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존경받는 기업인이 많아져야 한다
韓 경제성장 기적, 자유민주주의·교육 덕분
文 이념적 정책에 국민 분열과 경제방향 상실
양질 일자리 창출 기업에 감사하는 사회 돼야
文 이념적 정책에 국민 분열과 경제방향 상실
양질 일자리 창출 기업에 감사하는 사회 돼야
신생국이나 후진국가가 국민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세 가지 과제가 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서민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주는 책임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기초교육을 보급시켜 문맹자가 없어야 하고, 중등교육까지는 국가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료혜택의 보급이 고르게 뒤따라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에 그 3대 과업을 성취할 수 있었다. 교육과 의료시설은 선진 국가 대열에까지 이르렀다. 양보다는 질적인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보다 지원, 간섭보다는 자율성이 필요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경제 문제는 언제나 새로운 창조력과 도약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와 국민의 협력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최하위 경제국가에서 오늘의 기적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교육의 뒷받침과 자유민주의 정치제도를 계승한 덕택이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 때 6·25전쟁 이후의 황무지에서 산업화 노력과 일을 사랑하는 근로정신을 십분 발휘한 혜택이다. 정치의 선결 목표는 경제에 있으며 경제적 안정 위에 교육, 의료시설, 문화적 창조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체험했고 그 주어진 과제를 지켜왔다.
그러던 것이 노무현 정부의 혼란기를 치르고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자유민주의 정치노선과 자유시장경제의 세계무대를 뒤로하고, 국내적 이념국가의 경제정책 도입을 시도한 것이 국민적 분열과 경제적 방향을 상실시켰다. 미래 경제 창조보다는 1세기 이상 뒤진 경제정책을 택한 것이다.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의 경제노선보다는 러시아, 공산중국, 북한식의 경제정책을 연상시키는 혼란을 거듭했다. 경제 문제를 국제무대에서 국내 문제로 전입시켰는가 하면 경제적 약자를 위해 앞서 있는 창의적 성장까지 훼손시키는 과오를 범했다. 경제적 양극화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의 성장과 수출의 성과가 필수이다. 국내에서 부를 분배시켜 평준화하는 정책을 택하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국가적 부가 성장과 보급의 원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심지어 원전의 과학적 창조로 국가의 부와 국제적 기여와 혜택을 초래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까지 단절시키는 정책을 택했다.
필자와 같은 경제 문외한까지 걱정하는 현실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존경받는 기업인이 많아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론이다. 문 정부와 청와대가 기업인들을 홀대한 것도 사실이며, 시장경제를 추종해서는 안 된다는 인상까지 남겨 주었다. ‘기업가들을 혼내 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기업인들은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민들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국민들은 그런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육성시켜야 한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를 방문하고 현대자동차 대표를 만나 방한을 시작하고 끝냈다. 두 기업에 대해서 감사와 존경의 뜻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청와대와 국민들의 상식과는 격차가 너무 컸다. 그것이 선진국 지도자의 자세와 상식이다.
존경이라는 개념이 너무 어색할지 모른다. 필자는 후배 교수들에게 ‘어떤 대학이 좋은 대학인가? 총장의 존경을 받는 교수가 많은 대학’이라고 말한다. 총장의 존경을 받는 교수는 총장의 인격을 신뢰하고 존경심을 갖고 협력하게 된다. 어떤 국가가 좋은 나라인가. 대통령과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각계 지도자가 많은 나라이다. 그래야 국민들은 대통령과 모범적인 기업인들을 믿고 따르게 된다. 우리가 왜 러시아, 중국, 북한을 멀리하는가. 그 나라에는 대통령이나 최고지도자보다 훌륭하고 존경받는 지도자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푸틴이나 김정은보다 존경받는 사회 지도자는 존재할 수 없는 국가이다.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기업가들은 존경에 해당하는 품위, 사회적 사명, 경제적 사회 기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존경받는 정치가, 영예로운 학자와 교육자, 자랑스러운 예술가, 아낌을 받는 체육인들이 많아야 하듯이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싶은 기업인들을 고대하고 있는 마음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성실하게 봉사하는 지도자를 국민들은 존경하고 협력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멀다. 삶의 가치가 현실화되기에는 반세기는 넘어야 할 것 같다. 자유의 가치와 더불어 인권의 보장이 확립되어야 하며 휴머니즘(인간애)의 가치가 생활화돼야 한다. 또한 주변 후진국가들의 변화와 발전도 동반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에 그 3대 과업을 성취할 수 있었다. 교육과 의료시설은 선진 국가 대열에까지 이르렀다. 양보다는 질적인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보다 지원, 간섭보다는 자율성이 필요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경제 문제는 언제나 새로운 창조력과 도약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와 국민의 협력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최하위 경제국가에서 오늘의 기적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교육의 뒷받침과 자유민주의 정치제도를 계승한 덕택이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 때 6·25전쟁 이후의 황무지에서 산업화 노력과 일을 사랑하는 근로정신을 십분 발휘한 혜택이다. 정치의 선결 목표는 경제에 있으며 경제적 안정 위에 교육, 의료시설, 문화적 창조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체험했고 그 주어진 과제를 지켜왔다.
