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윤여정 낭보’로 본 한국영화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5.01 02:31

                                                             ‘윤여정 낭보’로 본 한국영화

   윤여정 오스카 수상은 1990년 이후 ‘민주주의·영화’ 병행 발전 결실…‘방화시대’ 완전히 접고 세계 중심에
저예산 독립영화는 미래의 씨앗이자 자산…‘상상력의 寶庫’ 살려야 할리우드 본격 진출 가능

   윤여정이 지난 26일 한국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지난해 ‘기생충’의 4관왕 소식 이후 올해 전해진 2년 연속 오스카상 수상은 한국영화가 방화(邦화) 즉 로컬 무비의 시대를 완전히 벗어나 월드 무비 반열에 근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윤여정 낭보’는 숙제를 남긴다. 할리우드에서 인정받는 세계의 정상으로 우뚝 서기 위해 한국영화는 장르 다양화, 독립영화 활성화 등의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윤여정 낭보’와 ‘방화’
   한국영화가 다른 글로벌 영화상에서 이미 주연상이나 최고 영예상을 여러 번 수상했지만 유독 아카데미에 주목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아카데미가 매우 정교한 전문가 시스템에 의해 운용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 시장의 영화 시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생충’과 봉준호, 그리고 올해 윤여정의 낭보는 분명 한국영화의 자산이다. 그러나 이 수상들은 한국영화가 걸어온 지난 102년의 시간에 대한 성적표이지 미래의 청사진은 아니다. 화려한 과거를 유산으로 남긴 채 주목도가 떨어진 영화 시장은 많다. 일본영화가 그렇고, 영화 역사의 시작점인 프랑스나 네오리얼리즘의 본고장 이탈리아영화가 그랬다. 로컬 무비에서 시작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된 한국영화의 이 자산은 그래서 얼마나 더 지속 가능한 것일까. 낭보는 숙제와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영화가 ‘방화’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고작 30여 년 전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 젊었던 윤여정이 한창 드라마를 찍던 바로 그 시절에 한국영화는 방화 즉 ‘로컬 무비= 지역 영화’로 불렸다. 우리 스스로 낮잡아 부른 멸칭(蔑稱)이었다.

   한국영화가 방화가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196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지속 가능한 질적 차별화로 계승하지 못했다. 1960년대 영화는 한국인의 주요한 문화예술상품이자 여가 선용 대상으로 거의 2000년대와 맞먹는 제작 편수와 관객 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적 팽창을 질적 다양화로 변주하지 못하고 시장성을 주로 쫓다 보니 TV라는 더 강력한 놀이 매체의 탄생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두 번째는 군사 권위주의 시절의 검열이다. 검열은 시대적 울분에 대한 영화적 분출을 억눌렀다. 1960∼1970년대 영화의 중심축이었던 신상옥마저 검열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검열의 압박은 김기영과 같은 괴물 천재나 하길종 같은 불운한 천재들을 낳기도 했지만, 영화를 지루한 계몽 수단으로 만들고 만다. 1980년대 들어 ‘3S 정책’이 강화되자 영화는 그만 저열한 문화상품으로 취급받았다. 그 결과로 우리는 우리 영화를 스스럼없이 방화라고 부르고 말았다.

                                                                ◇한국영화의 발전과 현주소
   한국영화의 발전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맥을 함께했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은 ‘씨받이’로 베니스 영화제에 강수연을 알렸다. 1990년대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난 한국영화는 기발하고 자유로운 표현의 분출구가 됐다. 한국영화사에 걸출한 흔적을 남긴 박찬욱, 홍상수, 김지운, 봉준호 같은 감독들이 첫 작업을 시작한 것도 1990년대였고, ‘쉬리’ 같은 세련된 블록버스터 영화가 탄생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예술적 미장센, 탄탄한 시나리오, 완성도 높은 영화 음악, 잘 만든 의상 등 개성적이고 보편적인 새로운 장르 영화들이 이때 대거 등장했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 한국영화 마니아들이 생겨났고, 한국영화는 매우 독특한 상상력과 장르적 융합력을 갖춘 새로운 영화적 대안으로 숭앙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아카데미의 봉준호와 윤여정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영화는 더 이상 로컬 무비가 아니다. 권위 있는 3대 영화제의 최고 영예를 모두 안아봤고,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아카데미의 중심에도 서봤다.

