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티베트·위구르 갈등
최근 중국 정부가 중국 내 소수민족인 티베트인이 세운 30m 불상이 지나치게 높다며 강제 철거했어요.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비판이 나왔죠.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은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인 논란이 되고 있어요. 최근 미국은 중국 내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에서 만들어진 모든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어요. 이곳의 생산품이 위구르족의 강제 노동으로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미국은 중국 소수민족의 인권 문제를 이유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거부)을 제안하기도 했죠. 하지만 중국 정부는 여전히 소수민족을 억누르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하며 소수민족 강제 통합
중국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과 나머지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어요. 소수민족은 중국 14억 인구 중 약 1억명을 차지해요. 이 중 상당수는 18세기부터 청나라 지배를 받다가 1912년 청나라의 멸망으로 독립했어요. 하지만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청나라 때 영토를 되찾겠다며 소수민족의 강제 통합을 시도했죠. 중국은 소수민족이 사는 국경 지역을 편입하면서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취지로 5개 자치구를 뒀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광시 좡족 자치구' '닝샤 후이족 자치구' 등이에요. 하지만 소수민족들의 불만이 쌓여갔어요. 한족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소수민족을 차별 대우한다는 것이었죠. 소수민족 중에서도 티베트족과 위구르족의 반발이 가장 컸어요.
티베트족의 불만은 종교 갈등이 큰 원인이에요. 중국 정부가 티베트 불교를 탄압해 민족성을 억압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티베트는 당나라 때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토착 종교와 합쳐지며 티베트 불교가 됐죠. 제정일치 사회였던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라고 불리는 종교 수장이 정치 지도자도 겸하는데요.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관음(觀音·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생각할 정도로 종교적 신앙심이 깊어요. 티베트는 청나라가 멸망한 후 비슷한 처지였던 외몽골과 1913년 조약을 체결하고 서로 협력해 독립하려 했어요. 그러자 1950년 중국은 티베트를 침공하고 이듬해 티베트의 외교·군사권을 박탈했죠. 이후 중국군을 티베트에 주둔시키는 대신 종교적 자유와 달라이 라마 지위를 존속시키겠다는 협정을 체결했어요. 하지만 중국 정부는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족 승려들을 체포하고 사찰을 파괴했어요.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기도 했죠. 이때 제14대 달라이 라마와 많은 티베트인이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인도로 가 망명정부를 세웠어요. 중국군 주둔 이후 1990년까지 티베트인 130만명이 죽었다고 해요. 티베트족은 아직도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를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한족 이주시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사는 위구르인들은 10세기쯤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어요. 지금도 이슬람 세력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시도하고 있죠. 위구르족은 중국 중앙정부에 뿌리 깊은 증오심을 갖고 있어요. 1750년대 청나라 건륭제 때 중국에 편입된 후부터 위구르족의 저항은 시작됩니다. 이들은 1933년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지만 중국은 1949년 이 지역을 강제로 병합했어요. 1996년에는 중국 경찰이 위구르족 분리주의자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해 한 번에 수만명이 구속되기도 했대요. 위구르족의 저항은 계속됐어요. 우루무치(烏魯木齊)와 베이징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죠. 분리주의자들은 이슬람 국가인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다시 세우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위구르인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독립운동가가 있는데요. 성공한 여성 사업가이자 독립운동가인 라비야 카디르(1947~)입니다. 위구르인들에게는 '달라이 라마'와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그는 한때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민대표를 맡았어요.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의 성공 사례로 그를 치켜세우며 이용하려 했죠. 하지만 그는 자치구의 상황과 위구르족이 겪는 어려움을 알리려고 노력했어요. 1997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위구르족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중국군을 보고 본격적으로 독립 투사의 길을 걸었죠. 이후 그는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았어요. 1999년 미국으로 망명한 남편에게 신장 자치구 관련 신문 기사를 보냈다가 2000년 '국가 기밀 유출'이라는 죄목으로 8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5년 미 국무부 장관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보석으로 석방된 후 미국으로 망명했어요. 2006년에는 위구르족의 독립을 지지하는 세계위구르회의(WUC)의 의장으로 선출됐어요. 같은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기도 했어요.
네이멍구 자치구는 다른 소수민족 자치구보다 비교적 중국 정부의 지배에 수용적이었어요. 하지만 한족에게 생활 기반을 빼앗기고 있다는 몽골족의 불만이 커지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죠. 한족이 초원 환경을 훼손하고 석탄을 너무 심하게 캐간다는 거예요. 2011년에는 이에 항의하던 몽골족을 한족 트럭 운전사가 치어 숨지게 해 큰 시위가 일었어요. 2020년 중국 정부는 네이멍구 자치구의 교육 언어를 몽골어가 아닌 중국 표준어 '푸퉁화'(普通話)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중국어와 역사 등 일부 과목의 교재를 통일된 중국어 교재로 바꾸고 수업도 푸퉁화로 진행하도록 한 거예요. 소수민족의 언어·문자를 없애고, 언어를 통일시켜 중화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겠다는 거지요. 그러자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반대 시위를 했어요. 그간 소수민족은 자신들의 문자로 교과서를 만들며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중국이 이마저 없애려고 한다는 거예요. 주민들은 "몽골어는 몽골족의 정체성에 마지막 남은 상징"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어요.
지정학적 요충지인 소수민족 자치구들
중국이 소수민족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특히 독립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수민족이 중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 정도지만, 분포 면적은 약 64%에 달할 정도로 넓어요. 특히 자치구 대부분은 국경에 있기 때문에 정치·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해요. 예컨대 티베트 자치구는 인도와 네팔·미얀마 등의 국가와 맞닿아 있죠. 그래서 개방과 무역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죠.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앙아시아와 이어지는 지정학적 요충지랍니다.
또 자치구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아 지하자원의 보고(寶庫)이기도 해요. 티베트 자치구는 철광석·석탄·우라늄 등의 자원이 풍부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석유와 석탄·천연가스가 풍부하죠. 소수민족 일부의 독립을 승인했을 때 다른 소수민족의 독립 의식을 고취할 우려도 있고요. 소득 불균형 등 해결할 일이 산더미인 중국 정부 입장에서 소수민족의 저항은 체제 안정을 위협하는 골칫거리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