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5.07 04:13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스승의 날, 입양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등 가족을 생각하라는 날들이 많다. 특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부자자효'란 말이 잘 어울린다. 

    부자자효(父慈子孝)란 말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효도는 인간 삶의 근본이요, 복을 받는 지름길이다.”

   일효(一孝)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요, 다복(多福)의 근간(根幹)이다.

   일년 중 만물이 가장 힘차게 성장하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가정사의 가장 근본인 효() 사상에 대하여 열거해 보고자 한다.

   세계 4대 성인(聖人)의 한 분이시고 동양 최고의 사상가로서 우리나라 성균관 유생 및 모든 유학자들이 숭모해온 공자님의 가르침 중에 첫 번째 가는 교훈은 효제충신(孝悌忠信 :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며 나라에 충성하고 벗 사이에 믿음)을 꼽을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효사상(孝思想)은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려져 왔다. 그러나 작금(昨今)에 와서는 개인주의의 발달과 함께 가족애와 조상 숭배의 전통이 점점 쇠퇴(衰退)해지면서 효 사상 또한 땅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손자병법에 용장불여지장(勇將不如智將), 지장불여덕장(智將不如德將)이라고 했다. 필자는 덕장(德將)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은 복장(福將)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덕장불여복장(德將不如福將)이다. ()을 많이 받는 운을 타고난 사람은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나가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복()을 많이 받기를 바란다. 수복강령(壽福康寧), 자구다복(自求多福), 끽휴시복(喫虧是福),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등 기복사상(祈福思想)이 우리 생활 속에 강하게 깔려 있다.

이러한 복을 받아 족히 누리기 위해서는 공자님의 가르침인 효()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복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복 받을 행동, 즉 자구다복(自求多福)을 해야 한다.

    실례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 부모님께 효()를 다함으로써 하늘이 내려준 천복(天福)을 받은, 조선 숙종 때의 실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의 돈의문(敦義門 : 서대문) 밖 구파발에 사는 최 서방이라는 농부가 있었다. 지금은 구파발()까지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고 도시화가 이루어졌지만, 300여 년 전에는 아주 낙후된 깡촌이었다. 최 서방은 연로한 아버지와 건강한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살면서 화전민에 날품팔이로 연명을 하는 가난한 천민이었다. 그래도 누구보다 남다른 효심이 있어서 집에 올 때는 항상 술과 고기 등을 사서 아버지에게 드리는 지극한 효자였다. 최 서방이 사는 이웃에는 그의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는 안씨 성()을 가진 지관(地官:풍수를 보는 사람)한분이 계셨는데 최 서방은 그 친구 분까지 집으로 모셔다 극진한 대접을 했다.

   세월이 흘렀다. 아들의 지극한 효도를 받아온 최 서방의 아버지는 천수(天壽)를 누린 뒤 저 세상으로 가셨다. 서글프고 애통한 마음은 금할 길 없지만 하늘의 뜻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더욱이 천민이라 선산도 없고 하여, 첩첩산중 외진 곳에 아버지를 모시고자 산소자리를 찾아 다녔다. 천하고 가난한 사람은 죽어서도 갈 곳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 광경을 본 안 지관은 평소에 그토록 효성이 깊고 이웃 어른인 자기에게까지 친아버지처럼 모시며 효성을 다한 최 서방이 불쌍하기도 하고 고마워서 이번 기회에 그동안 진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묏자리 구하느라 정신없이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는 최 서방을 불렀다.

   “최 서방!”

   “, 지관어른

   “아버님 묏자리는 어떻게 구했는가?”

    “지관어른, 저 같은 천민이 묏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돌아가신 후에도 쉬실 곳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저 ·····”

    최 서방은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그만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안 지관은 최 서방의 효심에 또 한번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최 서방! 자네야 말로 평소에 돌아가신 부친에게 지극한 효도를 다했다는 걸 동네 사람들은 물론 근동(近洞)에서도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또한 나에게도 잘해서 늘 고맙게 생각했네. 그래서 말인데 실은 내가 죽으면 가려고 묏자리 한곳을 보아 둔 곳이 있네. 그 묏자리를 자네에게 주겠네. 아버님을 그 곳으로 모시도록 하게.”

