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천안삼거리 지나자 "여기도 영남루가 있네"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5.04 12:42

                                                                       천안삼거리 지나자 "여기도 영남루가 있네"

         

    오늘은 천안 비토리의 소갈현에서 천안삼거리를 거쳐 차령으로 향하는 길을 걷습니다. 그 노정을 여암의 <도로고>에는 비토리-천안-삼거리-금계역(금제역)-덕평(덕평점)으로 소개하였고, <여지도서> 천안현 도로에는 위와 같이 설정된 노정을 대로라 했습니다. <대동지지>를 통해 거리를 정확히 살피면 비토리에서 천안 10리, 천안삼거리 5리, 김제역 15리, 덕평점 10리니 오늘도 40리 길을 걷습니다.

                                                                       ◇천안에 들다

    지난 여정에서 넘었던 성황당고개는 달리 소갈현(小葛峴) 또는 갈원현(葛院峴)이라고도 했는데, 그 즈음에 있던 가을원(加乙院)에서 비롯한 이름입니다. 고개를 내려서니 부대중앙길과 하야들길이 만나는 삼거리 모퉁이에 빗돌 2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는 천안 고을의 수령을 지낸 김아무개의 선정비이고, 다른 하나는 1938년에 세운 김봉서의 시혜기념비입니다. 빗돌을 지나 옛길은 1번 국도의 서쪽으로 열렸는데, 지금도 경부선 철도와 만나는 곳까지는 선형이 잘 남아 있습니다. 예서 술막이 있던 신막으로 이르는 길은 택지가 조성되면서 사라졌고, 1번 국도와 만나 남쪽으로 500미터 정도를 더 걸으면 신은역(新恩驛)이 있던 말거리에 듭니다. 신은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관아의 북쪽 10리에 있다고 했고, <여지도서>에는 북쪽 7리라고 나옵니다. 역이 있던 곳은 옛 북일면의 역리입니다.

    이곳을 지나 1리를 더 가면 풍천원(楓川院)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취조차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원집의 이름은 그 남쪽으로 흐르던 풍천에서 비롯한 것이며, 지금의 안서천저수지 서남쪽으로 흐르는 천안천을 이릅니다. 예전에는 풍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방죽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남쪽에 남은 방죽안이란 이름이 그 자취입니다. 이곳에서 천안종합터미널을 지나면 옛 천안의 중심지를 일러주는 지명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성황동 문성동 사직동 원성동 등인데, 지금의 중앙초등학교에 있던 동헌을 중심으로 그 바깥에 둔 향교 성황사 사직단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옛길은 천안터미널 오거리에서 천안역으로 이르는 길을 따라 동헌이 있던 중앙초등학교 남서쪽으로 열렸습니다. 이리로 옛길을 따라 걸으면, 천안의 중심지인 남산중앙시장을 지나게 됩니다. 바로 이 시장으로 통영별로가 지났으며 그 남쪽에는 천안의 진산인 남산(南山)이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천안삼거리

    남산을 뒤로 하고 내를 건너면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에 신점(新店)이라 적힌 신원거리에 듭니다. 아마 이즈음에 옛 천안 고을 남쪽 2리에 있었다고 전하는 남원(南院)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때부터 운영되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강호문(康好文)의 남원루기에는 고려 말엽 왜구에게 불타버린 것을 임군석(任君碩)이 우왕 원년(1375)에 낙성하였다고 전합니다. 예서 옛길은 남동쪽으로 곧게 열렸지만 우리는 경관이 좋은 천안천 지류의 둑길을 따라 걷습니다.

    냇가를 따라 난 길이 다시 옛길과 만나는 즈음에 최근에 세운 천안삼거리초등학교가 나오고 그 다음 골짜기에는 산자락에 기댄 천안박물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바로 이즈음이 천안삼거리인데, 이곳에서 남북을 잇는 대로가 동쪽으로 병천-청주-문경을 거쳐 영남으로 이르는 길과 갈라지는 결절지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길을 오가는 이들이 몰리게 되면서 자연스레 원집과 주막 등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을 남쪽 6리에 있다고 한 삼기원(三岐院) 또한 이런 배경에 따라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즈음에서 국도 1호선과 21호선이 교차하고 있어 여전히 교통 요충지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능수버들 이야기

