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지리산, 덕유산, 계방산 등에서 가문비가 집단 고사했고, 올해 들어서는 광범위한 기후 스트레스로 7종의 침엽수가 넓은 영역에 걸쳐 고사하는 양상이 관찰되고 있다. 특히 지리산 구상나무는 2020년 봄부터 한라산 구상나무를 능가할 정도로 집단 고사가 가속한다.
세계 경제가 급성장하는 동안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이런 이상징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온난화와 환경오염 영향으로 광범위한 삶의 터전들이 사라져가고, 인간 사회에선 빈곤과 불평등 같은 불편한 현상들이 만연해간다.
런던정경대 국제불평등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바르셀로나자치대 환경과학기술연구소 교수인 제이슨 히켈 박사는 저서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에서 한계에 다다른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의 원인으로 끝없는 경제성장과 이를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탈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정치경제학과 생태경제학 등을 연구해온 경제인류학자답게 성장이라는 대세를 생태경제학적 측면에서 정면 반박하며 '경제성장 없는 그린뉴딜' 사회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단기적 방법은 물론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의 장기적 안목까지 들려준다.
성장은 그저 좋은 것일까? 무한정 성장하려 드는 암세포와 달리 성장 후 성숙으로 전환하는 정상세포처럼, 탈성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유지에 유일한 답이라고 저자를 강조한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유기체는 성장하지만 성숙 단계에 이르면 성장을 멈추고 일정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 따라서 이런 한계가 없는 경제성장은 암세포나 다름없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연쇄적 대멸종과 기후 붕괴의 민낯, 지구에 닥칠 어두운 미래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곤충의 수가 감소하면서 이를 먹이로 삼거나 수분 매개체로 하는 생물종도 광범위하게 감소하고 있다. 지구 토양의 40%가 심각하게 침식됐고, 전 세계 농지의 5분의 1에서 작물 수확량이 줄어들었다.
해양 상황도 심각하다. 공격적 남획과 오염으로 세계 어족 자원의 85%가 고갈됐고, 바다는 지구온난화로 생성된 열의 90% 이상을 흡수하며 뜨거워졌다. 그 영향으로 먹이사슬이 끊어지며 해양 서식지가 사라져가고, 탄소 배출 때문에 바다는 날로 산성화한다.
이에 따라 현재의 멸종 속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1천 배 이상 빨라졌다며 저자는 탄식한다. 기온 상승으로 매년 발생하는 초대형 태풍의 수는 1980년대 이후 두 배나 많아졌고, 2003년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모든 위기와 기후행동 실패의 배경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본의 내재적 논리가 '성장'이라는 절대과제이고, 자본주의의 특징은 지속적 성장의 추구다. 경제성장이 핵심지표로 등장한 GDP라는 측정기준은 성장에 대한 공적 강박증을 강화했으며,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기업과 정부가 파산하고 일자리가 사라져 모두가 빈곤해진다는 성장주의의 신념이 전 세계에 깊이 뿌리내렸다.
물론 저자는 성장이 그저 나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문제는 성장주의다. 인간의 필요와 행복, 사회적 목적을 충족시키는 게 아니라 성장 그 자체 또는 이윤추구만을 위해 성장을 추구하는 행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성장주의는 인간의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하려들 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자원을 마구 먹어 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