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십이지 동물
십이지 동물
- ▲ ①경북 경주시 성덕왕릉 봉분 주변에 세워져 있는 십이지신상의 모습이에요. 왕릉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한다는 뜻으로 십이지신상에 갑옷을 입혔어요. ②경주에 있는 김유신묘 호석(능이나 묘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에는 십이지신상의 부조<흰색 원>가 새겨져 있어요. ③성덕왕릉 호석 주변에서 발견된 원숭이상. /문화재청·국립경주박물관
올해 임인년(壬寅年)은 호랑이띠 해예요. 한국인은 저마다 자신의 띠를 가지고 태어나지요.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 '띠'에 해당하는 열두 동물을 '십이지'(十二支)라고 불러요. 태어난 아이의 운명을 띠 동물과 연관시켜 미래를 예견해 보기도 하고,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을 점쳐 보기도 하죠.
갑골문에 쓰여 있는 십이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십간(十干)과 십이지를 조합해 날짜를 매기는 독특한 문화가 있어요. 시간과 방위, 계절, 색깔 등을 구분하는 데 쓰기도 하고요. 십간은 하늘의 기운이나 태양의 운행 질서를 뜻하는데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등 열 가지로 나뉘어요. 열 손가락을 가진 인간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셈법인 10진법은 일찍부터 널리 활용됐어요. 십이지의 숫자 '12'는 1년에 약 12번 달이 차고 기우는 데에서 비롯됐대요.
십간과 십이지를 활용한 간지(干支)는 중국 상나라 갑골문(甲骨文)에 처음 등장해요. 갑골문은 거북의 등딱지나 짐승의 뼈에 새긴 상형문자를 의미해요. 점을 치거나 제사를 드린 날짜를 '갑자(甲子)' '을축(乙丑)'처럼 적은 것이 가장 오래됐대요.
한나라 때는 십이지를 시간·방위 개념과 연결해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십이지를 동물과 연결해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당시 우주나 인간 사회의 현상 등을 음양과 오행의 작용으로 설명하는 '음양오행설'이 유행하면서 추상적인 문자를 쉽게 이해하려고 동물을 활용한 거죠. 지금처럼 자(子)를 쥐로, 축(丑)을 소로, 인(寅)을 호랑이로 연결해 표현하기 시작한 건 기원후 2세기 무렵부터예요.
십이지 관념은 동서양에 폭넓게 퍼져 있어요. 십이지가 맨 처음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답니다. 십이지에 해당하는 동물은 나라마다 조금씩 달랐어요. 예컨대 한자 문화권인 베트남에서는 토끼(卯) 대신 고양이(猫)를 띠로 사용해요. 두 글자의 한자음이 서로 비슷하기도 하고, 베트남에서 토끼보다 고양이를 훨씬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베트남은 쥐, 물소, 호랑이, 고양이, 용, 뱀, 말, 염소, 원숭이, 닭, 개, 돼지 순으로 십이지 띠를 세요. 올해는 호랑이띠로 우리나라와 같아요. 인도는 호랑이 대신 사자를, 닭 대신 공작새를 배치해요.
그리스와 이집트 등에서도 십이지를 활용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해나 띠를 의미하지는 않아요. 천문 관측을 하며 방위를 구분하거나 영웅의 지배 영역을 빗댈 때 십이지를 썼어요. 십이지 동물 역시 우리나라와 다른데요. 바빌로니아나 그리스에서는 악어나 홍학 같은 동물이 등장하죠. 이집트는 산양·당나귀 등을 쓰고요. 각국의 환경에 따라 십이지를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랐던 거예요.
열두 동물의 배열 순서
열두 동물의 순서는 어떻게 정해졌을까요? 뚜렷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요. 그래서 설화나 민담을 참고해야 하죠. 절대자가 동물들을 불러 모았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열두 띠 동물의 순서를 정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소 등에 올라탄 쥐가 소보다 먼저 도착해 십이지 중 첫째가 됐다는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거예요.
고대 중국인들이 시간을 표기하면서 시간마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물로 순서를 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예컨대 자시(오후 11시~오전 1시)는 쥐가 가장 열심히 뛰어다니는 시간이고, 축시(오전 1~3시)는 소가 저녁에 먹은 여물을 되새김질하며 아침 밭갈이를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거예요. 인시(오전 3~5시)는 하루 중 호랑이가 가장 흉악할 때고요.
동물의 발가락 수를 기준으로 배열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쥐는 앞발과 뒷발의 발가락 수가 달라요. 앞발이 짝수인 네 개고, 뒷발은 홀수인 다섯 개라 음양을 조화롭게 가지고 있어 가장 앞에 자리했다는 설이 있어요. 나머지 동물들은 앞발과 뒷발의 발가락 개수가 같은데, 쥐 다음에는 발가락 수가 홀수인 동물과 짝수인 동물을 서로 교차하며 배열했대요. 소(네 개), 호랑이(다섯 개), 토끼(두 개), 용(다섯 개), 뱀(없음), 말(한 개), 양(네 개), 원숭이(다섯 개), 닭(네 개), 개(다섯 개), 돼지(네 개)의 순서라는 거죠.
통일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상
열두 동물 얼굴에 사람의 몸을 가진 십이지신의 모습은 당나라 때 본격적으로 나타나요. '수두인신(獸頭人身)'으로도 부르죠. 하지만 당나라에서 만든 십이지신상은 대부분 30㎝ 이하로 크기가 작고, 무덤 내부에 넣는 부장품으로 사용되다가 자취를 감췄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고려~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왕비 무덤이나 불상, 석탑 장식으로 활용했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 만들어진 십이지신상은 8~9세기 통일신라 시대 왕릉에 있어요. 성덕왕릉이나 원성왕릉 등이죠. 당시 무덤 봉분의 유실을 막고자 '호석(護石)'으로 가장자리를 둘렀는데요. 이 돌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거예요. 십이지신상을 무덤에 썼던 이유는 십이지가 시간과 방위를 관장하며 시간의 영속성을 상징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중국이나 일본은 십이지신상을 만들어 무덤 내부에 묻는 데 반해, 통일신라의 왕릉에서는 일부러 무덤 밖에 배치한 거죠. 십이지신상을 무덤 밖으로 끌어내 갑옷을 입히거나 손에 무기를 들게 해서 왕릉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한 거예요. 석탑의 몸돌에 갑옷을 입은 사천왕 같은 각종 신장상을 배치해서 부처나 사리를 수호하는 임무를 부여한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건축물에도 십이지를 응용했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입니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원원사지(遠願寺址) 동서 석탑의 기단에는 동물 머리에 사람 모습을 한 십이지신상이 장식돼 있어요. 비천(飛天)이나 사천왕상 등에 보이는 천의(天衣·보살이나 천인이 입는 얇은 옷)의 흩날림이 표현돼 있고, 연꽃무늬로 장식된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에요.
통일신라 때 최초의 십이지신상은 중국의 것을 빌려왔어요. 하지만 왕릉의 조각과 불교 조각이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점차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모습과 문화를 만들어 냈어요. 고려·조선 시대의 왕릉에도 십이지신상이 쓰였고, 회화·공예품·일상적인 생활 도구에 이르기까지 널리 성행했어요. 그러니 십이지나 띠는 한국인의 경험과 지혜가 어우러진 사고 형태이고, 생활 철학의 관념 체계라고 할 수 있답니다.
<참고문헌>
1. 이병호, "내년 한, 중, 일은 토끼띠...베트남은 고양이띠래요", 조선일보, 2022.1.13일자. A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