안 지관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으오리까? 정말 고맙습니다.”

    최 서방은 정중히 인사를 했고, 안 지관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야, 그 묏자리는 보통 묏자리가 아니야. 명당 중에 명당이지. 외손이 크게 될 그런 묏자리야. 그러니 자네는 아버님 장례를 마친 후에 서울의 4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 : 돈의문(敦義門) : 숭례문(崇禮門) : 숙정문(肅靖門))안으로 이사를 하게, 그래야 좋은 일이 생길 걸세.”

    “, 알겠습니다. 안 지관님.”

    최 서방은 아버님의 장례를 치른 후 안 지관이 시키는 대로 돈의문(敦義門) 안의 어느 대감집의 행랑채를 빌려서 이사를 했다. 말하자면 대감댁의 집사 겸 하인으로 들어가 마당쇠 노릇을 하면서 지냈다.

    하루는 최 서방이 대감님께 건의할 내용이 있어 말씀을 아뢰었다.

    “대감마님! 제 딸아이가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게 대궐 안에 머물면서 허접한 일이라도 하게 해주세요.”

    “, 그렇지, 최 서방에게 딸아이가 하나 있지? 내 한번 알아봄세.”

    대감은 최 서방이 비록 배움은 없고 천민 출신이긴 하나, 평소 진실한 성품에 부지런하고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성이 지극했다는 풍문을 들어 보기 드문 효자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대감은 즉시 자리를 알아보았다. 일이 잘 되느라고 마침 중궁전에 있는 궁녀를 모시는 무수리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대감은 즉시 최 서방의 딸을 천거함으로써 요즘말로 하면 취직을 시켜 주었다.

    그때가 마침 조선왕조 19대 숙종대왕이 희빈 장씨(장희빈)의 중상모략에 빠져 중전마마 인현왕후를 폐출하려고 하던 때였다. 그 후, 인현왕후는 결국 왕손도 두지 못하고 35세의 나이로 창경궁에서 승하하였다. 왕후는 그 험하고 위태로운 사태에도 덕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숙종대왕도 아까운 나이에 먼저 간 인현왕후를 늘 그리며 하루는 야밤에 미행으로 중궁전을 찾았다. 중궁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인현왕후가 기거하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게 아닌가.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궁녀인 듯이 보이는 여인이 옷가지를 매만지고 있었다. 숙종대왕은 인기척과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험! 내가 이 나라의 임금이니라. 너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고?”

    “전하! 저는 중궁전의 최 무수리라 하옵니다. 왕비마마가 돌아가신 후 이 방을 지키면서, 생전에 입으셨던 마마의 옷가지를 손질하고 있는 중이었사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먼저 떠난 왕비 생각에 자주 마음이 허전하고 울적하던 차에 왕비의 옷가지를 매만지고 있던 마음씨 고운 이 여인을 보자, 숙종대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양 최 무수리에게 마음이 끌렸다. 숙종대왕은 그날 밤 그 여인과 하룻밤을 지냈다. 이후 숙종대왕은 최 무수리를 찾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밝은 날 숙종대왕이 최 무수리를 보니, 골격이 큼직큼직하고 얼핏 보기엔 사내 대장부처럼 생겨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열 달 후 최 무수리는 왕자를 낳았다. 내시는 이 사실을 즉시 숙종대왕께 고했다.

    “전하! 감축 드리옵나이다. 중궁전의 최 무수리가 왕자 아기씨를 낳았습니다.”

    “최 무수리가 왕자를 낳았다고? 어허 이거야말로 나라의 경사로다. 왕실이 번창하려면 왕자가 많아야 하는데, 큰 기쁨이로다. 상궁은 어서 가서 그 왕자 아기를 데려다 내전에서 잘 기르도록 하라!”

