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유관순 열사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실체
유관순은 기미년 3·1운동 당시 서울의 탑골공원과 남대문 시장,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목숨을 걸고 항일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다. 그러나 유관순은 3·1운동 당시에도, 그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수십 년간 무명의 단순 참가자에 불과했었다. 실제로 1945년까지 발행된 모든 신문기사에서 유관순의 이름은 단 1번도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러다가 유관순은 1947년부터 갑자기 국내 신문에 자주 등장하며 3·1운동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소설가 서운(曙雲) 박계주(朴啓周, 1913-1966)는 1947년 2월 28일자 '경향신문'에 '순국의 처녀'를 기고해 게재됨으로써 유관순을 처음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알렸다.
소설가 박계주 이화여중 신봉조 교장 독립운동가 조병옥 박사
소설가 전영택 이화학당 박인덕 교사 국어학자 박창해
미군정청 문교부 편수사로 1945년 광복 직후부터 3년 동안 초등학교 국어교과서를 제작했던 박창해(朴昌海, 1916-010)가 1946년 어느 날 교과서에 들어갈 내용을 논의하다가 이화학당의 여학생 200여 명이 기미년 3·1운동에 참여해 맹활약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화여고를 찾아가 신봉조 교장을 만났다.
신봉조(辛鳳祚, 일본식 이름: 辛島純, 1900-1992) 교장은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했던 사람이 최명학 교감이니 그분에게 물어보라"고 알려줬다.
하지만 최명학 교감은 "이화학당 학생 200여 명이 3·1운동에 참여했으므로 누굴 내세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창해가 이 사실을 교과서 제작진에 알린 며칠 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유제한(柳齊漢, 1904-?) 씨가 찾아왔다. 유제한 편수사는 유관순의 조카였다.
유제한은 "집안에 3·1운동으로 옥살이한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이 있다"고 박창해 편수사에게 말해 결국 유관순이 교과서에 게재되는 영광을 얻었다.
1947년 9월에 신봉조(辛鳳祚), 은봉(銀峰) 박인덕(朴仁德, 일본식 이름: 永河仁德, 1896-1980),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1869-1953), 유제한(柳齊漢, 1904-?) 등은 유관순 기념사업회를 구성했다. 유관순기념사업회 명예회장과 대한민국 정부 경무부장으로 활약하던 조병옥(趙炳玉, 1894-1960) 박사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찾는 방편으로 유관순을 한국의 잔다르크(Jeanne d'Arc, 1412-1431), 해방의 여전사로 부각시켰다.
김구, 이시영, 유제한 등 우파 독립지사들은 1947년 11월27일 천안 병천의 아우내만세운동기념비 제막식 날에 유관순 추도사를 헌정했다. 이들은 추도사에서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 상황에 대해 순국선열에게 죄스러움을 보이며 민족 통일 즉 완전 독립 완수를 맹서했다. 그리고 유관순이 '호국의 신' '겨레의 수호신'이 돼 도와주길 기원했다.
1947년 11월 27일 천안시 동남구 병천에 건립된 아우내만세운동기념비
해방 직후 박창해와 함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를 집필하고 1948년에 최초로 유관순의 전기인 '순국처녀 유관순전'을 펴낸 소설가 늘봄 전영택(田榮澤, 1894~1968)은 문교부 편수국 편수관으로 유관순을 조선을 구한 잔 다르크로 표현하면서 유관순을 신통한 능력을 가진 신화적인 존재로 승격시켰다.
유관순 발굴 띄우기 과정과 기념사업회 결성과 모든 기념사업 배경에는 남북 분단 위기 상황에서 애국심을 고양시켜 민족 통합을 이루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2014년에 선보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4종이 유관순을 다루지 않아 국사교육의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최근 춘천교대 사회과 교육과 김정인 교수는 그 이유를 "이화학당 졸업생으로 친일 전력이 있는 박인덕, 신봉조 등이 그들의 친일행적을 호도하기 위해 해방 후에 유관순을 찾아내 미화해서 이화의 영웅으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1956년에 비로소 유관순 열사가 교과서에 등재되었다는 연구 성과가 있어 고등학교 교과서에 기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의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은 가족 모두가 일제의 탄압을 받아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순국하거나 부상을 당했고, 무엇보다 유관순 열사의 목숨을 건 순국투쟁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유관순 열사와 그의 가족 및 집안 사람들은 기독교 신자로 사애리시(史愛理施, 1871-1972)와 김란사(金蘭史, 이명 河蘭史, 1872-1919)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목숨을 걸고 1919년 기미년 3·1 운동에 참여하여 유관순 열사 일가는 천안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유관순(柳寬順) 본인과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어머니 이소제李少悌), 오빠 유우석(柳愚錫), 작은아버지 유중무(柳重武), 사촌 언니 유예도(柳禮道), 오촌 조카 유제경(柳濟敬), 종조할아버지 유도기(柳道基), 올케 조화벽(趙和壁), 사촌조카 한필동 등 10명은 3·1 운동에 목숨을 걸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거나 순국하여 항일독립운동가로 훈·포상을 받았다.
