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한낮의 해는 자외선이 강하다 보니 무방비 상태로 오랫동안 바깥 활동을 하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되도록 열기를 만드는 땡볕을 피해 그늘 밑에 있어야 하지요. 반면 여름에 피는 꽃들은 강렬한 빛이 좋은 것인지, 태양을 향해 얼굴을 내밀어요. 대표적인 예가 해바라기와 연꽃이에요. 해바라기는 여름 땡볕을 맞으며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고, 연꽃은 연못 위를 아름답게 꾸며주죠.

식물은 어떨까요? 여름에 내리는 잦은 비와 뙤약볕은 식물의 열매를 키우고 무르익게 하죠. 그 덕분에 우리는 여름이면 수박과 오이처럼 수분을 듬뿍 머금은 싱그러운 과채류를 먹을 수 있답니다.

연꽃과 해바라기

연꽃은 탁한 물에서도 깨끗한 꽃을 피우기 때문에, 덕망이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군자(君子)의 꽃으로 여겨졌어요. 옛 중국 유학자 주돈이는 자신이 연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진흙 속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꽃이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연꽃의 향기는 멀수록 맑기에, 아쉽지만 멀리서 볼 뿐이라는 글을 남겼어요.

작품1 - 강세황, ‘향기는 멀수록 맑다’, 18세기. 강세황은 그림 위쪽에 ‘연꽃의 향기는 멀수록 맑으므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주돈이의 글을 인용했고, 이어서 ‘그림 속의 연꽃 또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자기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간송미술관© 제공: 조선일보
은 조선 시대 강세황(1713~1791)의 연꽃 그림인데, 제목은 ‘향기는 멀수록 맑다(향원익청)’입니다. 그림 위쪽에 강세황은 ‘연꽃의 향기는 멀수록 맑으므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주돈이의 글을 인용했고, 이어서 ‘그림 속의 연꽃 또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자기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그림을 멀리서 보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겨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네요. 연꽃 아래쪽에 개구리 한 마리가 보이는데, 저 위쪽 커다란 잎사귀에 앉은 곤충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것 같기도 해요. 멀리서는 평화로워 보이는데, 가까이 보니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네요.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는 곳에서도 방심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연꽃의 향을 느끼면서 그 순수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닮은 군자로 살아가려면 속세의 오염이나 위험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겠죠.

작품2 -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1888년. 고흐의 그림 중 세상에 잘 알려진 그림 대부분은 1888년부터 1890년까지 2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제작됐어요.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제공: 조선일보
는 평정의 꽃이라기보다는 열정의 꽃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에게 해바라기는 인생의 꽃이기도 해요. 1886년 서른셋의 고흐는 당시 미술가들이 동경하던 도시, 파리로 갔어요. 하지만 대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건강이 안 좋아지고 말았습니다.

2년 후 공기 맑고 햇빛도 환한 프랑스 남부의 시골 마을, 아를에 오면서 그는 몸도 마음도 회복하기 시작했죠. 갈색을 비롯해 어둡던 고흐의 그림은 시골 햇빛 덕분에 노랑과 파랑, 라일락색으로 풍성해졌고, 붓질에는 생동감 넘치는 꿈틀거리는 기운도 담겼습니다.

아를에 있는 동안 그의 마음은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졌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평소 존경하던 폴 고갱이 방문한다는 소식이었어요. 고갱과 함께 지내며 같이 그림을 그린다는 기대감에 들떠 고흐는 손님 방을 직접 꾸몄어요. 벽지는 온통 노랗게 칠했고, 그 위에 군데군데 환영의 뜻으로 여러 종류의 해바라기 그림을 놓았어요. 총 2000점이 넘는 고흐의 그림 중 세상에 잘 알려진 그림 대부분은 그가 해바라기를 그린 1888년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1890년까지 2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여름같이 뜨거운 열정을 그림에 쏟아붓고 세상을 떠난 거죠.

수박과 오이

작품3 - 프리다 칼로, ‘삶이여 영원하라’, 1954년. /프리다 칼로 미술관© 제공: 조선일보
여름처럼 열정적인 또 한 명의 화가는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1907~1954)입니다. 은 프리다 칼로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으로 알려져 있어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새빨갛게 잘 익은 먹음직스러운 수박을 그린 거예요.

칼로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고, 열여덟에는 큰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쳤어요. 그는 반복되는 수술과 치료에 의존하며 살아야 했어요. 말년에는 건강 악화로 다리를 절단하기도 했습니다. 1954년 어느 날, 칼로는 있는 힘을 다해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파랗고도 하얀 하늘을 배경으로 빨간 과육을 드러낸 수박을 그렸어요. 잘라놓은 수박 중 하나에는 ‘삶이여 영원하라(Viva la Vida)’라고 적었죠. 8일 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품4 - 홍진구, ‘오이를 진 고슴도치’, 17세기. /간송미술관© 제공: 조선일보
에도 ‘삶이여 영원하라’와 비슷한 의미가 숨어있는데요. 조선의 문인 화가 홍진구의 그림입니다. 수박 대신 오이가 싱그럽게 열려있고, 귀여운 도둑인 고슴도치가 오이를 냉큼 업어서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군요.

그런데 이 그림에는 여름 오이에 어울리지 않게 가을에 피는 국화가 함께 그려져 있어요. 국화는 다른 꽃이 다 지는 계절에도 피어 있는 등의 이유로 장수를 의미한다고 해요. 넝쿨에 달린 열매, 오이는 자손을 뜻하고요. 지금 고슴도치는 숨은 인재를 얼른 알아보고 재빨리 모셔 가는 중인가 봐요. 그러니까 이 그림은 자손들이 잘 자라 성공할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내용이랍니다.

                                                             <참고문헌>

   1.  이주은/오주비, "고통받은 프리다 칼로… 삶 예찬하는 수박 그림 남겨", 조선일보, 2024.7.22일자. A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