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업적과 순국 113주년 기념행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대산 신상구
1.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업적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의사는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이봉창(李奉昌, 1901-1932),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1886-1947), 최재형(崔在亨, 1860-1920), 유관순(柳寬順, 1902-1920)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저명한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 존영(국가보훈처)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순흥안씨(純興安氏) 가문에서 아버지 안태훈(安泰勳)과 어머니 조마리아(趙瑪利亞)의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회복의 길을 강구하다가 돌아와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ㆍ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고종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그 후 그는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톡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하였고, 1909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하였다. 그리고 1909년 9월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가 하얼빈(哈爾濱)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10월 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러시아 헌병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헌병대에 체포되어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향년 31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안중근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2.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년 기념행사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년을 맞이하여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오전 10시에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박민식 보훈처장,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독립유공자 유족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에 안중근 의사 약전 봉독, ‘최후의 유언’ 낭독, 추모 식사 및 추모사, 안중근 동양평화상 시상 순서로 추모식을 엄숙하게 개최했다. 그리고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신용하(慎鏞廈, 1937)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제3회 '안중근 동양평화상'을 수여했다. 신용하 교수는 안중근 의사의 교육운동부터 하얼빈 의거에 이르는 국권회복운동을 정리하고 그 밑바탕에 평화사상이 있다는 것을 논증했다. 안중근의사숭모회는 또 내달 16일까지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안중근 의사 특별전 ‘초월: 과거와 현재, 국경을 넘어 만나다’도 개최한다.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는 장면
김황식(金滉植, 1948)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안 의사의 유지를 받들어 나라 사랑 정신과 평화 사상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박민식(朴敏植, 1965) 국가보훈처장은 기념사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년을 맞아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의사님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혼을 엄숙한 마음으로 되새기며 이를 우리의 미래세대들에게도 온전히 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독립이 된 지 73년이나 지났는데도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시신도 아직 찿지 못해 조국으로 모셔오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없다. 가묘는 효창공원 3의사 묘에 위치해 있다.
국가보훈처는 우선 먼저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빨리 찾아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봉환해 효창공원 가묘에 안치해야 한다.
<대산 신상구 국학박사 주요 약력>
.1950년 6월 26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부친 신종순(辛鍾淳), 모친 유옥임(兪玉任)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한국 인플레이션 연구(A study of korean inflation」(1980.2)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A study of shamanic culture in Taean)」(2011.8)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조치원중, 조치원여고, 삽교중, 한내여중, 천안북중, 천안여중, 태안중, 천안중 등 충남의 중등학교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3.15),『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5권.
.주요 논문 :「태안지역 무속인들의 종이오리기 공예에 대한 일고찰」(2010),「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2012),「2020년 노벪문학상 수상자인 루이즈 글릭의 생애와 문학세계」(2020) 등 123편
.주요 발굴 : 민촌 이기영의 천안 중앙시장 3·3항일독립만세운동 기록(2006)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2007)
.수상 실적 : 예산군수 감사장, 대천시장상(2회), 천안시장상(2회),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한통국문화원연합회장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2회) 교육부장관상(푸른기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문학 21』시부문 신인작품상,『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동아일보·중앙일보·조선일보·경향신문·한국일보·서울신문·서울일보·신아일보·문화일보·전국매일신문·시민신문·천지일보 등 중앙 일간지, 대전일보·충청일보·충청투데이·중도일보·동양일보·금강일보·중부매일·충남일보·중앙매일·충청타임즈·충청매일·대전투데이·충청신문·충북일보·우리일보·시대일보·중부일보·영남일보 등 지방 일간지, 충남시사신문·천안일보·충남신문·천안투데이·아산투데이·아산시사신문·예산신문·태안신문·태안미래신문·홍성신문·보령신문·내포시대·진천신문·증평신문·옥천신문 등 주간신문, 아산톱뉴스·천안일보·디티뉴스·대전뉴스·충청뉴스·충청뉴스인·시티저널·충북인뉴스·굿모닝충청·대전문화신문·예산뉴스 무한정보·백제뉴스·괴산타임즈·코리안스프릿 등 인터넷신문 등에 수백 편의 칼럼 기고.
.30년 간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환경운동 전개, KBS 중앙방송국 라디오 <논술 광풍>프로 출연, STB 상생방송 <홍범도 장군> 프로 출연, KBS 대전방송국·MBC 대전방송국·CJB 청주방송국 라디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발굴> 프로 출연
.대전 <시도(詩圖)> 동인,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충남민주시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사회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국민윤리교육회 회원, 천안향토사 연구위원,『천안교육사 집필위원』,『태안군지』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통합논술 전문가, 평화대사, (사)대한사랑 자문위원, 천손민족중앙회본부 연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