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상설 전시관. 임진왜란 때 사용된 왜군 조총과 조선의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 등이 보인다. [뉴스1]](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6/04/e9719e71-f86a-4c44-8c9e-ef6e1ed006a9.jpg)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상설 전시관. 임진왜란 때 사용된 왜군 조총과 조선의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 등이 보인다. [뉴스1]
제목 | 조총에 쓰러진 수많은 조선 동학농민군 | 글쓴이 | 신상구 | 날짜 | 2021.06.05 01:24 |
조총에 쓰러진 수많은 조선 동학농민군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상설 전시관. 임진왜란 때 사용된 왜군 조총과 조선의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 등이 보인다. [뉴스1]
한·미회담서 거리·중량 제한 해제
임진왜란 참패한 배경 성찰케 해
전쟁 직전까지 “조총에 맞겠느냐”
명군 “화포제작법 알려줄 수 없다”
300년 뒤 죽창으로 싸운 동학군
애국심·열정도 무기 앞에선 무력
당시 조선시대 소형 화기인 승자 총통이다. [연합뉴스]
1575년 나가시노 전투를 그린 병풍 그림. 『도설 오다 노부나가』(2002·도쿄 발행)에서.
명군은 이들 화포와 화전(火箭)을 발사하여 조총을 무력화시킨 다음 공성전을 벌여 평양성을 함락시킨다. 전투 장면을 지켜본 조선 신료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하고 연기와 불꽃이 수십 리에 뻗쳤다”고 명군 화포의 위력을 묘사했다.
평양 전투 이후 조선은 명의 화포를 도입하고 그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부심했다. 또 명군 교관을 초빙하여 진법(陣法) 등을 습득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명군 지휘부는 진법을 전수하는 것은 허용했지만 자신들의 화포를 넘겨주거나 제작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넘겨주기는커녕 이미 1593년 10월 무렵부터 자신들이 가져온 화포를 전부 회수해 가고 있었다. 조선은 화살에 바르는 독(毒)의 제조법도 배우려고 했지만 명군 지휘부는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선은 명군 장졸들을 매수하거나, 조선에 잔류했던 명군 도망병을 활용하여 화포 제조법 등을 습득하려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일본군 1명이 동학군 200명 상대
일본군의 조총 때문에 넋이 나갔던 임진왜란 당시로부터 300년이 지난 1894년, 조선은 다시 비극에 휘말린다.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왜양(斥倭洋)을 내걸고 봉기했던 동학 농민군은 침략자 일본군이 지닌 우수한 무기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1894년 7월, 청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자 농민군은 다시 봉기한다. 일본군을 몰아내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열정과 애국심은 드높았지만 농민군이 가진 무기는 고작 죽창과 조총에 불과했다. 조총 성능은 임진왜란 시기보다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었다. 반면 일본군은 영국제 스나이더 소총과 자국에서 만든 무라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스나이더 소총은 사거리와 명중률, 그리고 살상력에서 이전과는 수준이 달랐다. 무기 성능이 워낙 현격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에 일본군 1명이 농민군 200명을 상대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농민군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고 게릴라전으로 일본군에 맞서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주의 우금치를 비롯한 삼남 지방 곳곳에서 수만의 농민군이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실제로 농민군 토벌에 참가했던 일본군이 훗날 남긴 기록은 섬뜩하다. ‘농민군이 400m 앞까지 접근했을 때 우리 부대는 비로소 저격했는데 백발백중이라 정말 유쾌함을 느꼈다. 적은 오합지졸이었고 공포에 질려 전진해 오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열정과 애국심도 무기 성능의 차이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 우주센터서 발사한 아리랑3호
2012년 5월 18일, 한국은 인공위성 아리랑 3호를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렸다. 지상 685㎞ 상공에서 승용차까지 식별할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을 지닌 다목적 위성이었다. 그런데 아리랑 3호가 발사된 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당시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로 띄울 수 있는 로켓이 없었기 때문에 아리랑 3호는 일본의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이 제작한 H2A 로켓을 빌려 발사했다.
다네가시마가 어떤 곳인가. 일찍이 1543년, 표류해 온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조총이 전래해 일본 곳곳으로 퍼져나간 ******점이 아니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렇게 확보한 조총을 바탕으로 일본을 통일한 뒤 총구를 조선으로 돌렸다. 더욱이 2012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 이른바 7주갑(周甲·60년)이 되는 해였다. 임진왜란 발생 7주갑에 일본 조총의 발상지에 자리 잡은 우주센터에서 일본제 로켓에 위성을 실어 발사했던 사실을 돌아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조총 때문에 피를 뿌려야 했던 임진왜란의 아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개발할 수 있는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와 탄두 중량 제한이 해제됐다. 사거리를 180㎞, 탄두 중량을 500㎏으로 묶었던 1979년 ‘한·미 미사일 지침’이 해제되는 데 40년 넘게 걸렸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사거리 1만㎞가 넘는 미사일을 갖고 있거나 만들 능력이 있는 군사 강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에게는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무기가 빈약하여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지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기를 소망한다.
<참고문헌>
1. 한명기, "조총에 쓰러진 조선, 무기 약하면 피눈물 흘린다", 중앙일보, 2021.6.4일자. 24면.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 날짜 |
---|---|---|---|---|
![]() |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 박한 | 119974 | 2018.04.12 |
2365 |
강남 압구정과 한명희1
![]() |
신상구 | 488 | 2024.10.26 |
2364 |
압구정과한명희
![]() |
신상구 | 252 | 2024.10.26 |
2363 | <특별기고>독도의 날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행사 | 신상구 | 296 | 2024.10.26 |
2362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이 남긴 우리의 과제 | 신상구 | 285 | 2024.10.25 |
2361 |
배우 전무송 이야기
![]() |
신상구 | 320 | 2024.10.25 |
2360 |
천안시, 석오 이동녕 선생 학술회의 개최 공적 재평가 모색
![]() |
신상구 | 271 | 2024.10.24 |
2359 | 3·8민주의거기념관 2024.11.19일 정식 개관 이전 기사보기다음 기 | 신상구 | 814 | 2024.10.24 |
2358 | 소년이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 신상구 | 293 | 2024.10.22 |
2357 | 석오 이동녕 선생 재조명 학술대회 | 신상구 | 269 | 2024.10.22 |
2356 |
노벨상 수상이 가져다 줄 베이스캠프 효과
![]() |
신상구 | 292 | 2024.10.22 |
2355 | 항일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길영희 선생의 생애와 업적과 사상 | 신상구 | 297 | 2024.10.20 |
2354 |
한강 문학은 통치술에 대한 감각적 불복종
![]() |
신상구 | 295 | 2024.10.19 |
2353 | 조선의 K소설, 한강의 선배들 | 신상구 | 306 | 2024.10.18 |
2352 |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떠올려준 생각들 | 신상구 | 295 | 2024.10.18 |
2351 | 한강 노벨문학상, 한국 문화의 새 역사 | 신상구 | 294 | 2024.10.15 |
2350 | ‘한강의 기적’에 분노하는 사람들 | 신상구 | 325 | 2024.10.15 |
2349 | 세계 문학계 '포스트 한강 누구냐' 주목 | 신상구 | 277 | 2024.10.15 |
2348 |
『통합정치와 리더십』에서 경합과 협치의 정치 방안 모색
![]() |
신상구 | 267 | 2024.10.13 |
2347 | 육영수 여사와의 추억 | 신상구 | 304 | 2024.10.13 |
2346 |
청의 간섭에도 美 공사관에 태극기 걸며 '자주 외교' 펼쳤죠
![]() |
신상구 | 285 | 2024.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