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친일 역사관’ 주입 위해
尹정부 발판 삼아 곳곳 요직 꿰차
“뉴라이트 활개치는 현실에 개탄”
“1948년 건국론 주장하고 있지만
국부로 숭상하는 이승만도 부정”
30일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 예측
“박근혜 정권보다 더 교묘할 듯
교과서 파동 재현될 일만 남아”
29일은 경술국치(庚戌國恥)의 그날이다. 114년 전인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주의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다. 이완용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과 일본 측 수석대표 데라우치 마사다게(寺內正毅) 통감 사이 한일강제합병(韓日强制合倂)조약이 체결되면서다. 이 조약은 일주일 뒤인 8월 29일 발표됐다.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날이다. 벌써 한 세기 지난 역사지만 오늘 우린 자칫 그 비극을 반복할 수 있는 누란(累卵)의 위기에 서 있다. ‘뉴라이트’의 의미조차 모르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무지(無知)에 피로 쓴 역사가 대번에 뒤집힐 처지에 놓였다. 일반 국민도 치를 떠는데 하물며 독립운동가 후손의 분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경술국치일을 앞두고 금강일보와 대담에 나선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의 요즘 소회가 그렇다.
◆신(新)친일파, 친일매국 세력
뉴라이트는 2000년대 중반 ‘새로운 보수’를 기치로 등장했다. 올드 라이트(Old Right)와 대비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주창하며 기존 보수의 한계를 쇄신하겠다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라도 됐으면, 그랬다면 아마 역사를 앞에 놓고 이 난리 치고 있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석열 대통령은 철 지난 뉴라이트 소동에 기어코 불을 지펴 키우고야 말았다.
“사실 20년 전부터 뉴라이트는 대한민국 주류 역사 해석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친일과 독재의 역사로 다시 쓰려고 부단히 애를 썼죠. 이들은 이명박정권 때는 건국절, 박근혜정권 때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밀어붙였다가 실패했는데 이 과정에서 보여준 색깔만큼은 분명합니다. 올드 라이트가 반공을 내세웠다면 뉴라이트는 여기에 친일을 더했거든요. 반공과 친일을 결합한 뉴라이트가 이제 윤석열정권을 마지막 기회로 보고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의 모친 지복영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의 딸이다. 이 전 관장은 지청천 장군 외손자인데 뉴라이트 세력이 활개 치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치가 떨린단다. 오죽하면 지하에서 할아버지가 분노하며 눈물 흘리고 계실 것 같다는 하소연을 할까.
“저는 뉴라이트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온건하게 말하면 ‘신(新) 친일파’, 더 세게 얘기하면 ‘친일매국 세력’이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하필 윤석열정권일까’라는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나오는 결론은 윤석열이라는,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대통령이 있을 때 그를 잘 구워삶으면 뉴라이트가 원하는 역사관을 전파할 주요 기관장은 다 차지할 수 있겠다는 확신 아닌 확신을 한 것 같아요.”
◆뉴라이트는 지금…“尹정부 장악 중”
김영호 통일부 장관부터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과 박이택·오영섭 독립기념관 이사 등 뉴라이트 인사로 봄 직한 인물들은 윤석열정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정권이 뉴라이트화(化) 된 것이다. 워낙 모호한 표현들로 일관하는 탓에 그간 뉴라이트를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이젠 질문 하나면 쉽게 파악된다.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는 합법입니까, 불법입니까’ 정도면 충분하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도 논란이지만 이진숙 방통위원장도 있어요. 인사청문회에서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노코멘트 했잖아요? 얼마 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으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안 했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들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했죠. 합법이라고 말만 안했지 일제 식민지배는 정당하다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다. 대한민국 건국이 언제였고, 일제강점기 때 국적은 무엇이었는지 이 한 문장으로 모두 설명된다. 이렇게 보면 윤 대통령 본인이 명색이 검사 출신인데도 지켜야 할 법을 깡그리 무시한 채 헌법 부정하는 이들에게 나랏일 맡기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셈이다.
“헌법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잖아요? 헌법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출발했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이게 다른 의미로 보면 윤석열정권이 헌법 부정하는 사람, 그것도 세게 부정하는 사람을 중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최근 정권이 자행해 온 인사를 보면 뉴라이트 정권임이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죠.”
뉴라이트가 끈질기게 밀어온 해괴한 역사가 있다. 1948년이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는 허술한 논리가 그것이다. 그 이전에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나라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쯤이면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나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말했는지 알만도 하다. 특히 뉴라이트의 이 이론은 한 사람이 완성해야만 한다. 1948년 건국론을 완성할 주인공으로 뉴라이트가 택한 인물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뉴라이트는 1948년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 ‘건국의아버지’로 부르며 재평가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기념관을 세우고, 동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죠. 안타깝게도 이승만 대통령 본인은 제헌 국회의장에 당선되고 대통령 취임할 때까지 1919년 건국을 주장한 장본인입니다. 뉴라이트는 이승만 대통령을 띄우려 발악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대한민국이 1919년에 세워졌다고 얘기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죠. 여기에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에 ‘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씁니다. 이것 또한 뉴라이트 1948년 건국론의 심각한 허점이에요.”
◆“태풍 불어도 진실은 부동(不動)”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될 새 역사 교과서 검정 결과가 30일 공개된다. 윤석열정권에서 불거진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 속 과연 역사적 쟁점이 교과서에 어떻게 담기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 전 관장은 새 역사교과서에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새 역사교과서에 적잖이 담길 것이라는 답답한 예측을 꽤나 덤덤하게 내놓는 그의 모습에 곧 태풍이 휘몰아칠 것만 같은 확신이 든다.
“교육부가 새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를 앞두고 모든 걸 비밀에 붙이고 있어요. 아마 뉴라이트 교과서를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식으로 교과서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박근혜정권 때 교학사 교과서나 국정 교과서보다 더 교묘할 것으로 보여요. 교육부는 뉴라이트 교과서를 기정사실로 밀어붙이려 할 것이고, 여기에 반대하는 역사학계나 시민단체는 문제 제기를 할텐데 교과서 파동 재현되는 일만 남은 것이죠.”
어떠한 역사든 공과(功過)를 함께 안고 있기 마련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순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편견을 교과서에까지 기술해선 안 될 일이다. 미래 대한민국 시민들을 자본에 충성하며 권력과 강자에게 순종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뉴라이트 추종자들의 헛된 꿈을 실현시켜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은 빨리 버리는 게 현명하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른 이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들은 항상 올곧은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초라하게 역사 밖으로 밀려났다. 그것이 대한민국 반 만년 역사 속에서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불변의 가치이자 진리다.
“우리의 이 답답한 현실에 화를 내도 됩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이런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만 헌법에 대한민국이 출발한 기본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만 알아도 결국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충분히 아실 수 있을 테니까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합니다. 상투적이긴 하지만 여기엔 굉장히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어요. 그 어떤 나라도 자기 나라 역사를 부정할 순 없습니다. 제가 어떠한 역사 쿠데타도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연유죠.”
역사 꽤나 공부한 사람들은 종종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따지고 보면 영 틀린 말도 아니다. 114년 전 경술국치의 아픈 역사가 절대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확언할 수 있을까. 기쁨의 역사보다 어둡고 슬픈 역사를 뼈 아프게 가슴에 새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뉴라이트 논란과 함께 다가온 올해 경술국치일이 먼 훗날 역사에서 더 또렷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1. 이준섭, "헌법정신 부정하는 신 친일파...역사 쿠데타 성공 못해", 금강일보, 2024.8.29일자. 3면.