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2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날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독립운동사를 통해 민족 공동체 의식을 확립해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국가 기념일이다. 이날은 임시정부의 설립 주체인 임시의정원이 1919년 4월 10일 밤 10시부터 10개조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철야 심의한 후, 4월 11일 오전 국무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헌법을 제정·발포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해 임시정부를 수립한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발표된 3·1 독립선언서 및 3·1 운동에 기초하여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대한민국의 망명 정부이다.
1919년 3.1 운동 직후 대한국민의회, 상해 임시정부, 한성정부 등 각지에 임시정부가 수립된 뒤, 같은 해 9월 11일 한성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원칙 하에 상하이를 거점으로 대한국민의회, 상해 임시정부, 한성정부 등 국내외 7개의 임시정부들이 개헌형식으로 통합되어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로 개편되었다. 이 때 4월 11일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 헌장의 내용을 대폭 보강하여 9월 11일 대한민국 임시 헌법을 제정하여 국호는 '대한민국', 정치 체제는 '민주공화국'으로 하고,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리 제도를 확립하였으며, 대한제국의 영토를 계승하고 구 황실을 우대한다고 명시하였다.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었고, 이후 김구, 이승만, 이동녕, 박은식 등이 임정의 수반을 거쳤다.
1920년부터 계속 4월 13일로 기념해 오다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2019년부터는 4월 11일로 변경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은 1989년까지는 한국독립유공자협회에서 기념식을 주관했다. 그러다가 1989년 12월 30일에 국가 기념일로 지정됨에 따라 1990년 기념식부터는 대한민국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가 되었다.

본식은 임시정부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자주독립 정신을 알릴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국기 입장에는 지금의 태극기와 독립운동에 쓰였던 남상락 자수 태극기, 임시의정원 태극기, 김구 서명 태극기, 광복군 서명 태극기가 함께 해 임시정부가 국민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에 의해 수립됐음을 표현했다. 이어 임시정부 수립과정과 역사적 의의에 대한 배우 조진웅 씨의 강연이 진행됐다. 강연이 끝난 뒤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 낭독을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국민과 함께 공유했다.
기념공연은 이름없는 독립 유공자를 위해 남형주(리코더)·이석원(건반) 씨가 ‘프론티어(frontier)’ 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2막은 임시정부가 꿈꾸던 위대한 대한민국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내용의 주제 영상과 국악인 고영렬, 테너 오영인, 바리톤 차광환의 ‘나의 나라’ 합창으로 꾸려졌다. 끝으로 공연자와 참석자들이 하나가 돼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가’를 제창하며 기념식이 마무리 됐다.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는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이봉창 의거, 윤봉길 의거, 1937년 중일 전쟁 등으로 인해 1919년 9월 상하이 → 1932년 5월 항저우 → 1937년 난징, 우한 → 1937년 11월 창사 → 1938년 7월 광저우 → 1938년 11월 류저우, 구이양 → 1939년 5월 차장 → 1940년 9월 충칭으로 여러 차례 본거지를 옮겨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세계 최초로 민주공화제의 틀을 정립했으며,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포해 대한민국 건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기념 축사에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자주독립, 광복의 역사를 쟁취하기 위해 민족교육, 무장전투, 외교활동,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는 11월 23일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개장할 예정이고, 2025년에 효창공원을 독립기념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독립유공자와 가족의 명예를 위한 예우와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해외 유해봉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가시밭길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해서 정치와 교육, 경제가 균등한 세상, 선열들께서 못다 이룬 꿈을 현실의 역사로 이루기 위해 우리 모두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 기념식이 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자주 독립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원웅 광복회장이 제102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서 한 광복회원에게 멱살잡이를 당하는 소동이 벌어져 참석자들을 실망시켰다.
행사에 참석한 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기념사 이후 기념공연이 시작되고서 김임용 광복회원이 갑자기 김원웅 회장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계속 흔들었다"며 "옆에 있던 황기철 처장 등이 말리고 김임용 회원이 끌려 나가면서 상황은 바로 종료됐다"고 전했다.
김임용 회원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김붕준(金朋濬.1888∼1950) 선생의 손자다.
이날 행사장에서 휘날린 태극기 중 하나인 임시의정원 태극기(1923)는 김붕준 선생이 아내와 함께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광복회에서는 김원웅 회장의 정치적 발언 등에 일부 회원들이 반발하는 등 내홍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서울특별시지부 지회장들이 김 회장에게 정치적 중립과 재정집행 공개를 요구하는가 하면 지난달 30일에는 일부 회원들이 김 회장의 집무실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김임용 회원도 평소 김 회장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훈처 관계자는 "광복회 내부에 아직 내홍이 있어 벌어진 일로 추정된다"며 "김원웅 회장에 반대하는 쪽에서 불만이 많아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