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민족의 천손 사상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5.14 03:11

                                                                                        한민족의 천손 사상

         

        
  • 한승용 전문기자
  • k-spirit@naver.com
  • 승인 2018.03.30 10:00
                         
            

    


        
        
                
                    
                    

     한국인의 생각하는 특성은 ‘하늘로부터라는 방향성을 가장 중요하게 나타낸다. 하늘을 높이 받들고(崇天), 하느님을 존경하고(崇神), 해와 달, 산 등을 높이어 받들고(日, 月, 山岳 崇拜) 또 조상 선령을 높이 받들어 공경(祖先崇拜)하는 등의 모든 것이 ‘하늘로부터’라는 연결성을 가지고 형성되어 왔다.

    《삼국사기》 예지(禮志)에는 “진역(震域)의 고방(古邦)은 다 태양(日)을 하늘(天)로 제사(祭)하고 또 태양(日)으로써 시조(始祖)를 삼았다.”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진역(震域)이란 고조선을 나타내는 것으로 《후한서》에는 “한(韓)은 3종이 있는데 마한 진한 변진이다. [...]이들 모두 옛날 진국(辰國)이다(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辰 [...]皆古之辰國也)”라고 하였다. 《설문해자(說文解字)》 卷十四下에 따르면 “辰震也...”(진(辰)은 진(震)이다”라고 하여 진(辰)과 진(震)이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였다.

중국의 경우 시일이 지날수록 하늘의 인격신적인 측면이 약화된 반면, 자연신으로서의 상징적인 면모가 강화되어가며 천신과의 혈연적 고리는 약해져 갔다. 고구려는 이와 정반대의 천신과의 혈연을 바탕으로 하는 천인합일의 양상을 강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하늘과 태양을 중시한 것은 바로 시조(始祖)로 이어진다고 하는 혈연적 연결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이 오이, 마리, 협보와 더불어 부여를 탈출하다가 엄리대수에 다다랐다. 앞은 강물에 막히고 뒤에서는 동부여 군사가 추격해오는 절박한 상황에서 고주몽이 강물의 수신에게 이렇게 외쳤다.

     “나는 천제의 아들, 하백의 외손이오. 오늘 달아나고 있는데, 쫓는 자들이 거의 다가왔으니 어찌 하리오?(我是天帝子 河伯外孫 今日逃走 追者垂及如何)”라 하였다.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이루어 주몽은 건널 수 있었고 물고기와 자라는 이내 흩어져 쫓아오던 기병들은 건널 수 없었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다!”라는 말은 부여와 고구려 왕들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해모수는 천제(天帝)의 아들로,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북부여 세웠다고 한다. 만주 집안현에 세운 광개토대왕비문에도 ‘천제지자’, ‘황천지자’라는 기록이 남아 천손사상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물교화경(開物敎化經)은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 칙서 형태로 남긴 기록으로 <한단고기 고구려국 본기>에서 수록된 것이다. 이 기록에는 천제지자(天帝之子)라는 내용이 명문화되어 있어 광개토대왕비에 나온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모습을 본 떠 매 사람마다 균등하게 三眞을 주셨다.

    이로서 인간은 하늘을 대신하여 능히 세상을 일으키게 되었다.

    하물며 우리나라의 선조가 북부여로부터 나와

    천제의 아들로 불리움에 있어서야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天神造萬人

    一像均賦三眞於

    是人其代天而能立於世

    也況我國之先出自北夫餘

    爲天帝之子乎

     ....중략....

     “이것이 신시배달국의 개물교화(開物敎化)이니

     하나님을 위하여 본성을 통하고(性通)

     중생(衆生)을 위하여서는 법(法)을 세우며

     선왕(先王)을 위하여서는 공완(功完)을 이루고

     천하만세(天下萬世)를 위하여서는

     지생(知生)을 나란히 닦는 교화를 이루는 것이다.”

     此乃神市之開物敎化

     爲天神通性

     爲衆生立法

     爲先王完功

     爲天下萬世

     成智生雙修之化也

     이처럼 고구려는 하늘의 자손, 천제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신시배달국의 가르침(神敎)을 이어 받아 나라와 백성을 다스려 온 천손민족이었다.

     삼국시대 이후 단군은 고려 말, 대몽항쟁 시기에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2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고려의 역사적 위치를 부여할 때 고구려 계승의식과 신라 계승의식이 갈라져 있었다. 이는 김부식과 묘청의 대립처럼 고려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3세기 몽골의 침입이란 국난을 경험하면서 국론 통일 및 국가의 자긍심 함양을 위한 존재로서의 단군의 인식은 그 존재는 더욱 뚜렷해졌다.