문제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유관순만 띄어 3·1운동의 영웅으로 만들다 보니, 유관순은 뉴욕타임즈 2018년 3월28일자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10대 순교자"라는 제목으로 게재돼 이제 유관순은 세계적인 여성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반면에 유관순과 함께 기미년 4월1일 아우내 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조인원(趙仁元, 1864-1931), 포암(逋巖) 이백하(李栢夏, 1899-1985), 유중무(柳重武, 1875-1956), 김구응(金球應, 1887-1919) 등 항일독립투사들은 까맣게 잊혀 안타깝다.
그러므로 천안시와 국가보훈처는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 105주년을 계기로 해, 유관순 열사의 빛에 가려 잊힌 항일독립투사들을 찾아내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하던, 검정으로 하던 교과서의 상당 부분은 역사학자들이 집필하게 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학계의 편향성이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않아,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교육은 요원한 것 같다.
<대산 신상구 국학박사 주요 약력>
.1950년 6월 26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부친 신종순(辛鍾淳), 모친 유옥임(兪玉任)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한국 인플레이션 연구(A study of korean inflation」(1980.2)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A study of shamanic culture in Taean)」(2011.8)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조치원중, 조치원여고, 삽교중, 한내여중, 천안북중, 천안여중, 태안중, 천안중 등 충남의 중등학교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3.15),『한민족의 원대한 꿈 노벨상 수상 전략』(2023),『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6권.
.주요 논문 :「태안지역 무속인들의 종이오리기 공예에 대한 일고찰」(2010),「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2012),「2020년 노벪문학상 수상자인 루이즈 글릭의 생애와 문학세계」(2020) 등 131편
.주요 발굴 : 민촌 이기영의 천안 중앙시장 3·3항일독립만세운동 기록(2006)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2007)
.수상 실적 : 예산군수 감사장, 대천시장상(2회), 천안시장상(2회),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한통국문화원연합회장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2회) 교육부장관상(푸른기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문학 21』시부문 신인작품상,『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동아일보·중앙일보·조선일보·경향신문·한국일보·서울신문·서울일보·신아일보·문화일보·전국매일신문·시민신문·천지일보 등 중앙 일간지, 대전일보·충청일보·충청투데이·중도일보·동양일보·금강일보·중부매일·충남일보·중앙매일·충청타임즈·충청매일·대전투데이·충청신문·충북일보·기호일보․우리일보·시대일보·중부일보·영남일보 등 지방 일간지, 충남시사신문·천안일보·충남신문·천안신문․천안투데이·아산투데이·아산시사신문·예산신문·태안신문·태안미래신문·홍성신문·보령신문·내포시대·진천신문·증평신문·옥천신문 등 주간신문, 아산톱뉴스·천안일보·디티뉴스·대전뉴스·충청뉴스·충청뉴스인·시티저널·충북인뉴스·굿모닝충청·대전문화신문·예산뉴스 무한정보·백제뉴스·괴산타임즈·코리안스프릿․대전세종충청 브레이크뉴스․이제말 등 인터넷신문 등에 수백 편의 칼럼 기고.
.30년 간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환경운동 전개, KBS 중앙방송국 라디오 <논술 광풍>프로 출연, STB 상생방송 <홍범도 장군> 프로 출연, KBS 대전방송국·MBC 대전방송국·CJB 청주방송국 라디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발굴> 프로 출연
.대전 <시도(詩圖)> 동인,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충남민주시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사회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국민윤리교육회 회원, 천안향토사 연구위원,『천안교육사 집필위원』,『태안군지』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백수문학회 회원, 대덕문학회 회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통합논술 전문가, 평화대사, (사)대한사랑 자문위원, 천손민족중앙회본부 연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