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1세대 건축가 김중업 탄생 100주년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2.05.27 16:40
   
                                                         1세대 건축가 김중업 탄생 100주년

건축가 김중업이 자신이 설계한 서강대 본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1세대, 건축을 예술로 격상시킨 건축가,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 시인을 꿈꿨던 건축가.

건축가 김중업(1922~1988년)을 설명하는 여러 수식어다. 김중업은 서구의 근대 건축 양식을 도입하면서도 건축물에 한국적 정체성을 담고자 했다. 그가 설계한 200여 점의 건축물 중 일부는 어딘가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한국 현대 건축의 명맥을 잇고 있다. 김중업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한국 건축사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봤다.

경기 안양의 김중업건축박물관 모습. 김중업이 설계한 것으로, 유유산업의 옛 공장 건물이다. 송옥진 기자

김중업은 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건설이 아닌 건축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던 1세대 한국 현대 건축가다. 정인하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김중업은 엄청난 도시 팽창이 이루어졌던 시기, 개발 연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라며 "삼일빌딩, 부산대 본관, 서강대 본관, 유유산업(현 김중업건축박물관) 등이 모더니즘 계열의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김중업은 이외에도 갱생보호회관(현 안국빌딩), 중소기업은행 본점(현 IBK 기업은행 본점) 등 빌딩 설계에도 참여하며 지금의 서울 풍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삼일빌딩. 1970년 완공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31층)이었다.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산부인과 의원의 전경. 현재는 아리움이란 회사의 사옥으로 쓰인다.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

그는 다수 작품에서 기존 한국 건축물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조형미를 추구했다. 조현정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천편일률적인 상자형 건물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김중업은 유기적인 곡선에 바탕을 둔, 조형성이 강조된 작품을 선보였다"며 "기술력, 자본력이 부족했던 1960~1970년대 지어진 것을 고려하면 이런 건물이 갖는 가치나 위상은 독보적"이라고 말했다. 서산부인과 의원(현 아리움 사옥), 태양의 집(현 썬프라자), 제주대 옛 용담캠퍼스 본관이 대표적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태양의 집 전경.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옛 태양의 집, 현 썬프라자의 모습. 지금도 구조의 큰 변경 없이 상가 건물로 사용된다. 송옥진 기자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김중업의 걸작은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건물 4개가 경사진 대지에 배치돼 있다. 특히 기와 지붕을 연상하게 하는 대사 집무동 건물 지붕은 현대적 재료로 한국의 전통미를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중업은 생전 이런 작품 경향에 대해 "현대라는 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예부터 이어오는 연속된 시간의 한 과정을 지칭하는 것이기에 전통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맺어지고 전통이 새로운 각도에서 계승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최원준 숭실대 건축학부 교수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여러 채로 구성된 전통적 건축 방식을 반영했고, 그러면서 내부 공간만이 아닌 외부와의 연계를 고려한 작품"이라며 "건물 하나하나의 조형도 뛰어나지만 정문에서부터 대사관저 옥상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공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건축적 산책'을 잘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대사 집무동.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


지난달 서울시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된 서울 종로구의 '사직동 주택'. 치과의사 박시우의 의뢰로 건축가 김중업이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1983년 설계했다. 당초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매입해 철거 후 신축할 계획이었으나 주택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헐지 않고 보존하기로 했다. 서울시 제공

한국에서 건축물의 수명은 보통 30년 안팎이다. 이 시기를 전후로 철거되거나 리노베이션을 통해 존치시킬지 갈림길에 선다. 김중업을 필두로 한 1세대 한국 현대 건축가가 설계한 많은 건축물이 이 기로에 서 있다. 지금 건축계의 최대 화두인 남산의 힐튼 호텔 재개발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건축가 김종성이 설계한 힐튼 호텔은 그저 상업 공간이 아닌 한국 현대 건축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막을 방법은 없다.

정인하 교수는 "건축에서 시간은 강력한 비평자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가치를 평가받을 만한 소수를 제외하고 파괴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다만, 파괴되더라도 설계 당시 건축가의 생각을 잘 읽을 수 있는 아카이브나 도면 등을 통해 후대에 재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남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현정 교수는 "미국 시카고는 건축물 보호를 위해 시에 부서를 따로 두고 세제 혜택, 관광 상품 개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며 "법이나 제도로 건축물 보존을 강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건물이 단순히 건축주의 재산이 아니라 도시 환경의 일부이자 중요한 자산이라는 인식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참고문헌>
   1. 송옥진, "건축적 산책 선사한 김중업...골목에 남은 거장의 숨결", 한국일보, 2022.5.27일자.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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