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원한 생명은 영원할 수 없다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09.03 16:25


                   영원한 생명은 영원할 수 없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는 DNA 복제를 통해 분열함으로써 자신과 똑같은 더 젊은 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늙어 죽는 것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포는 왜 더는 분열하지 못하는 것일까? 답은 DNA 복제에 있다.

                                                                  우리 몸의 설계도인 DNA
  DNA는 기본적으로 수소·탄소·질소·산소·인으로 이루어진 이중 나선 구조의 사슬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당과 인산이 이중 나선 구조를 지탱하는 두 가닥의 뼈대를 만들고, 그 안쪽으로 아데닌·타이민·구아닌·사이토신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염기들이 수소 결합을 통해 두 가닥의 뼈대 사이를 마치 사다리처럼 연결한다. 염기들이 서로 결합하는 방식에는 정확한 규칙이 있다. 만약 이중 나선 구조의 한 뼈대에 아데닌(A)이 붙어 있다면 다른 뼈대에는 반드시 타이민(T)이 붙어 있어야 서로 결합할 수 있다. 비슷하게, 만약 한 뼈대에 구아닌(G)이 붙어 있다면 다른 뼈대에는 반드시 사이토신(C)이 붙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중 나선 구조의 한 뼈대에 염기 서열 AATGCTAGGCTC…이 붙어 있다면 다른 뼈대에는 그것과 딱 맞게 결합할 수 있는 염기 서열 TTACGATCCGAG…이 붙어 있어야 한다. 우리 몸의 설계도인 유전 정보는 DNA의 염기 서열에 담겨 있다.

「 늙어죽는 건 세포 분열 못하는 탓
텔로미어 짧아지면서 복제 중단
바닷가재, 텔로미어 유지돼 장수
껍질 탈피 어려워져 결국은 사망

  DNA 복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우선, 헬리케이스(helicase)라는 효소가 DNA 복제 원점이라는 특정한 영역에 붙어 마치 지퍼를 풀어 당기듯이 DNA를 두 가닥으로 풀어낸다. 이때 풀어진 각각의 가닥에는 ‘단일 가닥 결합 단백질’이 붙어 이중 나선 구조로 재결합하는 것을 막는다. 그다음, 각각의 가닥에 프라이머(primer)라는 짧은 염기 서열이 붙고 그 자리를 기준으로 DNA 중합효소(polymerase)가 염기 서열을 복제하기 시작한다. 염기 서열의 복제가 끝나면 처음 DNA와 동일한 2개의 DNA가 얻어진다.

수명을 결정하는 텔로미어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기 ‘달리(DALL·E)’를 이용해 그린 바닷가재.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아 원칙적으론 영원히 살 수 있다.
   자, 그럼 늙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텔로미어를 길게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맞다. 우리 몸에는 소모된 텔로미어를 복원해 그 길이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만들어 주는 효소가 있다. 그 효소의 이름은 텔로머레이즈(telomerase)다. 하지만 불행히도 텔로머레이즈는 배아의 줄기세포에서만 활성화되고 어른이 된 후에는 활동을 멈춘다. 따라서 우리는 늙어 죽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텔로머레이즈가 계속 활동해 원칙적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체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 생명체는 바로 바닷가재다. 물론 바닷가재가 정말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바닷가재는 포식자에게 잡혀먹힐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제외하고도 바닷가재에게는 노화보다 더 잔인한,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온다. 단단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는 바닷가재는 주기적으로 탈피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성장한 바닷가재는 지나치게 단단해진 자신의 껍데기를 부수고 나올 수 없다. 결국 바닷가재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후 자신의 껍데기 안에서 압사당하게 된다.

                                  복제 오류와 암, 그리고 엔트로피

  인간은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있으며 탈피도 하지 않는다. 그럼 인간은 텔로머레이즈를 이용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텔로미어를 인위적으로 길게 유지하면 DNA 복제가 무제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복제에는 언제나 오류가 발생한다. DNA 복제 오류는 암으로 바뀔 수 있다. 텔로머레이즈는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럼 DNA 복제 오류를 줄이면 되지 않을까? 충분히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다면 우리는 과학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DNA 복제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도 한계가 있다. 마치 바닷가재가 껍데기를 부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듯이 인간도 DNA 복제 오류를 줄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열역학 제2 법칙, 즉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르면, 생명과 같이 질서정연한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라. DNA 복제 오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명은 DNA 복제 오류, 즉 돌연변이를 통해 진화한다. 개별 인간은 늙어 죽지만 전체 인류는 더 나은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박권, "영원한 생명은 영원할 수 없다", 중앙일보, 2024.9.2일자. 26면. 










시청자 게시판

2,384개(2/120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70602 2018.04.12
2363 <특별기고>독도의 날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행사 신상구 41 2024.10.26
236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이 남긴 우리의 과제 신상구 36 2024.10.25
2361 배우 전무송 이야기 사진 신상구 34 2024.10.25
2360 천안시, 석오 이동녕 선생 학술회의 개최 공적 재평가 모색 사진 신상구 34 2024.10.24
2359 3·8민주의거기념관 2024.11.19일 정식 개관 이전 기사보기다음 기 신상구 31 2024.10.24
2358 소년이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신상구 45 2024.10.22
2357 석오 이동녕 선생 재조명 학술대회 신상구 42 2024.10.22
2356 노벨상 수상이 가져다 줄 베이스캠프 효과 사진 신상구 40 2024.10.22
2355 항일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길영희 선생의 생애와 업적과 사상 신상구 42 2024.10.20
2354 한강 문학은 통치술에 대한 감각적 불복종 사진 신상구 49 2024.10.19
2353 조선의 K소설, 한강의 선배들 신상구 54 2024.10.18
2352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떠올려준 생각들 신상구 48 2024.10.18
2351 한강 노벨문학상, 한국 문화의 새 역사 신상구 50 2024.10.15
2350 ‘한강의 기적’에 분노하는 사람들 신상구 50 2024.10.15
2349 세계 문학계 '포스트 한강 누구냐' 주목 신상구 46 2024.10.15
2348 『통합정치와 리더십』에서 경합과 협치의 정치 방안 모색 사진 신상구 50 2024.10.13
2347 육영수 여사와의 추억 신상구 45 2024.10.13
2346 청의 간섭에도 美 공사관에 태극기 걸며 '자주 외교' 펼쳤죠 사진 신상구 48 2024.10.13
2345 고려 남경은 어떻게 조선의 서울이 됐나 신상구 48 2024.10.12
2344 세종대, '2025 THE 세계대학평가' 국내 7위에 올라 신상구 49 202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