   그렇다고 한국영화의 미래가 전적으로 밝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영화 시장 규모는 세계 4위 수준이다. 1위인 미국 시장 규모의 7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개봉 편수는 비슷하다. 적은 인구, 시장 규모에 비해 엄청난 영화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특별한 점은 연간 2억 명이 넘는 관객들이 선택한 영화 중 절반 정도가 한국영화라는 것이다. 한국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좋아한다. 당연한 것 같아도 세계 그 어떤 영화시장에서도 이처럼 자국 영화 관람비율이 높은 경우는 드물다. 할리우드영화에 반 이상을 내주고, 자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면을 보자면 한국영화는 장르나 소재가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대개 사회파, 누아르, 스릴러 등 몇몇 장르에 국한되다 보니 다양한 장르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라라랜드’ 같은 뮤지컬 영화나 음악영화는 거의 없다. ‘승리호’가 성공적 결말을 얻긴 했지만, 공상과학(SF) 영화의 입지도 무척 협소하다. 잘되는 영화 장르들에 집중돼 있을 뿐 모험이나 도전이 거의 없는 셈이다.

                                                              ◇세계 정상으로 우뚝 서려면

   무엇보다 독립영화 시장이 매우 불안하다는 게 문제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20억 원 규모로 만들어진 독립영화다. 아주 작은 독립영화가 아카데미 주요 후보에 오르고 수상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영화 시장을 생각해보자면 ‘미나리’ 규모의 영화가 제대로 상영되기도 어렵고 흥행하기는 더 어렵다. 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는 영화 미래의 씨앗이자 자산이다. 봉준호에게 단편 데뷔작 ‘백색인’이 없었다면 ‘기생충’이 없었듯이, 저예산 독립영화는 자본에 길들지 않은 순수한 상상력의 보고다.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 흥행 영화는 대개 남성 배우 중심으로 구성된 액션, 누아르 스릴러가 태반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 배우는 늘 소모적인 위치를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윤여정처럼 오래도록 연기하려면 여배우가 녹아 있는 시나리오가 절실하다. 한국영화의 응달이자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수직 계열화 문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급격한 성장 속 고전적 영화 플랫폼의 위기, 아카데미처럼 권위 있는 영화인 길드나 영화상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1990년대의 자산으로 2021년 한국영화는 그 결실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새로운 씨앗을 얼마나 뿌리고 키우고 보살피고 있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2021년을 한국영화 최고의 해라고 기록만 해선 안 될 것이다. 미래에 경신될 기록, 오늘이 더 훌륭한 미래의 씨앗이 되기 위해선 우리가 돌아보지 않았던 응달의 문제들을 살펴봐야 한다.
                                                                                       <참고문헌>                                                                              
   1. 강유정, "월드무비 반열 한영화...독립영화 활성화, 장루 다양화해야 세계 정상", 문화일보, 2021.4.30일자. 2면.

■ 세줄 요약

윤여정 낭보와 한국영화 : 오랫동안 한국영화는 저열한 문화상품이 되면서 스스로 ‘방화’로 낮잡아 부르는 시대를 영위했음. 윤여정 낭보는 한국영화가 월드무비 반열에 오른 것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숙제와 질문을 남김.

한국영화 발전과 현주소 : 1990년대 들어 권위주의적 검열의 시대가 지나가고 민주주의 진전과 더불어 한국영화도 비약적으로 발전함. 하지만 여전히 고전적 상영 플랫폼으로서 영화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님.

세계 정상으로 우뚝 서려면 : 한국영화는 다양한 장르 영화에 도전하고, 모험을 감수해야 함. 또 상상력의 보고인 독립영화 시장을 활성화하는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할리우드로 본격 진출이 가능하고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음.


■ 용어 설명

‘방화’란 과거 한국영화를 가리켰던 말로 경멸적인 뉘앙스가 담긴 표현. 1990년대 이후 민주화와 함께 영화 역시 발전하면서 정부 홍보수단이나 저질 문화상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본격화함.

‘3S’는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의 머리글자. ‘3S 정책’은 주로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자가 이들 3S로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함으로써 대중을 권력에 순치시키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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