    숙종대왕의 어명에 따라, 그 아기는 내전으로 옮겨져 어엿한 왕실 교육을 받으며 잘 자랐다. 역대 왕자들은 보편적으로 나약하여 각종 질병을 안고 살았는데 이 왕자는 외가 쪽의 어머니, 즉 최 무수리의 튼튼한 유전자를 이어받아 감기도 한번 걸리지 않고 잘 자라주어 주상전하의 총애는 물론 왕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숙종대왕이 재위 46년 향년 60세로 1720년 승하하자 희빈 장씨의 아들인 경종이 즉위하였다. 경종은 자식이 없고 병약하여 재위 4년 만에 37세로 승하하였다. 경종이 병약한 것은 인현왕후가 폐위된 후, 어머니인 희빈 장씨가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인현왕후가 다시 복위되는 바람에 희빈으로 격하되자, 표독(慓毒)하기로 소문난 장희빈이 왕세자로 책봉된 아들의 심벌을 잡아당겨 남자의 구실을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경종의 뒤를 이어 최 무수리의 아들 연잉군이 조선의 제 21대 왕으로 등극을 하니 그가 바로 영조대왕이다. 500년 역대 조선왕조 중에서 가장 오랜 집권(1724~1776)을 한 영조대왕은 30~82세까지 약 50여 년간 재임한 왕으로서 사색당파 싸움의 병폐를 없애고자 탕평책을 시행하는 등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바로 이러한 영조대왕의 외할아버지가 돈의문 밖 구파발, 첩첩산중의 산골에서 날품팔이와 농사를 지으며 살던 천민 출신으로서, 효성을 다한 최 서방(영조에 의해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에 증직 추서됨)이었다.

이와 같이 최 서방의 가문이야기는 부모님께 효()를 다하면 천민의 외손자가 왕이 될 수도 있고 가장 낮은 신분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벼슬인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영의정까지도 올라가는 것처럼 천복(天福 : 큰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입증해준 좋은 사례라 하겠다.

    세종대왕께서도 공자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해야 한다고 대소신료(大小臣僚)와 백성들에게 강조하셨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는 정신은 자손대대로 이어가야 하고 이웃과의 화평과 어른을 공경하고 사회를 밝게 하는 인경(仁敬)의 자세는 대대로 전수하여 밝고 아름다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가자고 하신 것이다.

    나무도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고 많은 꽃과 열매를 맺듯이 우리 인간사도 나무와 같아서 부모와 조상을 잘 섬겨야 자손이 번창하며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복을 받게 된다는 철학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를 두고 일효는 백행지본(一孝百行之本)이요, 자구다복의 근간(自求多福根幹)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조선전기 세종조의 학자이고 한문소설의 효시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창작하셨으며 생육신(生六臣)의 한 분이신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선생께서는 이 세상 3,000여가지의 죄목(罪目)중 가장 큰 죄인은 불효자이고,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은 효자라는 칭호를 받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공자님께서는 효에는 3가지가 있다(효유삼 : 孝有三)’고 하셨다. 즉 대효존친(大孝尊親), 기차불욕(其次不辱), 기하능양(其下能養)이라고 하신 것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효 중에 제일 큰 효는 자손에 의하여 부모님이 많은 분들로부터 존경받으며, 그로 인하여 항상 기쁘게 지내도록 해드리는 것이요, 그 다음은 부모님을 욕()되지 않게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 함에 있다. 마지막 효는 바로 봉양(奉養)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마지막 의무라 할 수 있는 봉양도 하지 않으려고 하니 효는 말할 것도 없고 도덕성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지 않나 하는 염려마저 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라고 하지만, 효사상(孝思想)은 여전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5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인성의 근본인 효의 실천을 다 함께 되새기고, 그 정신을 후대에도 깊이 심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문헌>

    1. 김재식,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진천신문, 2019.5.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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