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 저물면 대한민국은 몹시 큰 피해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경제난이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훨씬 더 거대한 이슈가 요동치고 있다. 바로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우려다. 이 문제는 지난 ‘다보스 포럼’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세계화 시대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지난 30여 년간 이 지구촌에 전무후무한 번영을 가져온 시대다. 왜 이 시점에 우리가 이 대단한 시대의 종언을 걱정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소위 ‘제국 시대’와 ‘세계화 시대’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얼핏 보기에는 둘이 비슷하다. 여러 나라가 서로 문을 활짝 열고 빈번히 교류하는 현상이다. ‘제국 시대’는 역사에 대략 3번 있었다. 첫째는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 때였다. 두 번째는 12세기 몽골의 징키즈칸 시대였다. 그리고 최근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나폴레옹 시대였다. 그러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인류는 뜻밖에 소위 ‘세계화 시대’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게 된다. 겉으로 보면 ‘제국 시대’와 비슷하지만 그 원인과 작동 원리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세계화 시대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989년 9월 어느 날 갑자기 동(東)베를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촉발되었다. 어느 날 동베를린 시민들이 방망이와 도끼로 베를린을 두 쪽으로 가르고 있던 장벽을 깨부수고 서(西)베를린으로 몰려가 버린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이에 필적하는 현상이 공산 독재국가 곳곳에서 일어나며 이곳 시민들이 민주국가 시민같이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 바로 세계화의 근본 토대였다. 이후 지난 30여 년간 세계는 서로 자유롭게 교류하고 교역하면서 함께 이 지구촌의 떡을 엄청나게 키워냈다.
그렇다면 세계화 시대와 제국화 시대는 무엇이 다른 것인가? 겉으로 보면 비슷하다. 나라와 나라가 자유롭게 교역한다. 하지만, 둘 간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제국화’는 ‘국경의 개방’이긴 했지만, 그것은 무력에 의한 ‘강제적’ 개방이었다. 그러나 세계화는 ‘자발적’ 개방이었다. 아무도 ‘하라’고, ‘하지 말라’고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자발적으로 개방하고 소통하고 왕래하게 된 현상이었다. 그러면서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로 일약 진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나라 간 ‘가치 공유’가 이루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어떤 가치인가? 바로 민주주의적 가치였다. 바로 세계 3대 강국이 그 가치를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미국, 러시아(소련), 중국의 3대 강국이다.
우선 소련을 보자. 베를린 장벽 붕괴가 일어나기 약 4년 전부터 소련에서는 고르바초프의 주도로 민주화를 향한 거대한 도정(道程)이 힘겹지만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 거대한 개혁이 한참 진행 중일 때 바로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기 때문에 그 민주화를 소련이 저지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 불과 2년 후 소련 연방은 해체되고 러시아는 대통령을 직선하는 민주국가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이웃 나라 중국이 힘을 합쳤다. 바로 등소평(덩샤오핑)이라는 거인 덕분이었다. 등소평은 중국을 사실상 민주화시켰다. 즉 국가주석의 10년 임기제를 만들고 자신이 가장 먼저 스스로 물러나고 선거로 후임자를 뽑았다. 또 과감하게 국민에게 광범위한 경제적 자유를 허용했고 그것이 중국의 경제적 도약을 가능케 했다.
이로써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 나라, 미국, 중국, 러시아가 기본적으로 동일한 가치 즉, 자유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수많은 나라도 이를 따라 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세계가 크게 한 나라가 되는 듯한 효과를 내게 되었다. 그 덕분에 ‘세계화 시대’라는 것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 세계화는 세계를 부자로 만들었다. 세계 전체가 공급 시장 겸 소비 시장이 되면서 그만큼 더 좋은, 더 싼 원료와 자재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경쟁도 더 치열해졌다. 물건은 더 싸지고 품질은 자연히 더 좋아진다. 일자리도 늘어났다. 세계 경제는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30여 년간 인류에게 큰 축복이 되었던 그 세계화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왜? 바로 그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근본적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동시에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있다.
최소 2036년까지 집권이 보장된 푸틴은 일찌감치 민주주의 체제를 내다 버렸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사실상 러시아가 더 이상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신봉하지 않음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도 비슷하다. 이번 가을에 시진핑의 3연임이 거의 확실시되면서 시진핑이 사실상 러시아의 궤도를 따라갈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별로 없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지구촌에서 ‘가치 공유’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바로 ‘민주주의’라는 가치 말이다. 단기적으로 가장 큰 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여기서 반드시 러시아가 실패해야 한다. 만약 러시아가 승리하면 그것은 중국의 야심에도 기름을 부을 것이다. 특히 대만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세계화’라는 모델의 매장을 의미한다.
그 피해자들은 바로 지구촌의 모든 시민이다. 그러나 세계화에서 특별히 혜택을 많이 받아온 한국은 몹시 큰 피해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반드시 실패해야 한다. 그것은 결코 우크라이나만을 위한 전쟁이 아니다. 세계 모든 시민의 밝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특히 한국엔 더 그렇다.
<참고문헌>
1. 전성철, "세계화 시대 이대로 저물게 될 것인가", 조선일보, 2022.7.15일자. A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