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때 불후의 미완성 교향곡 남긴 슈베르트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원문은 좀 다르지만 예술의 가치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문장으로 많이 인용되죠. 위대한 예술가가 남긴 유산(遺産)의 생명력은 그 사람 인생보다 훨씬 길고 강하다는 거죠.
예술의 길은 끝이 없기에, 예술가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더 높은 경지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요. 음악가들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업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성작’을 남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미완성’이지만 완성된 작품만큼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게 적지 않아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0번
지난달 12일과 13일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와 서울 시립교향악단은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10번을 연주했습니다. 이 작품은 말러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는 첫 번째 악장만 쓰고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이날은 모두 다섯 악장으로 연주됐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말러의 아내 알마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이 교향곡을 완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인 에른스트 크셰넥에게 부탁해 1악장을 다듬고 3악장을 완성시키게 했죠. 이어 그는 다른 작곡가들에게 전곡의 완성을 부탁했지만 당시에는 모두 거절당했어요.
세월이 지나 1960년 영국 음악학자 데릭 쿡은 말러가 남긴 멜로디와 악기 구성을 바탕으로 이 교향곡 전체를 완성했고, 마침내 모두 다섯 악장으로 만든 교향곡 10번이 1964년 8월에 런던에서 초연됐어요. 말러가 직접 쓴 1악장을 시작으로 두 개의 ‘스케르초’(템포가 빠른 세 박자의 강렬한 춤곡) 악장이 포함된 이 곡은 말러의 오리지널 작품만을 인정하는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지만, 오늘날 꽤 많이 연주되는 완성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성 직전 세상 떠난 버르토크
작곡가가 마지막 순간까지 완성해보려 애를 썼지만, 완성까지 불과 몇 마디를 앞두고 숨을 거둔 경우도 있어요. 오는 30일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 에플람 바부제가 연주하는 벨러 버르토크(1881~1945)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그런 곡입니다. 헝가리 작곡가 버르토크는 자신의 조국을 포함해 다양한 동유럽 지역 민요와 춤곡을 모으고 이를 연구해 작품에 폭넓게 반영했던 인물이에요.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곡은 버르토크가 1945년 본격적인 작곡에 들어갔어요. 그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유럽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워지자 1940년 미국으로 이주했어요.
원래 이 협주곡은 버르토크가 피아니스트이자 그의 아내였던 디타의 마흔두 번째 생일 선물로 준비한 곡이었는데, 백혈병을 앓던 버르토크는 마지막 악장의 17마디를 완성하지 못하고 1945년 9월 세상을 떠났어요. 미완성으로 남은 부분은 버르토크의 조수였던 티보르 셀리가 맡아 완성했어요. 이 협주곡은 이듬해인 1946년 2월 필라델피아에서 초연된 후 지금까지 버르토크의 협주곡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남아있답니다.
◇초연 때 미완성작 공개하기도
초연 때 미완성작을 그대로 공개한 작품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입니다. 이 곡은 일본(나비 부인), 미국(서부의 아가씨) 등 이탈리아 청중에게는 다소 이색적인 나라를 배경으로 작품을 발표했던 푸치니가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만든 오페라입니다. 자신에게 청혼하러 온 남자들에게 퀴즈를 던져 풀지 못하면 살해하는 냉혹한 중국 공주 투란도트가 주인공이며, 타타르 왕국 왕자 칼라프가 남자 주인공, 칼라프 아버지인 티무르의 시녀 류 등이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푸치니는 18세기 베네치아 극작가였던 카를로 고치가 쓴 이야기 ‘투란도트’에 흥미를 느끼고 1920년 여름부터 열정적으로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정성을 들였기 때문인지 오히려 진전이 늦어졌는데요. 결국 1924년 후두암 판정을 받은 푸치니는 작품 마지막 남녀 주인공의 ‘사랑의 이중창’을 쓰지 못하고 같은 해 11월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 후 작품의 저작권자인 리코르디 출판사는 오페라의 마지막 부분을 푸치니의 밀라노 음악원 후배였던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에게 맡겨 완성하게 했고, 작품은 작곡가 사망 후 2년이 흐른 1926년 4월 25일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습니다. 이날 지휘를 맡은 사람은 푸치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였는데, 그는 3막에 나오는 시녀 류의 죽음 장면까지를 지휘하고 청중을 향해 “푸치니가 작곡한 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퇴장했습니다. 작곡가를 향한 깊은 추모의 뜻을 담은 행동이었죠. 알파노가 푸치니의 뒤를 이어 완성한 작품은 그 다음 날 공개됐습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작품 이름 자체가 ‘미완성 교향곡’으로 불리는 곡도 있어요. 바로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의 미완성 교향곡입니다. 작곡가가 두 악장만 쓴 미완성곡이지만, 슈베르트의 위대한 예술성을 잘 알리고 있는 걸작으로 평가받죠. 이 곡은 그가 25세 때인 1822년 10월에 만들기 시작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작업을 중단했어요. 이듬해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한 음악협회 명예회원으로 선정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1악장과 2악장을 보냈고, 그 후 다른 부분은 완성하지 않은 채 31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작품은 슈베트르가 세상을 떠난 뒤 37년이 지난 1865년에야 지휘자 요한 폰 헤르베크에 의해 빈에서 초연됐습니다. 남겨진 두 악장은 따뜻하고 서정적인 선율과 색채감이 풍부한 화성, 넘쳐흐르는 낭만적인 악상으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고 있어요.
1980년 음악학자 브라이언 뉴볼드가 슈베르트는 30마디 정도 써놨던 3악장을 완성시키고, 이 곡에 슈베르트 다른 작품인 극음악 ‘로자문데’의 한 부분을 엮어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이 완성본은 네빌 매리너 지휘의 음반으로도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못한 상태랍니다.
미완성작들도 작곡가가 예술혼을 불태운 발자취이자 증거입니다. 비록 완성하진 못했지만 그 고뇌가 담겨 있는 작품을 접하면 위대한 인물들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참고문헌>
1. 김주영, "슈베르트는 25세 때 불후의 미완성 교향곡 남겼죠.", 조선일보, 2022.6.20일자. A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