그러던 것이 노무현 정부의 혼란기를 치르고 문재인 정부에 와서는 자유민주의 정치노선과 자유시장경제의 세계무대를 뒤로하고, 국내적 이념국가의 경제정책 도입을 시도한 것이 국민적 분열과 경제적 방향을 상실시켰다. 미래 경제 창조보다는 1세기 이상 뒤진 경제정책을 택한 것이다.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의 경제노선보다는 러시아, 공산중국, 북한식의 경제정책을 연상시키는 혼란을 거듭했다. 경제 문제를 국제무대에서 국내 문제로 전입시켰는가 하면 경제적 약자를 위해 앞서 있는 창의적 성장까지 훼손시키는 과오를 범했다. 경제적 양극화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의 성장과 수출의 성과가 필수이다. 국내에서 부를 분배시켜 평준화하는 정책을 택하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국가적 부가 성장과 보급의 원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심지어 원전의 과학적 창조로 국가의 부와 국제적 기여와 혜택을 초래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까지 단절시키는 정책을 택했다.
필자와 같은 경제 문외한까지 걱정하는 현실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존경받는 기업인이 많아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론이다. 문 정부와 청와대가 기업인들을 홀대한 것도 사실이며, 시장경제를 추종해서는 안 된다는 인상까지 남겨 주었다. ‘기업가들을 혼내 주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기업인들은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민들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국민들은 그런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육성시켜야 한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를 방문하고 현대자동차 대표를 만나 방한을 시작하고 끝냈다. 두 기업에 대해서 감사와 존경의 뜻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청와대와 국민들의 상식과는 격차가 너무 컸다. 그것이 선진국 지도자의 자세와 상식이다.
존경이라는 개념이 너무 어색할지 모른다. 필자는 후배 교수들에게 ‘어떤 대학이 좋은 대학인가? 총장의 존경을 받는 교수가 많은 대학’이라고 말한다. 총장의 존경을 받는 교수는 총장의 인격을 신뢰하고 존경심을 갖고 협력하게 된다. 어떤 국가가 좋은 나라인가. 대통령과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각계 지도자가 많은 나라이다. 그래야 국민들은 대통령과 모범적인 기업인들을 믿고 따르게 된다. 우리가 왜 러시아, 중국, 북한을 멀리하는가. 그 나라에는 대통령이나 최고지도자보다 훌륭하고 존경받는 지도자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푸틴이나 김정은보다 존경받는 사회 지도자는 존재할 수 없는 국가이다.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기업가들은 존경에 해당하는 품위, 사회적 사명, 경제적 사회 기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존경받는 정치가, 영예로운 학자와 교육자, 자랑스러운 예술가, 아낌을 받는 체육인들이 많아야 하듯이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싶은 기업인들을 고대하고 있는 마음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성실하게 봉사하는 지도자를 국민들은 존경하고 협력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멀다. 삶의 가치가 현실화되기에는 반세기는 넘어야 할 것 같다. 자유의 가치와 더불어 인권의 보장이 확립되어야 하며 휴머니즘(인간애)의 가치가 생활화돼야 한다. 또한 주변 후진국가들의 변화와 발전도 동반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김형석, "경제, 존경받는 기업인이 많아져야 한다", 동아일보, 2022.6.3일자. A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