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반민특위의 설치와 해체 과정 / 친일인명사전 발간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8.13 13:10

반민특위의 설치와 해체 과정 / 친일인명사전 발간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가 헌법의 삼권분립 정신을 위반했다면서 반민특위를 비난하고 활동을 방해했다. 결정적 장면은 1949년 1월 노덕술을 체포했을 때 펼쳐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노덕술을 즉각 석방하고 반민특위 관계자를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그에게 노덕술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체포해 악랄하게 고문했던 일제 특고형사가 아니라 투철판 반공정신으로 공산당을 때려잡는 대한민국 경찰관이었다. 노덕술이 국회보다 더 중요했다. 이때 살아남은 노덕술은 후일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고문해 반국가 인사 또는 간첩으로 조작하는 고문수사의 노하우를 대한민국 경찰과 정보기관에 전수했다.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김근태를 참혹하게 고문한 이근안과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을 죽인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형사들은 모두 노덕술의 후예였다고 보면 된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반민특위 요인 암살 음오를 꾸몄다가 실패하자 소위 '국회프락치 사건'을 조작해 특별법 제정과 특위활동에 앞장선 젊은 국회의원들을 구속했다. 분개한 국회의원들이 석방 결의안을 의결하자 수백 명을 동원해 반민특의 사무실을 점거하고 "반민특위의 공산당을 술청하라"고 외쳤다. 반민특위가 난동을 일으킨 서울시경 사찰과장 최운하 등 주모자들을 체포하자 그들은 다시 반격했다. 내무차관 장경근과 치안국장 이호, 시경국장 김태선 등이 서울 중부경찰서 병력을 데리고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특경대장 오세윤을 체포하고 권승렬 특별검찰부장의 권총을 빼앗았다. 강원도와 충청북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경찰 병력이 특경대원들의 무장을 해제했다. 서울시경 사찰과 소속 경찰관 440명은 반민특위 간부 교체와 특경대 해산, 경찰의 신분보장을 요구하면서 집단 사표를 냈고 서울시경 경찰관 9,000명도 집단 사표를 내겠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국회는 반민특위를 원상복구하고 특경대를 습격한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이 습격을 지시했다며 특경대를 해산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경찰이 특별조사위원과 특별검찰관의 집을 수색하고 사무국과 재판부의 서류를 탈취하는 등 전면 공세를 펴자 겁을 먹은 국회의원들이 공소시료를 단축하는 「반민법」의 개정안을 의결했다. 일을 할 수 없게 된 김상덕 반민특위조사위원장과 특별조사위원 전원, 일부 특별검찰관과 특별재판관들이 사표를 냈다. 국회는 친일파 비호세력을 주축으로 새로운 특위를 구성했고 1951년 「반민법」을 폐지했다.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하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의 약점이 됐다.

(중략)

2013년 6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쪽이 자주성이 결여되어서"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다고 거듭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자주' 이념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되어 산다는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중략)

대한민국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응징하지 못했고 후손들이 누린 부당한 특권도 차단하지 못했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 12월 국회가 「친일재산환수법」을 제정했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은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민족을 배신해서 얻은 재산을 되찾으려고 끈질기게 소송을 벌였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반민족행위자도 한둘이 아니다. 만주군 장교 출신인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힌 2020년 7월, 격렬한 '친일파 파묘 논쟁'이 불붙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대부분 천수를 누린 다음 자연사의 축복을 받았다. 정부·국회·권력기관을 물론이요, 경제·문화계에도 당사자가 권력을 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민족사적 정통성을 결여한 채 출발한 이유와 과정을 엄정하게 평가하고 철학적으로 소화하는 과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 과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시민과 함께 수행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원래 이름은 '반민족문제연구소'였다. 1993년 4월 『친일문학론』으로 지식인사회의 일제 잔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2009년 1월 『친일인명사전』 발간 계획을 세웠던 임종국 선생 빈소에서 설립 발의를 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 후손들의 명예훼손소송과 발행금지가처분소송을 이겨냈다. 강만길, 백낙청, 윤경로, 염무웅, 최병모 등 200여 명의 역사학자와 지식인·변호사·종교인이 편찬위원회에 참여했고, 발간비용은 1,000여 명의 민족문제연구소 회원과 10만 명의 국민모금 참가자가 제공했다. 『친일인명사전』은 반민특위가 적용했던 것과 거의 같은 기준에 따라 선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4,776명의 직위와 활동내용을 수록했다.<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참고자료>

   1.  애프리, "반민특위의 설치와 해체 과정 / 친일인명사전 발간", 2021.8.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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