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활과 화살
- ▲ 화살을 쏘는 몽골군을 묘사한 그림들. /위키피디아
양궁은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와 구분하기 위해 서양에서 들어왔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에요.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활쏘기에 능했고 활을 잘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우리 외에도 활쏘기로 유명한 민족들이 있는데요. 오늘은 활과 화살을 잘 다뤘던 민족들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활과 화살
고대인에게 사냥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어요. 새로운 사냥 도구를 고안해내는 것은 기술 혁신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지요. 활과 화살은 정말 중대한 발명이었어요. 발 빠른 작은 짐승들을 사냥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였기 때문이에요. 사냥을 위해 만들어진 활과 화살은 시간이 지나면서 강력한 군사력의 핵심이 되었어요.
파르티아와 활쏘기
기원전 3세기 중엽 이란계 유목민이 세운 고대 국가 파르티아는 한나라와 인도 등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으로 번성한 나라예요. 그런데 이 민족은 기마병의 활쏘기로도 유명했어요. 기마병이 양다리로 말을 잡고 뒤쪽으로 몸을 돌려 화살을 쏘는 것을 '파르티아식 활쏘기'라고 부를 정도예요.
파르티아 군대가 활과 화살을 얼마나 잘 다루었는지는 로마와 벌인 카르헤 전투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기원전 53년 로마 공화정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크라수스는 영토를 넓히기 위해 파르티아와 전쟁을 시작했는데요. 파르티아군은 창과 칼·방패로 무장한 로마군을 상대하기 위해 기마병을 활용해 신속하게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전술을 사용했어요.
파르티아 기마병들은 말을 탄 상태에서 좌우로 자유롭게 몸을 돌리며 활을 쏘았고, 후퇴하는 척하면서 몸을 뒤로 돌려 다시 화살을 쏘기도 했지요. 로마 보병들은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는 파르티아의 기마병들을 따라잡기 힘들었고, 또 기마병들이 자유자재로 몸을 돌려 쏘는 화살을 피하기 어려웠어요. 결국 로마군은 전쟁에서 패했어요.
파르티아군처럼 말을 타고 달리며 화살을 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고삐를 놓고 양다리로만 몸을 지탱해야 하기도 하죠. 하지만 파르티아는 유목민이 세운 나라였기 때문에 대부분 말을 타고 달리는 것에 익숙했고 말 위에서 움직임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말을 타고 빠르게 다가가 화살로 공격하고, 도망치면서도 말 위에서 화살을 쏘는 등의 전투 방식에 유리한 환경이었던 것이죠.
훈족의 활과 화살
훈족은 4세기 유럽으로 이동하며 게르만족 대이동을 촉발한 기마 유목 민족이에요. 훈족은 어떻게 게르만족을 밀어냈을까요? 훈족의 우수한 활쏘기 방식에 바로 그 답이 있어요.
유목 민족으로 기동성이 중요했던 훈족에게 말은 아주 중요했어요. 훈족의 말은 오늘날 사냥용 말보다 어깨 폭이 20㎝가량 좁아 스피드가 뛰어났다고 해요. 험준한 산악 지형이 아닌 곳에선 매일 수십 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었다고도 해요. 또 풀을 찾는 능력이 뛰어나 사육에 큰 힘이 들지 않았다고 해요. 더하여 훈족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말 타는 법을 배웠고, 그래서 그들은 말을 탄 채로 자는 것 빼곤 뭐든 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훈족 병사들은 전시에 한 명당 6~7마리 말을 데리고 다니면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어 타며 전투에 임한 것으로 추정돼요.
훈족은 '나무 안장'을 사용했어요. 훈족의 안장은 나무 버팀목이 있어 말을 타고 달릴 때 기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고 해요. 훈족은 또 '등자'도 사용했어요. 발을 받쳐주는 가죽 밴드나 발 주머니를 안장에 달아 장기간 말을 탈 때 다리가 피곤해지지 않도록 했지요. 또 등자에 다리를 고정하면 달리는 중에도 사방으로 화살을 쏠 수 있었어요.
훈족은 당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활과 화살 제조법을 가지고 있었대요. 바로 복합궁과 도끼날 화살촉이에요. 복합궁은 여러 가지 재료를 조합해 만든 활을 말해요. 훈족은 자신들의 복합궁을 만드는 데 5년, 이 활을 제대로 쏘기 위한 기술을 익히는 데 10년 정도 걸렸어요. 하지만 일단 활시위를 당기기 위한 준비가 끝나면 1분 안에 무려 10여 발을 쏠 수 있었다고 해요. 훈족은 여기에 더해 특수 제작한 도끼날 화살촉을 사용해 목표물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고 해요.
몽골의 전략과 전술
몽골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민족이에요. 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전술은 거짓으로 후퇴하는 것이었어요. 후퇴하는 척하면서 끌고 나온 적군을 매복해 있던 다른 몽골군이 포위해 궤멸하는 것이죠.
이 전술이 가능하려면 역시 말을 잘 타야 했고, 활도 잘 쏴야 했어요. 몽골에서는 남녀 모두 어렸을 때부터 말을 탔고,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아 명중시키는 법을 배웠다고 해요. 특히 말을 타고 달려가면서 기둥에 묶인 호리병 바가지를 쏘아 맞히는 훈련을 했다고 해요. 기둥 높이를 달리해 목표물이 달라지는 전투 상황에 대비한 연습을 했다고 해요.
몽골군의 주력 무기도 복합궁이었어요. 뿔과 나무, 아교 등으로 활을 만들었어요. 최대 사거리는 300m 정도였고, 정확도와 관통력이 높았다고 해요. 먼 거리에서 쏜 화살로 적의 갑옷을 뚫고 치명상을 입히려면 화살촉이 중요한데요. 강철과 뼈, 뿔 등으로 만든 여러 종류의 화살촉을 사용했다고 해요. 그리고 평소에도 화살촉을 예리하게 다듬었다고 해요. 몽골족은 이러한 고도의 궁술로 넓은 영토를 획득할 수 있었답니다.
- ▲ 화살을 쏘는 몽골군을 묘사한 그림들. /위키피디아
- ▲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뒤로 돌려 화살을 쏘는 자세인 ‘파르티아식 활쏘기’를 새긴 작품들. /위키피디아
- ▲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뒤로 돌려 화살을 쏘는 자세인 ‘파르티아식 활쏘기’를 새긴 작품들. /위키피디아
- <참고문헌>
- 1. 정세정, "달리는 말 위서 몸 돌려 명중… '파르티아식 활쏘기'래요", 조선일보, 2024.8.7일자. A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