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해발 734m의 육십령, 고대 가야 반파국의 철광석 로드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12.21 02:49


해발 734m의 육십령, 고대 가야 반파국의 철광석 로드


영호남을 왕래하는 길은 평탄한 길이 없다.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을 연결하는 고갯길이 해발 734m의 육십령(六十嶺)이다. 나는 이 고갯길을 넘어갈 때마다 그 이름에 의문이 들곤 하였다.

산적들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넘을 때 적어도 60명이 모여서 넘어야 한다는 전설이 있다. 산적 떼가 그 옛날 이 험한 오지 산길에서 얼마나 털어갈 물건이 있었다고?

그 오래된 의문이 근래에 가야사를 연구하는 곽장근(60·군산대·’전북 고대 문화 역동성’)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풀렸다. “전북 장수가 고대의 철(鐵) 생산지입니다. 장수군 일대가 질 좋은 철광석 산지입니다.

여기서 제련한 쇳덩어리나, 철제 무기를 경상도 지역의 대가야나 금관가야 지역으로 수출했던 것입니다. 당시 최고 제품이었던 철기를 수출하려면 반드시 육십령을 넘어야 했죠.”

가야 문화의 특징을 꼽으라면 철기 문화다. 가야는 철이 발달했던 것이다. 강력한 쇠로 만든 칼이나 무기들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였다. 문제는 이 철을 어디에서 공급받느냐 하는 것이었다.

전북 장수는 고대 가야의 소국 가운데 하나였던 ‘반파국’이 있었던 지역이다. 서기 300년대 후반 시작되어 500년대 초반까지 대략 150년 동안 유지되었던 소국이다.

장수군 장계면에는 반파국 왕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반파국의 수출품은 철이었다. 이 일대 지질 구조가 모두 철광석을 함유한 산맥이었다.

대가야의 고령이나 금관가야의 김해 쪽에는 지형적으로 이런 철광석 산맥이 드물었다. 고고학자들의 조사 발굴에 따르면 장수군 일대에서 제철 유적지가 현재까지 80군데 발견되었다. 화로 속에다 철광석을 넣고 숯으로 가열해서 철만 뽑아내는 제련 유적지가 80군데라는 이야기다.

철을 뽑아내려면 2000도까지 가열해야만 한다. 도가지(독의 방언)를 굽는 가마 온도가 대강 1300도이다. 화로 속에 숯과 철광석을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려 2000도까지 고온으로 가열하는 기술이 당시의 첨단 기술이었다.

철광석에다가 이 첨단 기술을 가야 소국 가운데 하나인 반파국이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요즘으로 치면 반도체에 해당하는 철을 고령의 대가야나 김해의 금관가야까지 운반하려면 반드시 육십령을 넘어야 한다.

이 값나가는 철기를 털려고 고갯길에서 산적들이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적어도 60명이 모여서 넘어가야 하는 ‘육십령’은 고대의 아이언 로드(iron road)였던 것이다.

​ <참고문헌>

1. 조용헌, "육십령, 고대의 아이언 로드", 조선일보, 2021.12.20일자. A33면.

시청자 게시판

2,426개(31/122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75810 2018.04.12
1825 윤행임의 8도 사람 4자 평과 재치 사진 신상구 909 2022.02.23
1824 초혼 단재 애곡(招魂 丹齋 哀哭) 신상구 528 2022.02.22
1823 꽃의 시인 김춘수의 생애와 문학세계 신상구 1105 2022.02.02
1822 임강빈 시비(詩碑) 제막식을 다녀와 쓰는 편지 사진 신상구 708 2022.02.01
1821 금정 최원규의 생애와 업적 신상구 641 2022.02.01
1820 옥의 비밀 사진 신상구 744 2022.01.30
1819 핀란드 만하임과 한국 윤보선의 공통점과 상이점 사진 신상구 739 2022.01.30
1818 죽음 단상 신상구 740 2022.01.30
1817 이인성의 ‘순응’을 오마주한 강요배 사진 신상구 760 2022.01.26
1816 단양 '슴베찌르개' 세계 최고 구석기 유물 사진 신상구 568 2022.01.26
1815 1500년 전 고구려 벽화 속 메타버스 세계 사진 신상구 619 2022.01.22
1814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 의거 90주년을 기념하며 신상구 763 2022.01.22
1813 풍도의 포성 사진 신상구 625 2022.01.21
1812 공산주의는 왜 실패했나 사진 신상구 570 2022.01.21
1811 베이컨 ‘뉴 아틀란티스’ 신상구 664 2022.01.19
1810 한국어 수출 현황 신상구 911 2022.01.19
1809 동료들에게 신뢰를 얻는 5가지 방법 신상구 1106 2022.01.17
1808 2022년 한국경제의 당면 과제와 해결 방안 신상구 639 2022.01.17
1807 창덕궁 후원 옥류천 계곡 산수와 정자를 배경으로 벌어졌던 유상곡수연 사진 신상구 762 2022.01.16
1806 격변에 맞선 ‘오디세우스 생존법’ 사진 신상구 561 2022.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