     안으로는 무인정권의 폭압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세계를 제패한 몽골의 침략으로 국토가 쑥대밭이 된 민족수난기에 내적인 민족통합의 정신적 일체감이 단군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단군을 국조로 하는 일연 선사의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편술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족적인 위기를 단군을 중심으로 극복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국조(國祖)로 추앙되었다. 세종 때에는 평양에 단군과 동명왕을 모신 사당을 지어 국가적으로 제사를 올렸으며 환인, 환웅, 단군의 신주를 모신 삼성당(三聖堂) 또는 삼성사가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한제국 시기 일제의 국권 침탈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타자와 구별되는 자아에 대한 인식을 뚜렷하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족의 존재가 발견되고 그 결과 군주 대신에 민족이 국가의 중심 개념으로 부상하였다.

     1931년 6월 10일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일보 학예란에 '조선사' 연재를 시작하면서 우리 민족 최초의 정사(正史)를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 소개한다. 단군조선 때 신지라는 사관이 쓴 비사로 단재는 <신지비사>가 우주창조· 단군조선의 건국· 산천지리 등을 노래한 것으로 훗날 고려 때의 '해동비록'에 일부 내용이 요약 정리돼 포함되었다고 말한다.

     이 <신지비사>의 서문이 고려 제23세 고종(1213~1259) 때, 김위제(고려 숙종‧예종 때 인물)가 평양으로의 천도를 주장하며 올린 상소문에 있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신지비사> 서문의 내용이 <단군세기> 「서효사誓効詞」와 동일한 내용이어서, 두 자료의 연관성을 주목하게 한다.

     <단군세기> 「서효사誓効詞」는 6세 달문 단군이 재위 35년 임자년에 여러 왕[諸汗]을 상춘(常春)에 모아 구월산에서 삼신께 제사지내실 때,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짓게 한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침 햇빛 먼저 받는 이 땅에 삼신께서 밝게 세상에 임하셨고

    환인천제 먼저 법을 내셔서 덕을 심음에 크고도 깊사옵니다.

    모든 신이 의논하여 환웅을 보내셔서 환인천제 조칙 받들어 나라를 여셨사옵니다.

    치우천황 청구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용을 떨치셔서 회수 태산 모두 천황께 귀순하니

    천하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사옵니다.

    단군왕검 하늘의 명을 받으시니 기쁨의 소리 구환에 울려 퍼졌사옵니다.

    물고기 물 만난 듯 백성들이 소생하고 풀잎에 부는 바람처럼 덕화가 새로워졌사옵니다.

    朝光先受地 三神赫世臨

    桓因出象先 樹德宏且深

    諸神議遣雄 承詔始開天

    蚩尤起靑邱 萬古振武聲 淮岱皆歸王 天下莫能侵

    王儉受大命 懽聲動九桓

     魚水民其蘇 草風德化神 怨者先解怨 病者先去病 一心存仁孝 四海盡光明”

     우리의 천손문화는 사람이 하늘의 한 부분으로, 하늘의 아들이며, 하늘의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늘의 아들인 만큼 하늘의 뜻에 맞추어 생각하고 생활하며, 하늘의 뜻에 맞는 일을 하는 것으로 그 본분을 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환인, 환웅, 단군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독자성의 표상이고 하늘과 직결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국가와 민족의 신성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나 문화가 다른 국가, 예컨대 중국으로부터 파생 내지 분봉된 것이 아니라 독자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육당 최남선은 《고사통 故事通》 제1장 조선의 여명에서

     “밝은 백성(白民)은 하늘을 신계(神界)로 알고 태양을 천주(天主)로 숭배하고 대산(大山)을 인간과 천상(天上)과의 교통로로 생각하고 천주(天主)는 하계(下界)를 감시하다가 필요할 때에는 그 아드님을 강림(降臨)시키는 것을 믿는 백성이었다.

     동(東)으로 전진하는 동안에 여러 곳에 천산(天山) 또는 신산(神山)을 정하고 한참씩 머무르다가 마지막 새벽에 태양(太陽)을 맞이하는 곳에 있는 거룩한 대산(大山)에 이르러 천주(天主)의 신도(神都)가 여기 있다고 하고서 그 주변에 안주할 땅을 이룩하고 여기 저기 ‘불’이란 것을 만들었다.

