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에 사진이 처음 등장한 건 1863년이다. 1839년 사진이 발명되고 2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중국으로 파견된 연행사절단의 수행관 중 한 명인 이항억이 남긴 ‘연행일기’에 사진에 관한 언급이 세 차례 나온다. 북경에 도착한 이항억이 처음 사적인 행차를 한 곳이 아라사관(러시아관)이었는데, 거기서 사진을 처음 만난다.
“관 내부에는 사람들의 형상을 잘 본뜬 인물상이 있는데, 머리카락 하나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린 것이었다. 관아의 갱벽 위에는 의관을 똑바로 하고 기상이 단정한 사람이 죽 늘어앉았는데, 가까이 나아가 본즉 화상(畵像)을 벽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조선인의 눈에 비친 사진은 극도로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었다. 이항억 일행은 이튿날 다시 러시아관을 찾았고, 사진을 찍는 첫 경험을 한다.
한국 땅에 사진이 들어온 건 언제였을까. 한국 사진 도입의 원년을 1895년으로 잡고, 당시 유명한 서화가였으며 영친왕의 서예 스승이었던 해강 김규진(1868∼1933)을 최초의 사진사로 보는 시각이 오랫동안 통용됐다. 그러나 한국인이 서울에 사진을 찍고 만드는 시설을 갖추고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보다 10여년 앞선 1883년의 일이다.
“조선 왕실 도화서의 화원 출신으로 우후라는 벼슬의 정부 관리를 지냈던 미사 김용원(1842∼1896)이 지금 서울 중구 저동에 개업한 촬영국이 바로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사진 시설이다.”
한국사진의 역사는 140년에 이른다. 그렇지만 한국사진사에 대한 연구는 극히 빈약하다. 1999년 출간된 고 최인진의 ‘한국사진사 1631-1945’가 통시적 연구로는 유일했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사진사’는 역사의 범위를 현재까지로 넓혀 한국사진의 전 역사를 온전히 망라한 첫 책이다. 최인진의 제자인 박주석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의 30년 연구가 담긴 결과물로 원고지 3000매 분량에 수록된 도판도 300여점이나 된다.
한 분야나 장르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정확성일 것이다. 역사를 어떻게 축약할 것인가, 무엇을 기록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눈도 중요하다. 그리고 전체 흐름을 관통하는 관점이 있어야 한다. ‘한국사진사’는 명쾌하게 이 작업을 수행한다.
저자는 당시의 역사와 사료, 해외 자료 등을 꼼꼼하게 인용하며 사진의 역사를 그려냈다. 특히 자료나 연구가 부족한 사진 도입 초기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그려낸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황실 공식 사진가 김규진의 실체를 드러내 보이면서 “1902년부터 1907년 사이에 유포된 고종과 순종의 어사진이 대부분 일본인 사진가나 서양인 사진가들이 찍은 것이라는 기존의 학설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책의 구성이나 내용은 꽤 흥미롭다. ‘조선과 사진의 만남’에서 시작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 한국 현대 사진’까지 시대순으로 배치된 12개의 장은 각각 분명한 주제를 갖고 있으며, 각 시기를 대표하는 사진들이 풍부하게 수록됐다. 저자는 사진가와 작품들, 단체들, 경향들을 내세워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듯 사진사를 전개한다. 사진학의 선구자 신낙균, 예술사진의 역사를 출발시킨 정해창, 작가주의 사진가 현일영 등 중요한 사진가들을 충실히 소개한다. 당시 사진이 놓였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공들여 해설하고 있어 사진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근현대사로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사진가와 작품, 양상 등을 펼쳐 보이면서 그것이 가진 의미와 한계를 적극적으로 비평한다. 1950∼60년대 한국 사진의 지배적 흐름이었던 ‘생활사진’이라는 이름의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보자.
“그들은 사회의 현실을 사진으로 표현하자고 주장하면서도 가장 치열한 민중의 삶에는 등을 돌렸고, 사진의 본질은 시대를 기록하는 기록성이라고 하면서 그 시대의 첨예한 사건 현장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순히 빈민이나 소외된 노인 등을 찍는 사진은 그 시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한국사진사를 기술하면서 저자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부분은 한국사진의 독자성이다. 이 책이 사진사가 아니라 한국사진사라면 사진이 한국에서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양상을 포착하고 분석하는 것은 핵심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빛으로 그린 그림’을 의미하는 포토그라피(photography)에 대응한 우리말이 처음부터 사진이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우리에게는 진(眞)을 사(寫)하는 사진의 전통과 철학이 있다”고 분석한다. 사진은 고려시대부터 사용해온 단어로 주로 초상화를 지칭했던 말이다. 왕의 초상을 뜻하는 어진(御眞)이라는 용어도 사진에서 파생했다. 사진은 전통 회화의 철학이기도 했다. 형상이나 풍경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게 ‘사’라면, 그 속에 든 정신이나 감정을 뜻하는 ‘진’까지 그리는 게 ‘사진’이다. 저자는 포토그라피와 사진을 구분하고, 한국사진의 키워드로 ‘진’을 제시한다. “진을 사하는 사진을 찍고 만들 때, 현재의 우리는 지금 시대의 진은 과연 무엇인가를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사진을 초상화나 진경산수화의 전통에 연결시키고, 도화원 출신들이 사진 도입을 주도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한국사진의 회화적 성격을 부각한다. 초기 사진가들이 가진 선각자나 계몽운동가로서 면모를 조명하며 한국사진이 근대성을 국내에 이식하고 사회개혁을 지향해온 매체였음을 강조한다.
작법이나 미학에서도 독자성을 추구한 작가들이 있었다. 저자는 정해창을 “사진이라는 지극히 서구적인 예술 방법을 갖고 어떻게 우리의 방식으로 우리의 정서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예”라고 평가했다. 현일영의 사진에 대해서는 “동시대인들에게는 괴상하고 희한한 기호의 나열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지만 “세계 사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사진의 백미”라고 극찬했다.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현대인에게 사진은 두 번째 언어다. 현대 문화나 예술도 사진을 빼놓고 얘기하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사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여줄 책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한국사진사’가 이런 갈증을 풀어준다.
<참고문헌>
1. 박주석, 한국사진사, 문학동네, 2021.
2. 김남중, "1863년 한민족 최초 찰칵!...140년 사진 이야기", 국민일보, 2021.12.17일자.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