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 역사 바로잡기에 평생을 바친 고고학자 손보기 선생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5.19 03:42

                                              우리 역사 바로잡기에 평생을 바친 고고학자 손보기 선생                    


     손보기(孫寶基, 1922년 7월 7일 ~ 2010년 10월 31일[1])는 대한민국의 사학자, 고고학자이다.[2] 는 파른이며,[주 1한반도 구석기 연구의 아버지’로 불린다.[3]

   1964년의 충남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로 널리 알려졌다.[5] 이 발굴로 한반도에 구석기시대가 존재했음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이로써 ‘일본을 앞서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라는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을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뒤집었다. 그 뒤 92년까지 12차례에 걸쳐 발굴과 조사 작업을 벌였다. 2009년, 손보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파른 손보기 기념관’이 공주 석장리에 문을 열었다.[3]

   1974년 ~ 1980년에는 충북 제천의 점말동굴유적을 발굴하였으며, 한자와 일본어 용어를 한국어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등 대한민국 고고학에 업적을 남겼다.[6]


   1969년부터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구성한 고서위원회에 참여하였으며,[7] 1945년 구입한 《규원사화》 고서에 대하여 1972년 11월 3일, 당시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심의의원이었던 이가원(李家源), 임창순(任昌淳)과 함께 조선 중기에 씌여진 진본임을 확인하고 인증서를 작성하여 국립중앙도서관의 직인으로 인증하였다.[8]

또한 1972년부터 직지심경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임을 주장하였고, 이듬해 활자를 연구한 공로로 독일 마인츠시에서 메달을 받는 등,[9] 고인쇄술 연구에도 기여하였다.

  저서로는《한국의 고활자》(1971년),《금속활자와 인쇄술》(1977년),세종대왕집현전》(1985년), 《세종시대의 인쇄출판》(1987년),《한국 구석기학 연구의 길잡이》(1988년),《석장리 선사 유적》(1993년),장보고청해진》(1996년),《공부의 즐거움》(공저, 2006년),《석장리 유적과 한국의 구석기 문화》(2009년)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이조전기정치기구의 기능적 분석〉,〈석장리 자갈돌 찍개문화층〉,〈석장리 후기구석기시대 집자리〉,〈미국에 있어서의 광복운동〉,〈체질학상으로 본 한국사람의 뿌리〉 등이 있다.

  상훈 경력으로는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한국인쇄문화상, 1976년 외솔상 문화부문, 1989년 성곡문화재단상, 1990년 목관문화훈장,  1996년 제2회 용재학술상, 2000년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세종성왕상, 2003년 위암 장지연상 등이 있다.

                                                            <참고문헌>

    1.  "고고학자 손보기", 네이버 나무위키, 2021.5.19일자.

시청자 게시판

2,112개(6/106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4484 2018.04.12
2011 모바일 남원지역 헬로비젼 채널번호 확인 요망 [1] 남조선배 376 2023.05.15
2010 김해시 조선 후기 기녀 시인 지재당 강담운 한시 관광콘텐츠 활용 사진 신상구 434 2023.05.09
2009 공주시 이삼평 ‘왜군에 적극적 부역’ 불편한 진실 사진 신상구 343 2023.05.02
2008 통일한반도 꿈꾼 아산… “통일되면 세계 1위 경제 강국 될 것” 사진 신상구 210 2023.05.01
2007 중부매일, 전국 일간지 평가 '충청권 최고 신문 선정 축하 사진 신상구 176 2023.04.28
2006 <특별기고>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수립 제104주년을 기념하며 사진 신상구 209 2023.04.13
2005 충남의 선비정신 신상구 435 2023.04.06
2004 <특별기고> 제주 4.3사건 75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추념식 신상구 387 2023.04.05
2003 문형순, 김익열 제주 4·3사건 의인들은 ‘역사의 은인’ 사진 신상구 296 2023.04.04
2002 1920년 천마산대 소년통신원이었던 한암당 이유립 선생 사진 신상구 188 2023.04.02
2001 대전시의 미래 관광과 나비효과 양동기 사진 신상구 163 2023.03.31
2000 동여도 품은 ‘대동여지도’ 고국품으로 신상구 339 2023.03.31
1999 독도 명칭의 유래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억지 증거 사진 신상구 263 2023.03.28
1998 <특별기고>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업적과 순국 113주년 기념 사진 신상구 206 2023.03.28
1997 <특별기고> 서해수호의 날 8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식과 안 사진 신상구 217 2023.03.27
1996 ​거북등딱지부터 챗GPT까지, 점괘의 발달 사진 신상구 218 2023.03.18
1995 짧고 불꽃 같은 생을 살았던 조영래 천재 인권변호사 사진 신상구 375 2023.03.17
1994 무원칙과 편의의 원칙 사이에 광화문 월대의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고. 사진 신상구 671 2023.03.16
1993 ‘戰後 일본의 양심’ 오에 겐자부 타계 사진 신상구 267 2023.03.14
1992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 남은 충남의 독립운동가 사진 신상구 215 2023.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