     ‘불’은 한편으로 ‘부유’ 또는 ‘부여’라고도 하야 백성이 많이 모여서 질서 있게 사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었다. ‘불’의 큰 것에는 ‘나라’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얏다.”하였으니 ‘밝음(日, 太陽)’의 숭배를 엿볼 수 있다.” 고 하였다

    외세의 각축에 대항하는 한민족의 구심점으로 민족의 시조로서의 단군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하여 대종교(大倧敎)와 같은 종교로 발전하였다. 몽골침략 이후 7백여 년간 단절되었던 단군교가 1910년 8월 5일 나철이 대종교로 교명을 개칭하면서 국난극복의 핵심으로 등장하였다.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은 마땅히 가져야 할 민족의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라는 망하였으나 민족에게만은 진실한 의식을 배양시켜 민족부흥과 국가재건의 원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고 천명한 나철이 단군교를 대종교로 명명한 것은 단군이전에 개천입도의 조화, 교화, 치화의 삼신으로 환인, 환웅, 단군을 두루 상징하는 의미로 ‘대종’을 세우고자 함이었다.

     이어서 ‘대종’의 의미를 날을 중광절이라 한 것은 단군신앙의 부활을 뜻하였다. ‘중광’(重光:거듭 빛남)이란 국교(國敎)의 계승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렇게 민족정신의 구심점으로 부각된 단군은 대일 항쟁기 동안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로 큰 역할을 하였다. 대종교가 중광을 계기로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강하게 표명하면서 일제의 가혹한 통제와 탄압이 따르게 되었다. 일제는 대종교를 항일구국운동의 비밀결사체로 인식하면서 치안경계 대상으로 삼아 심하게 탄압했다.

     “오호라! 4천년을 전해 내려오던 대교대도가 말없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한 가닥도 남김없이 잊고 말 지경에 다달았음에 오늘날 본교의 이름조차도 기억하는 자 없음이 수삼백년에 이르게 되니 유교와 불교의 흘러듬에 따라 인심의 습속과 취향이 변해 버렸음이 이와 같도다!

     비록 그러하지만 돌 밑에 깔린 죽순이 옆으로 빗겨 나오고, 불탄 끄트머리에 남은 전각이 홀로 서서 백겁을 겪되 능히 갈아 없애 버리지는 못하는 것이고, 수없이 많은 사마(邪魔)들이 앞을 가리어 막더라도 오직 지탱하며 지켜 오는 것은[...] 본교는 이에 4천년 우리나라의 고유한 종교라 그 말씀은 비록 잠깐 동안 그쳤더라도 그 이치는 다하지 않았고, 그 행함은 비록 잠시 멈추었더라도 그 도는 스스로 있음으로 하여 천지와 더불어 그 수명을 같이하며 산천과 더불어 그 오램을 한 가지로 하며 인류와 더불어 처음과 끝을 한가지로 하여 이 교가 흥하면 천지가 다시 새로워지고 산천이 다시 빛나며 인류가 번창할 것이고[...]”

     이 「단군교포명서」는 1904년 음력 10월 3일 두일백 등 13인이 백두산에 있는 대숭전(大崇殿)에서 백봉 대종사(大宗師) 와 함께 작성한 것으로 나중에 홍암 나철 선생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 내용은 “오늘은 백두산 대황조 단군성신께서 나라를 처음 여시고 참다운 도를 세우신지 4237년(서기 1904년)이 되는 경절이라.”라는 글로 시작하여, 단군 탄강의 역사, 단군교의 신앙유습, 단군교를 신봉하여야 할 이유 등을 설명하고, 우리 민족은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우리 겨레가 하늘의 자손임을 강조하고, 단군교를 오로지 정성으로 믿고 받들어서 구교의 중광은 물론, 천만 형제자매가 복록을 누리게 되기를 호소하고 있다

     20세기 석학(碩學)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89~1975)는 저서 《역사의 한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지구상에 존재했던 세계 문명을 30개 군으로 구분했다. 이 중 충분히 성장한 문명이 21개였고 탄생은 하였으나 성숙하지 못한 문명이 5개, 완전히 탄생하지 못한 문명이 4개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충분히 성장한 문명 21개도 문명의 세대론을 주장하여 부(父)자(子)孫(손)의 삼대(三代)로 이어져 7개의 문명이 현재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7개의 문명을 유지하는 핵심은 7종류의 종교이며, 종교가 문명을 창조하고 유지 발전시킨 장본인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식생활을 돌아보면 우리는 환웅천왕께서 신시에서 곰족과 범족을 일깨우던 가르침대로 여전히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살고 있다. 식생활면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단군의 역사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 4천년 이상된 고유한 가르침인 천손문화, 신인합일사상이 우리 문화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날, 우리는 인류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의 정신문명을 선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참고 자료>

     1. 동북아시아 신화 속에서 본 한국 신화의 정체성(서대석 교수 서울대)

     2. 민족정체성 확립에 이바지한 건국 신화의 기능(서영대 교수 인하대)

     3. 홍암 나철의 역사적 위상(김호일 교수 중앙대)

     4. 단군세기(행촌 이암)

     5.  단군교 포명서에 나타나는 역사인식에 대한 검토(사단법인 국학원/사단법인 국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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