    지금 이곳에는 삼거리공원을 조성하여 옛적 정서를 되새겨 볼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공원의 한가운데를 수변공원으로 꾸몄는데, 그것은 예전에 이곳에 두었다는 삼기제언(三岐堤堰)의 자취라 여겨집니다. 이 못에 대해서 <여지도서>에 둘레가 1157자이고 깊이는 한 장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이곳 천안삼거리에 둔 못은 자연 습지를 정비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에 따라 수생식물인 버들이 자라면서 능수버들 전설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사전>에는 "식물에서 '능수'는 가지가 축 처진 상태를 말한다. 갈잎 큰 키 능수버들도 이 나무 가지가 축 처져서 생긴 이름이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곳 천안삼거리 능수버들 전설에 나오는 능소(綾紹)는 능수에 가탁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에 얽힌 전설은 여러 책에 조금씩 다른 내용이 전해오지만 그 줄거리는 대동소이합니다.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에는 "옛날 어린 딸 능소를 키우던 홀아비가 북방으로 수자리를 가게 되자 이곳 천안삼거리 주막집에 딸을 맡겨놓고 떠났다. 그가 딸과 재회를 약속하면서 버들가지를 꺾어 연못가에 심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삼거리 능수버들이라고 한다. 그가 임기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게 되자, 딸과 상봉하여 잔치를 베풀면서 흥타령을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삼거리 주막에 능소라는 착하고 아름다운 기생이 있었다. 어느 날 전라도 고부 땅에 사는 박현수라는 선비가 한양 과거 길에 삼거리에서 유숙하다가 능소를 만나 서로 백년가약을 약속하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간 박현수는 장원급제하여 삼남지방 암행어사를 제수 받고 내려오게 되자 이곳에서 능소와 감격적인 해후를 하고 큰 잔치를 베풀어 온 마을이 흥타령을 부르며 즐거워하였다"고 하며, 그 흥타령이 전국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공원 안에는 근처 마점사(馬占寺) 터에서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과 영남루(永南樓)라는 누각이 있습니다. 영남루는 천안 삼거리 공원 안의 호숫가에 세워져 있는데, 원래는 관아의 서쪽에 있던 화축관(華祝館)의 문루였다고 합니다.

                                                
천안삼거리공원 호수에 옮겨 세운 영남루. /최헌섭

                                                                         ◇도리티고개

     삼거리에서 선문대학교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도리티를 넘어 목천읍에 듭니다. 지금 이곳은 선문대학교 맞은편에 운동장 건립을 위한 대규모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옛길의 정취를 느끼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해동지도> 천안현 지도에는 천안삼거리에서 갈라져 도리치(道里峙)를 넘어 목천으로 이르는 길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고개는 <해동지도> 목천현 지도에는 회치(回峙)라 나와 있어, 고개의 이름은 '돌다'의 명사형인 '돌이'를 각각 음차 및 훈차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에 도리치 고루(古壘)가 있다고 전합니다만, 길에서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 고개를 내려서면 옛 금제역(金蹄驛)이 있던 대곡리 역말이 멀지 않습니다. 역이 있던 마을 들머리에는 1937년 봄에 궁리(宮里) 주민들이 갈형으로 만들어 세운 '김교현(金敎炫) 자선비'가 이리로 옛길이 지났음을 일러 줍니다. 역의 이름은 <도로고>에는 금계역(金溪驛)이라 나오는데, 그 앞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제역(金蹄驛)이라 했고 그 위치는 고을 남쪽 23리에 있다고 나옵니다.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교통의 결절지로 기능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역이 있던 대곡리에서 소정리 사이에는 옛길과 1·23번 국도, 경부선철도와 경부고속철도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지금은 교통량이 크게 준 경부선 소정역 앞뜰에 마련해 둔 휴게소에서 맥주 한 캔으로 갈증을 달래며 오늘 남은 여정을 가늠해 봅니다. 이곳에서 덕평점까지는 10리 길이 남았으니 해가 저물기 전에 목적지에 닿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예서 옛길은 경부선 철도의 동쪽으로 열려 있고, 소정면과 전의면의 경계에서 곡교천을 건너 23번 국도와 같은 선형을 따라 덕평으로 이릅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피해 운강리 앞들을 가로질러 덕평참이 있던 행정리에 들어 오늘 일정을 마감합니다.

                                                                                          <참고문헌>

    1. 최헌섭,  "천안삼거리 지나자 "여기도 영남루가 있네", 경남도민일보, 2013.7.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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