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꽃피운 우리 근대미술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4.16 03:00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꽃피운 우리 근대미술

                     구본웅이 이상을 그린 〈친구의 초상〉 1935년, 캔버스에 유채, 62x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구본웅이 이상을 그린 〈친구의 초상〉 1935년, 캔버스에 유채, 62x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화협회전은 일제의 탄압에 1936년, 제15회전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이때가 되면 우리 근대미술은 그런 질곡에도 불구하고 자기 역량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1930년대 중엽 이후 우리 근대미술 화가들이 당대의 문인들과 어울리며 예술세계를 천착해 나가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5월 30일까지).  
     구본웅, 정현웅, 길집섭, 김용준, 김환기, 이중섭, 최재덕 등 개성적인 화가들과 박태원, 백석, 이상, 이태준, 김광균, 구상 등 전설적인 문인들 사이의 예술적 교감을 보여주는 문헌자료와 인쇄미술 200여 점, 사진 및 시각자료 300여 점, 그리고 미술작품 140여 점으로 마치 장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스토리텔링으로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전시기획력이 뛰어나고 디스플레이가 멋질 뿐만 아니라 유족들이 소장해온 스케치북, 스크랩 북, 편지 등 새로운 자료들이 대대적으로 공개되어 있고 그동안 월북화가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볼 수 없었던 최재덕, 김만형, 길진섭, 김용준 등의 명작들이 다수 소개되어 전시회의 뜻을 더하고 있다.  
     역사적 체감으로 말하자면 일제강점기는 분명 암흑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 어둠을 해쳐나가는 선인들의 몸부림이 문학과 미술 곳곳에 절절이 나타나 있다. 1933년 ‘모던 보이’ 이상은 종로에 ‘제비’ 다방을 열었다. 이곳에서 화가와 문인들은 아방가르드를 표방하며 서툰 솜씨로 모더니즘을 익혀갔다. 구본웅이 그린 친구(이상)의 초상에는 그런 야수파적인 강렬함이 빛나고 있다.  
     김광균이 ‘와사등’에서 보여준 이미지즘은 빠른 속도로 신문화의 충격을 받아들이며 ‘시는 그림같이, 그림은 시같이’ 나아갔다. 그 역동의 문예사조가 암울한 시절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역설로 다가온다. 낭만도 있었다. 출판인 조풍연의 결혼을 축하하는 화첩에는 길진섭, 김환기 등 당대 화가들의 화사한 그림들이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책 표지는 화가의 중요한 장르 중 하나였다. 괴석 옆에 진달래꽃을 그린 김소월의 ‘진달래꽃’부터 아무런 꾸밈이 없는 백석의 ‘사슴’까지 수많은 독서인의 심금을 울렸던 책들의 장정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본격 미술이 아니라고 치부하기 쉬운 신문 잡지의 삽화들은 문학과 미술이 만나는 현장이었다. 당시 정현웅은 "틀을 깨고 인민 속으로 직접적으로 뛰어드는 가장 새롭고, 가장 강력한 미술양식은 인쇄미술”이라고 외칠 정도였다.  
     역병만 아니었으면 장사진을 이루었을 이 전시회는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강력히 전하고 있다. 하나는 후손들이여, 근대를 무시하지 말라는 무언의 꾸지람이다. 오늘날 세태는 우리 근대미술을 상징하는 ‘한국화 6대가’의 이름은 물론이고 그 존재조차 모른다. 근대가 없었으면 현대도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는 이상의 외침이다. 그 외침의 근저에 깔린 힘겨움을 생각하면 오늘을 살고 있는 내가 마냥 부끄러워진다.
                                                                                       <참고문헌>
   1. 유홍준, "암울한 시절에 꽃피운 우리 근대미술", 중앙일보, 2021.4.15일자. 31면.


시청자 게시판

1,972개(20/99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30946 2018.04.12
>>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꽃피운 우리 근대미술 사진 신상구 755 2021.04.16
1590 '메가트렌드' 쓴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 92세로 별세 사진 신상구 692 2021.04.15
1589 수주 변영로 시인의 생애와 업적 신상구 489 2021.04.15
1588 카카오 김범수의장의 성공 신화 사진 신상구 574 2021.04.14
1587 동진회를 이끌어온 이학래옹 타계를 추모하며 사진 신상구 269 2021.04.13
1586 과학의 의미와 역할 신상구 1089 2021.04.13
1585 [기고]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수립 제102주년을 경축하며 사진 신상구 298 2021.04.12
1584 정세균 국무총리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제102주년 기념식 기념사 전문 신상구 351 2021.04.12
1583 공약만큼 재산도 파격적인 ‘이단아’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표 사진 신상구 480 2021.04.10
1582 정조대왕의 책가도와 이미지 통치 사진 신상구 671 2021.04.09
1581 익산 쌍릉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사진 신상구 1020 2021.04.09
1580 유권 정의, 무권 불의 시대 신상구 399 2021.04.09
1579 71년 전에 인공지능이 인류의 삶 바꿔놓을 것 예연한 앨런 튜링 사진 신상구 405 2021.04.09
1578 충북 괴산군에는 누가 유배(流配)를 왔을까 신상구 1095 2021.04.07
1577 1909년 추정 등사본『환단고기』의 출현 사진 신상구 749 2021.04.07
1576 곡옥의 비밀 신상구 468 2021.04.06
1575 민경배 목사의 '한국역사 그 뒷이야기' 신상구 1002 2021.04.06
1574 '조선판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들 사진 신상구 509 2021.04.06
1573 정조 개인 문집 교정본 완질, 일본 도서관에 있었다 사진 신상구 1256 2021.04.05
1572 아시아 부국에서 최빈국으로 전락한 미얀마 사진 신상구 637 2021.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