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의사 독립운동 자료 울산박물관 기증
(울산=연합뉴스)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상진(1884∼1921) 의사의 증손자 박중훈(57)씨가 박 의사 관련자료 수 점을 울산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사진은 박 의사가 법원에 낸 청구서.
28일 울산시에 따르면 박씨는 박 의사의 독립운동 활동상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 청구서 1점과 재판증인 청원서 1점, 사진 등 수 점을 내년 6월 개관할 울산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법치(法治)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돕고자 판사가 됐지만 나라를 잃자 주저없이 판사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박 의사도 그들 중 한 명이다.
1884년 울산에서 태어나 유교 전통 속에서 자란 박 의사는 양정의숙(養正義塾) 에서 법률학을 공부한 뒤 판사 시험에 합격해 1910년 평양법원에 발령받았다.
하지만 경술국치를 지켜본 뒤 "일제의 식민지 관리가 되지 않겠다"며 스스로 법복을 벗어던졌다.
망국의 설움을 안고 중국 만주로 떠난 박 의사는 1912년 귀국해 대구에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라는 곡물상회를 차리고서 이를 거점으로 비밀결사 활동을 벌였다.
그러다 계몽운동가, 의병출신 인사들을 규합해 1915년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초대 총사령에 추대됐으며, 이후 군자금 마련과 친일 부호 처단 등 본격적인 의열투쟁을 전개했다.
박 의사는 1917년 만주에서 무기를 들여오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며, 1918년 악덕 지주ㆍ관리로 지탄받던 경북 칠곡의 부호와 충남 아산군 관리를 살해한 것을 계기로 조직이 발각되면서 체포돼 1921년 8월13일 대구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
박 의사와 대한광복회는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통치가 자행되던 1910년대 억눌렸던 민족의 기개를 떨쳐 용기를 줬으며, 1920년대 활발한 의열투쟁의 도화선이 됐다.
정부는 박 의사의 공로를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고등법원판결록은 박 의사 외에도 함께 대한광복회 활동을 하다 체포돼 순국한 채기중 선생, 동경 조선유학생들이 결성한 조선청년독립단 사건, 3.1운동에 참가해 옥고를 치른 많은 지식인과 민초들의 울분과 기개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법원도서관은 1909년부터 1943년 사이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등에서 선고된 민ㆍ형사 판결을 수록한 이 판결집을 2004년부터 번역ㆍ출간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0권을 펴냈다.
<참고문헌> 1. 이응, "판사직 내던지고 독립투사 변신 박상진 의사", 연합뉴스, 2010.8.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