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中·北, 무력 통한 정권욕 지금도 여전
자유 침해하는 군사행위, 대한민국의 적이다
국민들은 6·25전쟁의 역사적 진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어떤 나라도 6·25가 한국이나 미군의 북침이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미국은 침략국이고 공산 러시아가 해방군이었다고 발언하는 지도층을 볼 때는 국민들의 안보의식까지 걱정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출범은 1948년 8월 15일이었다. 그러나 북의 공산정권은 1945년 10월 3일,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김성주가 김일성 장군으로 등단할 때부터 출발했다. 소련군정이 북한국민이 고대하는 김일성 장군을 만들어 지도자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 후 1년 정도가 지난 후에는 김일성이 정치 주도권을 행사했다. 북의 국정이 정착되면서부터 공산정권은 남침의 필연성과 그 기회를 탐색하고 있었다. 국제공산정권이 가장 먼저 점령해야 할 지역이 동유럽지역과 한반도 남반부였기 때문이다.
전쟁 준비를 갖춘 북한은 대한민국의 전쟁 무기를 점검하기 위해 국지전을 실험해 보았다. 우리 군대는 그 저의도 모르고 반격한 후에는 전쟁이 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는 철없는 얘기를 퍼뜨렸다. 그러면서 북에서는 조만식을 남조선으로 보낼 테니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공산당 간부 이주하 김삼룡과 교환하자는 평화 제안을 조작하기도 했다.
북의 전술이 얼마나 치밀했고 우리 정부가 어느 정도 무관심했는지를 자성해 보는 지도자까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6·25전쟁은 일요일 새벽에 발발했다. 그때 우리 국군은 어떠했는가. 용산 국방부 남쪽에 그 당시로서는 분에 넘치는 규모의 육군회관을 건축하고 그 낙성식 잔치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전국 주요 부대 지휘관들이 그 축하연에 초대됐고 부하장병들에게는 주말휴가를 주었다. 북한의 탱크부대가 쳐들어올 때 군 장성들은 육군회관에서 술을 마시며 잔치에 취해 있었다. 휴가를 받은 군인들은 서울과 큰 도시로 나와 즐기고 있었다. 그 당시 서울에 살던 국민들은 군 장병들에게 즉각 부대로 복귀하라는 거리의 방송을 듣고 놀랐다. 잔치에 취해 있던 지휘관들은 서둘러 전선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이틀 후부터 3개월 동안 서울에서 벌어진 혼란과 비극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일들을 왜 회상해 보는가.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때도 그랬고, 스탈린이 소련연방국을 건설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폴란드의 지성인 3만 명을 나치 독일이 학살했다고 선전했으나 그 사건의 장본인이 스탈린 자신이었음이 드러났을 정도다. 아직도 우리 주변국에는 제2의 히틀러나 스탈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산주의 이념은 러시아에서도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러나 무력에 의한 정권욕의 패권주의는 러시아, 중국, 북한에 지금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이런 역사적 현실과 북한의 핵무기 전쟁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안보와 자유를 유지해야 한다. 일본은 러시아, 중국, 북한을 동격의 적대국으로 본다. 적어도 중국이 민주국가로 성장할 때까지는 미국을 위시한 자유선진국들과 정치 군사의 공동정책을 지속하는 입장이다. 인권을 위한 평화와 국민의 자유는 인류의 절대조건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세계인과 러시아 안에서까지 반전운동이 증대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김정은 정권과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동안에 북한의 핵무장을 증강시켰다는 것이 국제여론이다.
자유와 평화를 침해하는 정치·군사행위는 인류의 절대가치를 파괴하는 죄악이다. 인류에 대한 범죄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적이다. 새로운 정부는 유엔과 세계 역사의 평화를 위한 대열에서 최선의 국방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와 정파의 문제를 넘어 국민의 절대적 참여가 뒤따를 수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1. 김형석, "새 정부는 자유와 평화 대열에서 국방정책 수립해야", 동아일보, 2022.3.10일자. A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