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계 분서(焚書)의 역사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5.27 21:30

                                                                 세계 분서(焚書)의 역사

①1933년 5월 10일 독일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유대인 작가의 책 등 2만5000권을 불태우는 ‘베를린 분서’를 저질렀어요. ②베를린 분서 사건이 일어난 베벨 광장 한복판 바닥에는 유리창이 하나 설치되어 있어요. 가로·세로 각 120㎝짜리 정사각형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면 텅 빈 책장이 있어요. 조형물 이름은 ‘도서관’인데 책은 한 권도 없죠. 히틀러의 나치당이 수많은 책을 태워버린 분서 사건을 기억하고 반성하자는 의미랍니다.③중국 진시황이 일부 실용 서적을 제외한 책을 불태우고 자기에게 반대하는 유학자들 수백 명을 생매장한 ‘분서갱유’ 사건을 그린 그림입니다. /위키피디아·출판사 반비 제공

   최근 중국 최대 배달 앱 '메이퇀뎬핑'의 창업자 겸 CEO(최고 경영자) 왕싱(王興)이 소셜미디어에 '분서갱(焚書坑)'이라는 당나라 시를 올렸다가 곤욕을 치렀어요. 이 시는 진시황이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분서갱유'로 아무리 사상을 통제하려 해도 결국 혁명을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이에요. 이것이 기업을 통제하려는 현재 중국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을 겨냥했다고 해석된 것이죠. 중국 공산당은 '분서갱유'라는 단어에 특히 민감해요. 공산당은 불과 50년 전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지식인을 핍박하고 서적을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에요.

   독재자나 정복자들이 종교적·정치적 이유로 책을 불태워버리는 '분서'는 인류 역사 초기부터 있었어요. 기원전 3세기에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세계 최대 도서관'이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이슬람 등 여러 침략으로 파괴된 사건이 있었죠. 가까운 20세기에도 중국·독일·세르비아·이라크·스리랑카·티베트 등지에서 끊이지 않고 분서는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작년 홍콩에서도 민주화 인사들 책의 대출을 정부가 중단해 '현대판 분서' 논란이 일었죠. 왜 독재자들은 책을 불태우고 없애려 하는 걸까요?

   책은 다양한 지식이 담긴 기록물인 동시에, 개인과 집단의 철학·사상·역사를 담고 있어요. 그래서 책을 없애면 책 속 지식이나 사상이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걸 막을 뿐 아니라, 한 집단의 정신적·문화유산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독재자나 침략자들이 정복하고 싶은 대상이나 반대파들의 신체를 억압할 뿐 아니라, 그들의 책과 도서관을 파괴해버린 것이죠.

                                                      몰래 유교 경전 읽으면 사형시켰대요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 550여 년간 지속된 춘추전국 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어요. 통일 후 황제가 강력한 권한을 갖는 중앙 집권 체제를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기존 중국에서는 제후들이 각 지방을 나눠 다스리는 봉건제가 실시됐어요. 진시황은 이를 폐지하고 황제가 직접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는 군현제를 실시했죠. 진시황은 또 유가 사상 대신 법을 강조하는 법가 사상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았어요. 일부 유학자들은 군현제 등을 비판했어요. 이때 승상 이사(李斯)가 비판적인 학자들의 책을 없애라고 황제에게 건의했어요. 책을 통해 과거 역사와 현재가 비교되고 유학 사상도 전해지니 언론·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선 책을 태워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의약·농업 등 실용적인 책을 제외한 모든 책을 불태워버린 '분서' 사건이에요. 당시 책을 숨겼다 들키면 몸에 먹물로 글자를 새기고, 강제로 노동하는 벌을 받았다고 해요. 몰래 모여 유학 경전을 읽다가 들키면 사형됐어요. 그뿐만 아니라 진시황은 자신을 비판한 유생 460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버리는 '갱유' 사건도 벌입니다.

    하지만 이런 가혹한 통치로 진시황이 이룬 진나라는 얼마 가지 못했어요. 그는 통일을 이룬 지 11년 만인 49세에 사망했고, 그의 사후 백성은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죠. 지나친 억압이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갈망을 더욱 불러일으켰을 거예요. 결국 진시황 사망 4년 후 진나라는 무너졌고 유방이 등장해 한나라를 세웠습니다.

                                                      루터·에밀 졸라 등 작가 책 태웠어요
    서양에서도 분서 사건이 있었어요. 1933년 5월 10일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책 2만5000권을 베를린 베벨광장에서 불태우는 '베를린 분서 사건'을 일으켰어요. 당시 독일 선전장관 괴벨스는 '독일 문학을 정화시킨다'면서 나치 사상에 반대하는 책, 유대인 작가 책, 자유주의 사상을 담은 책 등을 모두 불태우자고 사람들을 선동했죠. 이에 학생 등 젊은이들이 나서 대학 도서관 책을 가져와 불구덩이 속에 넣었어요. 불탄 책 중에는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미국인 헬렌 켈러 책도 있었답니다. 후에 독일 문학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를 비판하는 시 '분서'를 지었어요. 자신의 책이 분서 목록에 오르지 않은 걸 알게 된 시인이 오히려 "나의 책을 태우라"고 외치는 내용이죠. 당시 많은 독일 작가와 예술가들이 탄압을 피해 해외로 망명했어요. 이들은 미국·프랑스에 모여 독일에서 불태워진 책들을 다시 모아 도서관을 설립하기도 했어요.

    현재 베벨광장엔 나치 시절 분서 사건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고, 그 옆 동판에는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남긴 문구가 새겨져 있어요.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책을 태우다가 결국 인간도 태울 것이다." 나치는 정권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책을 태웠지만, 결국 성공을 거두진 못했어요.

                                                    마오쩌둥 시대 홍위병들이 문화 파괴했어요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 때도 분서 사건이 발생했어요. 문화대혁명은 전근대적 문화와 자본주의를 철저히 배척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실천하자는 극단적 사회주의 운동이에요. 마오쩌둥이 반대파를 몰아내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시작했어요.

    마오쩌둥을 따르는 청년들로 구성된 홍위병은 문화재를 파괴하고 책을 태웠을 뿐 아니라 지식인들을 학대했어요. 수천 명의 예술가와 작가가 투옥되거나 끌려갔죠. 당시 공산당은 반대 의견이 담긴 책은 철저히 파괴한 대신, 마오쩌둥의 명언을 모은 '마오주석어록'을 출판해 널리 알렸어요. 이 책은 50억권이나 팔렸대요. 표지가 붉은색이라 '훙바오수(붉은 보물 책)'로 불립니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국이 오래 쌓아왔던 과학·예술 등 여러 분야가 수백, 수천 년 전으로 퇴보했다는 평가가 나와요.

                                                                       [종이책의 미래]
    책을 태우는 것은 책이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런데 기술 발달로 요즘에는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읽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전자책을 보는 사람 비율은 2015년 10.2%에서 2019년 16.5%로 늘었어요. 세계적 추세도 비슷합니다. 전자책은 종이책보다 무게도 가볍고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꼭 책이 아니라도, 인터넷에는 수많은 정보가 쌓이고 있습니다. 최근엔 귀로 듣는 오디오북도 인기예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종이책 규모가 줄어들 순 있어도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봐요. 정제되고 다듬어진 정보를 담은 종이책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참고문헌>

          1. 윤서원/김연주, "책을 태우다 결국 인간도 태울 것이다", 조선일보, 2021.5.26일자. 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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