의 젊은 날을 찬란하게 그리길 택했다. 재일 교포 4세 배우들이 과거를 재연한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목화 먼지가 눈처럼 날리는 공장에서 졸음을 참아가며 일하는 장면이나, 일과가 끝나고 바닷가에서 호루몬을 구워먹는 모습은 처연하지만 강인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 시절을 증언해준 할머니들에 대한 헌사일 것이다. 완성된 영화를 본 할머니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어머니가 많이 생각난다”며 울었다고 한다.

1937년부터 일본 방적 공장에서 일한 김상남 할머니. /시네마달
1937년부터 일본 방적 공장에서 일한 김상남 할머니. /시네마달

영화 속에서 이들은 가련한 피해자가 아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주체적인 여성들이다. 여공들은 고향에 보낼 편지를 쓰기 위해 야학을 열어 한글을 공부했고,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1930년대 대규모 파업을 일으켰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인 여공들이 앞장서 파업에 나서자 일본인 여공들도 뒤늦게 동참했다고 한다. 이들을 연구해 온 역사학자 히구치 요이치는 “잡초처럼 강인한 여성들을 존경하게 됐다. 이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승리와 성취도 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인이자 여성, 이주 노동자로서 삼중 차별을 겪었던 이들의 삶을 다층적으로 들여다본다. 자칫 반일 감정을 호소하기 쉬운 소재임에도, 절제된 언어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담하게 전한다. 수수료 명목으로 여공들의 돈을 가로채고 성적 착취와 폭력을 서슴지 않은 조선인 단체 ‘상애회’나, 해고된 일본인 동료를 위해 파업에 나선 조선인 여공들의 이야기들도 함께 다뤘다. 이 감독은 “조선인 여공을 연구한 일본 역사학자들을 찾았을 때, ‘나를 찾아줄 사람을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하더라. 과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변화의 씨앗이 되고, 한일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갖고 출발했다”고 했다.

해설자이자 배우로 출연한 강하나는 “차별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1세대나 4세대나 똑같다고 느껴졌다. 100년 전 일이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시네마달
해설자이자 배우로 출연한 강하나는 “차별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1세대나 4세대나 똑같다고 느껴졌다. 100년 전 일이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시네마달

이원식 감독은 영화 ‘외출’ ’행복’ 등의 시나리오를 썼고, 탈북자 미혼모가 주인공인 영화 ‘북쪽에서 온 여행자’와 기독교 영화 ‘누나’ 등을 연출했다. 오사카 출장에서 우연히 붉은 담장에 박힌 낡은 십자가를 본 게 영화의 시작이 됐다. 알아보니 그곳은 데라다 방적 공장이었고, 십자가는 조선인 여공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망을 감아뒀던 지지대였다.

제목은 재일 교포인 김찬정 작가가 쓴 동명의 책에서 따왔다. 1970~1980년대 발로 뛰며 자료와 증언을 수집한 책에는 여공들이 고된 하루 일과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던 기록이 남아 있다. “자, 우리 여공들이여. 오늘 일과를 말해보자”로 시작한 노래는 “그래도 우린 또 하루를 살아가네”로 끝난다. 이 감독은 “모진 시간을 극복한 조선인 여공들은 가족을 지키고 대를 이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역사의 피해자가 아닌, 삶에 대한 의지로 고난의 시대를 관통한 승자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조선인 여공 관련 기록]

/아사히 신문
/아사히 신문

”오사카 지역 방적 회사에서는 조선 여자를 많이 쓰고 있다. (…) 내지 여자들과 비교하면 유순하고 근면하며, 무엇보다 남자에게 미치는 일이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 올 6월 모집인을 경남 진주에 출장을 보내 데리고 왔다. 열네 살 여자아이부터 스물일곱까지 있다.”

―1913년 12월 26일자 오사카 아사히신문

                                              <참고문헌>                                               1. 백수진, "또 하루를 살아가네… 모진 삶 이겨낸 '조선 여공'의 노래 : 일제강점기 '여공'들 조명한 다큐 '조선인 여공의 노래' 7일 개봉", 조선일보, 2024.8.1일자.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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