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734m의 육십령, 고대 가야 반파국의 철광석 로드
영호남을 왕래하는 길은 평탄한 길이 없다.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을 연결하는 고갯길이 해발 734m의 육십령(六十嶺)이다. 나는 이 고갯길을 넘어갈 때마다 그 이름에 의문이 들곤 하였다.
산적들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넘을 때 적어도 60명이 모여서 넘어야 한다는 전설이 있다. 산적 떼가 그 옛날 이 험한 오지 산길에서 얼마나 털어갈 물건이 있었다고?
그 오래된 의문이 근래에 가야사를 연구하는 곽장근(60·군산대·’전북 고대 문화 역동성’)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풀렸다. “전북 장수가 고대의 철(鐵) 생산지입니다. 장수군 일대가 질 좋은 철광석 산지입니다.
여기서 제련한 쇳덩어리나, 철제 무기를 경상도 지역의 대가야나 금관가야 지역으로 수출했던 것입니다. 당시 최고 제품이었던 철기를 수출하려면 반드시 육십령을 넘어야 했죠.”
가야 문화의 특징을 꼽으라면 철기 문화다. 가야는 철이 발달했던 것이다. 강력한 쇠로 만든 칼이나 무기들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였다. 문제는 이 철을 어디에서 공급받느냐 하는 것이었다.
전북 장수는 고대 가야의 소국 가운데 하나였던 ‘반파국’이 있었던 지역이다. 서기 300년대 후반 시작되어 500년대 초반까지 대략 150년 동안 유지되었던 소국이다.
장수군 장계면에는 반파국 왕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반파국의 수출품은 철이었다. 이 일대 지질 구조가 모두 철광석을 함유한 산맥이었다.
대가야의 고령이나 금관가야의 김해 쪽에는 지형적으로 이런 철광석 산맥이 드물었다. 고고학자들의 조사 발굴에 따르면 장수군 일대에서 제철 유적지가 현재까지 80군데 발견되었다. 화로 속에다 철광석을 넣고 숯으로 가열해서 철만 뽑아내는 제련 유적지가 80군데라는 이야기다.
철을 뽑아내려면 2000도까지 가열해야만 한다. 도가지(독의 방언)를 굽는 가마 온도가 대강 1300도이다. 화로 속에 숯과 철광석을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려 2000도까지 고온으로 가열하는 기술이 당시의 첨단 기술이었다.
철광석에다가 이 첨단 기술을 가야 소국 가운데 하나인 반파국이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요즘으로 치면 반도체에 해당하는 철을 고령의 대가야나 김해의 금관가야까지 운반하려면 반드시 육십령을 넘어야 한다.
이 값나가는 철기를 털려고 고갯길에서 산적들이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적어도 60명이 모여서 넘어가야 하는 ‘육십령’은 고대의 아이언 로드(iron road)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1. 조용헌, "육십령, 고대의 아이언 로드", 조선일보, 2021.12.20일자. A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